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感動)’이란 말에는 분명 ‘행동’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행동의 수위 면에서 보자면 좀 소극적이다. 즉 본인의 감동이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보다 적극적 행동(行動)이란 바로 고객의 추천·평가·입소문 등이다. 특히 이러한 행위는 자발적 의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을 수반한다. 상품을 팔아 이득을 보려는 게 아니라, 똑같은 소비자 입장에서 도움을 주거나 위험을 줄이려는 선의의 목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상품은 범람하고, 덩달아 광고도 넘쳐난다. 이럴수록 소비자는 더더욱 혼란스럽다. 자신의 상품이 최고라고 일방적으로 외치는 광고들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신뢰성이 있는가? 과연 15초의 쌈박한 이미지 광고에만 의지하여 구매의사결정을 내릴만한 가치가 있기는 한가?
광고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매스미디어가 몰락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매스미디어 광고는 여전히 가장 파워풀한 프로모션 수단임에 틀림없다. 인지적인 측면에서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입소문의 경우는 구매행동에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광고가 좋아도 입소문이 나쁘다면 실제 구매로 전환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광고가 좀 밋밋하더라도 입소문이 좋다면 구매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훌륭한 제품엔 좋은 입소문이 따르고, 좋은 입소문은 적극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푸드스토리’ vs. ‘스토리푸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두부산업은 전형적인 레드오션 시장이다. 경쟁자도 많고 돈도 안 될뿐더러, 상품 차별화도 쉽지 않다. 하지만 ‘상식’이란 ‘깨질 수도 있기에 붙여지는’ 식상한 명칭이다.
2006년 일본 최고의 히트상품 중 하나로 선정된 ‘오토코마에(男前豆腐店)’라는 두부회사가 있다. 보통 일본에서 두부 한 팩(모)은 70엔 정도인데, 이곳에서 출시되는 두부는 그 3배가 넘는 240엔인데도 상품이 없어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있다. 그 결과 출시 2년 만에 연 40억 엔 매출, 시장점유율 12.3%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오토코마에는 우리가 가진 두부에 대한 고정관념을 죄다 깨버린다. ‘두부는 네모나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오토코마에의 두부 중에는 언뜻 보면 서핑보드같이 생긴 범상치 않은 것도 있는데, 브랜드명조차도 ‘바람에 휘날린 두부집, 죠니’라는 생뚱맞은 이름이다. 죠니는 이 회사 사장인 이토 신고 씨의 닉네임. 이 회사는 직위에 관계없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유도하기 위해 모든 직원들에게 영어 닉네임을 사용토록 한다. 뿐만 아니다. 직원의 정성이 두부 품질을 좌우한다고 믿기에 각 상품명에는 ‘오토코마에 두부 사토시, 돼지띠’라는 식으로 직원들의 이름과 띠를 넣어주기도 한다. 이것이 소문이 나 소비자들로부터 자기 아이의 이름을 브랜드명에 넣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홈페이지 또한 도저히 두부회사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독창적이다. 강렬한 사운드의 록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두부가 아닌 젊은 남성풍의 캐릭터들. 이 회사의 타깃이 주부가 아닌 대도시 싱글족이기에 그에 맞추어 홈페이지를 제작한 것이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 두부를 살 수는 없다. 신선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 대신 오토코마에의 기념품들을 구매할 수는 있는데, 티셔츠·앞치마·모자·스티커 등 20여 품목들이 갖춰져 있다. 두부회사에서 이러한 것들을 머천다이징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분명 두부는 우리에게 평범한 음식이다. 따라서 두부라는 상품 자체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뻔하다. 하지만 오토코마에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푸드스토리가 아니라 ‘스토리푸드(Story Food)’다. 다시 말하자면, 소비자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라도 오토코마에의 두부를 사는 이유는 상품의 맛 때문만이 아니라 상품포장·브랜드명·홈페이지 등 모든 것들에 비범한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두부가 ‘더’ 맛있기도 하다.
