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예를 들자면, 팥빵에 팥 들어가고,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듯이… ‘자장면과 단무지’, ‘실과 바늘’, ‘나와 내 남자친구’의 관계처럼 없으면 허전하고 함께하면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그런 게 광고와 아이디어의 관계 아닐까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당연히 코끼리를 토막 내어 냉장고에 넣는다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코끼리만한 냉장고를 만들어 쏙 집어넣는다 하는 해법도 있잖아요? 아이디어란 바로 이런 사고의 열매라고 생각해요.”
“바다엔 많은 물고기가 있다. 하지만 어부는 모든 물고기를 다 잡지는 않는다. 너무 작은 물고기는 놓아주고, 먹지 못하는 물고기 역시 바다로 돌려보낸다. 결국 해질 무렵 어부의 손에는 쓸 만한 물고기 몇 마리만 남는다. 이런 게 바로 광고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아이디어다.” “특별하게 어디서 뿅~ 나타난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이라기보다는 소소한 생활 속에서 생각의 잣대를 조금만 바꾸어 보면 기막힌 아이디어로 탈바꿈하는 것 같아요.”
아이디어의 상대성 원리
아이디어란 도대체 무엇인가? ‘크리에이티브 입문’ 수업시간에 받은 질문에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로 대답을 한 흔적들이다. 어쩌면 질문의 가치(?)조차 느끼기 힘든 주제일지 모르지만, 광고와 아이디어 사이에는 이처럼 분명한 함수관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국어사전은 ‘아이디어’라는 개념을 ‘독창적인 생각·구상·착상’ 등으로 되풀어서 정의하고 있다. 웹 영(J. Webb Young)이라는 카피라이터는 ‘낡은 것을 새로이 결합시킨 것’이라고 해석했고, 어느 시인은 ‘조각조각의 경험들과 느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아이디어라고 말하고 있다.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패러다임을 처음으로 제기했던 돈 슐츠(Don E. Schultz)는 “어떤 생각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를 드라마틱하게 말해주는 그림과 언어의 조합”이라고 말하고 있고, 프랜시스 카르티에는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상치되는 생각들을 결합하여 예전에 발견할 수 없었던 그 둘의 관련성을 찾는 것이다.”라고 언명하고 있다. 브로노스키의 입을 빌면 아이디어는 “관련성이 없던 두 가지의 물체, 생각, 개념에서 유사점을 발견하는 것.”‘아이디어란 뭔가 색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아이디어’라는 말이다.
두뇌 증폭기(Brain Booster)라는 낯선 개념을 만들어 냈던 아서 밴건디(Arther B. VanGundy)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아이디어를 서로 조합하거나 연상을 통해 결합시키는 것이다. 어차피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자는 아이디어 깨우기(How to get ideas)>의 저자 잭 포스터(Jack Poster)는 이런 아이디어의 ‘상대성 원리’를 또 다른 화법으로 설파한다. “아이디어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가는 과정에서 나오기보다는 우연의 산물에 더 가깝다. 애인의 변덕에 기분을 맞춰주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자잘한 문제를 해결하는 와중에서, 푼돈이나 조금 아껴 보자는 아주 소박한 생각 끝에 나오는 일상적인 것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생각을 광고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광고 아이디어란 ‘광고의 핵심 메시지에 약간의 흥미, 기억요소, 극적 내용을 추가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어내는 남다른 발상’ 정도로 풀이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면 광고에 있어 아이디어라는 게 별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 아이디어가 없는 광고에 생각이 미치면 얘기는 확 달라진다.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가 없어 그 광고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이 죽어라 고생한 사례를 우리는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디어 없는 광고는 광고주 앞에서 AE를 바보로 만들고, 시장조사와 소비자 분석에 바친 마케터의 피와 땀을 증발시켜 버린다. 광고주에게는 천금같은 투자비용을 날리게 만들고, 경쟁 브랜드에 묻혀서 시장을 잃게 만들어 버린다.
