2007/11-12 : Culture&Issue_암살자를 위한 노래, 007 주제가 이야기②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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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Issue_암살자를 위한 노래, 007 주제가 이야기②
  본드다운’ 전통,
그 변치 않는 미학
 
정 성 욱 | 영상사업팀 대리
swchung@lgad.co.kr



존 배리(John Barry)의 활약은 80년대 들어와서도 계속된다. 셜리 배시(Shirley Bassey)와 세 번째로 만들어낸 11탄 <문레이커> 이후, 12탄 <포 유어 아이즈 온리>의 주제곡을 해외 거주중이었던 탓에 <록키>의 작곡가로 유명한 빌 콘티에게 맡겼던 것을 제외하고는 세 작품을 연속으로 맡은 것이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아내이자 60~70년대 미국 음악인들의 뮤즈였던 리타 쿨리지(Rita Coolidge)가 부른 13탄 <옥토퍼시>의 주제곡 <All Time High>는 미디엄 템포의 부드러운 발라드 곡이다. 이 곡은 리타 쿨리지의 노래들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빌보드 차트 어덜트 컨템퍼러리 부문 1위) 그녀 스스로는 개봉 스케줄에 쫓겨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곡의 완성도에 대해 자신 없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존 배리의 성공은 14탄 <뷰투어킬>의 동명 주제곡에서 정점을 이룬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뉴로맨티시즘 밴드인 듀란듀란(Duran Duran)과 함께 작업한 이 곡은 007시리즈 주제곡 중 유일하게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곡이다. 1960년대 기타 사운드의 대중성을 간파하고 테마에 삽입하는 탁월한 판단을 보였던 존 배리는 이번에도 80년대의 대중음악을 주도하던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007사운드와 성공적으로 섞어냈는데, 메인 작곡가와 가수가 공동으로 곡을 만드는 007시리즈 첫 번째 케이스이기도 했다.
14탄 주제곡의 성공은 15탄 <리빙데이라이츠>의 주제곡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당초 여성 보컬리스트 크리시 하인드(Chrissie Hynde)가 속해 있는 프리텐더(The Pretenders)가 주제곡을 부르기로 했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듀란듀란처럼 10대 여성팬을 거느린 남성 그룹의 존재가 성공요인이라고 판단, ‘노르웨이의 듀란듀란’이라고 할 수 있는 그룹 아하(A-ha)에게 15탄의 주제곡을 맡긴다. 하지만 음악적 고집이 있는 아하의 기타리스트 폴 박타(Paul Waaktaar)와 존 배리의 작업은 쉽지 않았다. 아마도 대중문화의 가벼움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듀란듀란의 음악과는 달리, 훨씬 진지하고 사색적인 아하의 스타일은 본드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고, 결국 의견 충돌 끝에 만들어진 곡은 아하 스타일과 존 배리 스타일 두 가지 버전으로 녹음되었다.
이후 16탄 <살인면허> 제작 때 존 배리는 그를 일생 동안 괴롭혀왔던 후두질환 수술로 참여하지 못했고, 이로써 15탄이 그의 마지막 007 작품이 되었다. <살인면허>는 <다이하드>와 <리셀웨폰> 시리즈의 작곡가 마이클 케이먼(Michael Kamen)이 담당하게 되었는데, 글래디스 나잇(Gladys Knight)이 부른 동명 주제곡 <License to Kill>은 유명한 흑인 음악 제작자인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과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의
작품이다.
17탄 <골든아이>의 음악은 프랑스 작곡가 에릭 세라(Eric Serra)가 만들었다. <레옹> <그랑블루> 등 주로 뤽 베송과 작업했던 그는 아마도 역대 007 작곡가 중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사람일 것이다. 그에게 내려지는 평가는 ‘본드가 추구하는 전통적인 오케스트라적 사운드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채 지나치게 현대화시켰다’는 식이다. 결국 제작진들은 세라의 음악을 더욱 ‘본드답게 바꾸는’ 추가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는 본드 시리즈의 작곡이 결코 작곡자의 재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존 배리가 만들어 놓은 전통을 얼마나 존중하면서 그 안에 자신의 색채를 녹여낼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었던 것이다. 사운드트랙과는 달리 주제곡은 상당히 전통에 밀접해 있었다. U2의 보컬과 기타리스트인 보노(Bono)와 에지(Edge)가 작곡하고 티나 터너(Tina Turner)가 부른 <Golden Eye>는 존 배리가 작곡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전통적인 ‘셜리 배시’풍이다.

사운드의 첨단 속에서 본드다운 음악 지키기

1997년, 영국의 한 젊은 작곡가가 007 음악에 바치는 헌정앨범 <Shaken and Stirred>를 발매한다. 기존의 제임스 본드 주제곡을 현대적으로 편곡한 앨범으로, 기존 곡들의 특징과 장점을 그대로 살린 채 현대 대중음악의 색채를 훌륭하게 입혀낸 이 걸작을 들어본 ‘본드 사운드의 아버지’ 존 배리는 007 제작사에 그를 추천하게 되는데, 데이비드 아놀드(David Arnold)가 그 주인공. 18탄 <네버다이> 이후 현재까지의 007음악을 전부 담당했으며, 2008년 개봉예정인 22탄의 음악을 만들고 있는, 명실상부한 존 배리의 후계자인 것이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어릴 적부터 본드 시리즈의 엄청난 팬이었고, 존 배리의 음악은 그를 영화음악제작자로 만든 가장 큰 영감이었다. 그가 최고의 노이즈 팝밴드 가비지(Garbage)와 함께 만든 <언리미티드>의 주제곡 <The World is not Enough>가 그 좋은 예라 볼 수 있다.
그가 시애틀 그런지 사운드의 제왕인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과 작업한 21탄 <카지노 로얄>의 주제곡인 <You Know My Name>은 어떤 장르의 음악이라도 007사운드로 들리게 하는 그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파워코드의 기타리프가 질주하는 이 곡은 크리스 코넬의 절규하는 듯한 보컬에 실려 전성기 때의 사운드가든(Soundgarden)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뒤에 깔려있는 풍부한 스트링섹션은 영락없는 본드 사운드다. 기본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007답게’ 작곡한 크리스 코넬의 역량도 놀랍지만, 이토록 다른 사운드를 솜씨 있게 편곡한 데이비드 아놀드의 능력은 앞으로의 007 시리즈의 음악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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