소비자는 이제 제품이 아니라 가치를 산다. 그들은 카메라가 아니라 추억을, 요리가 아니라 정성을, 옷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구매한다. 따라서 소비는 과정일 뿐이며, 이를 통한 자아실현이야말로 그 결과다. 따라서 기업은 더 많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브랜드가 지향하는 철학과 문화를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브랜드는 점차 종교적 성향을 띠게 되며, 이에 공감하는 브랜드 전도사들은 자발적 입소문을 통해 포교활동에 나선다. 따라서 공감이 그 끝은 아니다. 공감의 저 너머에서 우리는 끊임 없는 공명(共鳴) 현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재미’를 새겨 넣는 기술
2004년 6월, P&G는 기존의 프링글스 감자칩 위에다 파란색이나 빨간색 식용잉크로 유머나 퀴즈 등을 새겨 넣은 ‘프링글스 프린츠(Pringles Prints)’라는 기발한 신상품을 출시했다. 각 감자칩 표면에는 ‘사람의 심장이 하루에 뿜어내는 피는 몇 갤런인가?’ ‘소는 왜 목에다 종을 달고 있는가’ 등의 질문이 적혀 있고, 감자칩 반대편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 놓았다. 소비자에게 먹는 재미뿐만 아니라 아는 재미까지 더해준 이 상품은 출시 6개월 만에 1,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나아가 프링글스는 프링글스프린츠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인터넷 마케팅을 전개했다. ‘서바이버 트리비아(Survivor Trivia)’라는 이름의 이 캠페인은 웹사이트를 통해 프링글스 캔이나 감자칩에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인쇄한 상품을 주문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맞춤형 상품은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아 받는 이로 하여금 다시 타인에게 입소문을 전달하는 데 기여했다.
강렬한 빨간색 프링글스 캔은 감자칩을 다 먹은 후 연필꽂이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며,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블로그나 UCC 등을 통해 남들과 공유되면서 인기를 더한다.
최근에는 ‘프링글스 안테나’라는 것이 등장해 입소문을 자극하고 있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무선으로 AP에 접속해 인터넷을 사용하다보면, 몇 십 미터 남짓한 거리 제한 때문에 접속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있다. 이때 비싼 돈을 주고 안테나를 별도 구입하지 않고 프링글스 캔을 개조해 안테나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용반경이 무려 4km에 이르기 때문에 일부 해커들이 해킹수단으로 삼는 경우까지 등장할 정도다. 별도의 추가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이점 때문에 인터넷에는 전 세계 네티즌들이 프링글스 캔을 이용해 안테나를 만드는 방법과 그 노하우들을 공유하고 있다. 아마 <스펀지> 같은 TV프로그램에 한 번 응모해 봐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상품이 좋으면 입소문이 나기 쉽다. 하지만 상품이 좋다고 무조건 입소문이 나는 것도 아니다. 경쟁이 심화되고 모방이 쉬워짐에 따라 카피되기가 매우 쉬워졌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러한 딜레마에 빠질 소지가 있는 상품일수록 차별화된 메시지 요인을 모색해야 한다. 그 중 특히 ‘재미’는 입소문을 자극하는 강력한 동인이 된다. 소비자들이 상업성에 대한 인식을 완화하면서 부담 없이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유의할 점은 재미에 집착하다보면 상품을 간과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파블로거는 상품 통역사
결혼 11년차의 쌍둥이 엄마 문성실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요리 노하우를 올리면서 주부들 사이에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녀가 블로그를 개설한 지 4년이 넘은 지금, 누적 방문자 수는 900만을 훌쩍 넘어섰고, 블로그 이웃을 맺은 사람이 3만 6,000명 이상이며, 그녀의 글을 스크랩해간 횟수도 110만 회를 넘는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그간 요리책을 4권이나 출간했고, 이런저런 수입을 합치면 연봉이 남편의 3배쯤 된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며 만들어본 요리법들을 올리기 때문에 재료나 방법이 그리 화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따라하기 쉽다는 게 장점이다. 그래서 그녀가 올린 요리법이 바로 시장의 인기로 반영되어 상품판매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그녀가 삼각김밥 만드는 방법을 올리자 인터넷쇼핑몰들에서는 김밥 만드는 틀이 동이 날 정도였다. 이런 그녀의 ‘돈 되는 수다’에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20만 원대 가격의 미니오븐을 출시한 컨벡스코리아는 인터넷상에 알파블로거들을 활용한 프로모션으로 재미를 봤다. 문성실 씨와 함께 <참 쉬운 미니오븐 쿠킹>라는 책을 출간했고, 10명의 영향력 있는 주부 블로거들에게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미니오븐을 활용한 요리 콘텐츠를 올리도록 했다. 또 ‘오븐앤조이’라는 자체 블로그를 개설해 체험단에게 35% 할인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다양한 조리 콘텐츠를 확보했다.
블로그는 그 특성상 시장이 아닌 광장(廣場)이다. 따라서 제품 자체를 팔려고 골몰하기보다는 콘텐츠를 통해 고객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관심이나 눈높이가 비슷한 블로거들로부터 나오는 진솔한 이야기야말로 신뢰의 원천이며, 신뢰는 평범한 고객을 열정고객으로 바꾸는 마법의 힘이 있다. 그리고 이들 열정고객이야말로 기업 최고의 자산이다.
‘기업 언어’와 ‘소비자 언어’는 다르다. 기업 언어는 대중을 향한 외침인데 반해, 소비자 언어는 두 사람 간의 속삭임에 더 가깝다. 알파블로거는 이 두 언어를 원활하게 소통시켜주는 일종의 ‘상품 통역사’다. 그런데 모든 통역사들의 능력은 똑같은 건 아니다.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얼마만큼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신뢰성은 차이가 난다. 자칫 어설픈 통역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왜곡시켜 결국 불신만 자초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입소문 마케팅을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바로 ‘기업-소비자(B2C)’, ‘소비자-소비자(C2C)’ 간의 통역 능력을 확보한 최적의 알파블로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위기발생도 UCC, 위기관리도 UCC?
미국에서 저가 항공으로 인기 높은 제트블루(JetBlue Air-ways). 지난 수년 간 승승장구하며 고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온 회사다. 하지만 지난 2007년 2월은 제트블루에게 최악의 나날이었다. 매서운 겨울 폭풍이 불어 닥쳐 결항이 잦아지고, 승객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재해는 항공사가 어쩔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늑장대응이 문제였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항공 스케줄이 취소되기 전에 가급적 일찍 변경된 내용들을 알려준다. 하지만 제트블루는 비행 작동기기에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치는 데 반나절을 질질 끌다가 결국 비행을 취소시켰다. 또한 승객들의 발이 묶이면 호텔을 제공해주지만, 이마저도 각 부서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한 탓에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언론에서만 튀어나온 것이 아니었다. 제트블루의 늑장대응으로 9시간이나 기내에 갖혀 있던 승객들이 블로그를 통해 불만을 토로했고, 공항에서 떨고 있던 어떤 승객은 입김을 불어 얼마나 추운지를 토로하는 UCC동영상을 유튜브(Youtube)에 올렸다. 그러자 이 소식을 접한 고객들의 발권 취소가 쇄도해 제트블루는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을 깨달은 제트블루의 CEO 데이비드 닐먼은 자사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취할 3가지 노력을 블로그 및 UCC동영상으로 공개했다. 이렇게 CEO가 직접 나서 솔직한 인정과 사과를 하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블로거들은 화를 풀고 긍정적으로 피드백했으며, 영업도 점차 정상화되어갔고, 제트블루에 대한 기업 이미지도 우호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하지만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창업자 겸 CEO였던 데이비드 닐먼은 쫓겨나 실권 없는 명예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 사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는 입소문을 언급할 때 마케팅 측면에서의 긍정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지곤 한다. 하지만 PR 측면에서의 부정적 입소문에 대한 대응도 매우 중요하다. 부정적 입소문으로 인해 상품이 단종되거나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위기관리는 언론 대응에만 치중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 양상이 달라졌다. 인터넷 활용이 보편화되고, 특히 블로그나 UCC 등을 통한 개인의 의사표현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한 마디 불만은 이제 언제라도 사회 이슈화되거나 불매운동으로 와전될 수 있으며, 더더욱 심각한 것은 그것이 당장 해결된다 하더라도 인터넷상에서는 영원히 기록으로 남게 되어 기업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기업은 조직 특성상 자신의 비즈니스 전반은 물론 그 주변까지도 가급적 통제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부정적 입소문이 발생할 조짐이 보이면 부리나케 법적 조치나 금전적 보상을 통해 해결하려 든다. 하지만 ‘해결’이라는 단어는 기업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소비자 입에다 재갈을 물리지 않는 이상 그들 간에 행해지는 입소문을 말릴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는 어떤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다. 쓴 소리도 감내할 줄 알고,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소비자와의 실질적 관계구축에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의 결실은 무엇인가? 바로 ‘브랜드 전도사’의 양성이다. 그들의 자발적 ‘행동’이야말로 긍정적 입소문을 유발하고 부정적 입소문을 억제하는 최고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