광고는 창의성의 끊임없는 과정이라고 보는 한 아이디어는 필수품일 수밖에 없다. 계책이나 번뜩이는 생각, 새로운 시각이나 관점, 통찰력, 모험, 이 중에서 어떤 속성을 취하든 이제 아이디어와 광고를 따로 연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렸다. 왜냐하면 광고라는 일이 그 자체로 크리에이티브로 통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란 재론할 나위도 없이 광고의 궤도 속에서 중심에 위치하는 원소이다. 그 궤도의 바깥쪽에는 ‘브랜드’라는 소우주가 있다. 광고는 결국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으로 아이디어를 다시 바라보자. 컨셉트·전략·메시지·아트워크·미디어·돈·홍보·프로모션·시간, 이 모든 것들의 배합이 잘 되어야 튼튼한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브랜드의 수많은 인자들 가운데 역시 으뜸은 광고 아이디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범위를 광고에 국한하는 사고는 수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시대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의 시대는 위기를 넘어 종말을 맞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보랏빛 소가 온다(Purple Cow)> <퍼미션 마케팅(Permission Marketing)> <아이디어 바이러스(Unleashing the Ideavirus)> 등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변화의 전도사로 알려진 세스 고딘(Seth Godin)의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아이디어 없는 광고는 위험하다. 그러나 아이디어 있는 광고도 위험하다. 왜냐하면 어차피 광고는 ‘안전하지 않은 컨텐츠’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광고의 안전을 담보하던 아이디어가 이제는 광고 아닌 영역에서 차고 넘친다.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때 이미 위험이 다가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떤 광고회사는 입구에 “Creative is over!”라는 경구를 걸어놓고 있다. 아이디어의 국경은 이미 광고의 영역에 머물 수 없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증표가 아니겠는가? 광고 아이디어, 무엇이 낡은 것이고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아이디어를 판단하는 전략적 기준은 이제 광고라는 전통의 영토를 넘어서서 진정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기여하는 것인가 아닌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브랜딩의 가장 구심점에 자리 잡은 광고 아이디어, 사례의 거울에 비추어 그 옥석을 가려내 보자.
기술의 거품을 걷어내라!
광고의 본질은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아이디어다. 광고의 경쟁력은 기술력이 아니라 발상력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자본을 촉진시키는 근원적인 힘은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광고는 아이디어로 말하고 아이디어로 평가받아야 한다. 광고의 컨셉트가 명료하고 소구점이 집약되어 있을수록, 아이디어가 심플하고 감동적일수록 테크놀로지에 덜 의존해도 된다. 그런 광고일수록 개런티가 억대를 넘는 모델을 욕심내지 않는다. 문제는 ‘테크놀로지의 코팅’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알맹이’다.
테크놀로지의 버블을 걷어 내고 본질로 승부한 광고. ‘Simple is Best Policy’라는 명제를 입증해 보이는 저예산 광고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옷핀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임을 각인시킨 볼보자동차 광고, 여체의 모양을 하고 있는 ‘女’자의 겨드랑이 부분에 그려진 잔털 몇 가닥과 ‘手’자의 팔목 부분과 ‘足’자의 정강이 부위에 성성한 검은 털들로 제모제임을 한 눈에 알아보게 만든 에피레이디 광고, ON-OFF 스위치를 ON-ON 스위치로 살짝 바꿔서 ‘불이 꺼지지 않는 광고회사’라는 메시지를 웅변으로 전하는 광고회사 덴츠(電通)의 비주얼 쇼크 등이 바로 그런 사례다.
회사의 우산을 던져라!
렉서스(Lexus) 이야기다. 럭셔리(Luxury)라는 말에 어원을 둔 이 단어는 이제 하나의 자동차 브랜드명을 뜻하는 고유명사를 넘어서 사물의 속성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렉서스 스타일’, ‘렉서스화하다(Lexusized)’라는 말이 버젓이 회자될 정도다. 즉 렉서스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허영심과 물질 소유욕을 묘사하는 대명사로도 자리 잡고 있다.
렉서스는 도요타라는 잘 나가는 메이커에 안주하지 않고 브랜드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일본에서 만들지만 일본에서는 팔지 않는 글로벌 전략이나, ‘중고차 보증 프로그램’도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렉서스는 ‘절대로 가격을 할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집하면서 네트워크 방식의 딜러 시스템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또한 타깃 마케팅 전략도 상식을 깨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소비집단 ‘여피’를 대신해서 ‘보보스’족에 눈을 돌리는 선견지명은 현대 마케팅의 한 길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안전한 길을 버리고 굳이 위험한 길을 택하는 것’이 렉서스 방식이었다. 경영·생산·브랜드·마케팅·서비스·세일즈 전략 등 모든 면에서 이제 렉서스라는 이름은 세계의 표준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마케팅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품격의 망상에서 깨어나라!
‘시설·격조·품위’ 등의 단어가 호텔광고의 기본 문법으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불문율을 깨기 시작한 것은 한스브링커라는 유스텔이었다. 네덜란드의 이 싸구려 호텔은 리조트에 대한 고정관념의 족쇄를 보기 좋게 격파하고 있다. 설비와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반어법을 간결하고 재치 있게 구사하는 광고도 돋보인다. ‘방마다 문이 있다’거나 ‘개인 룸 키를 지급한다’, ‘마침내 객실에 침대를 들여놓았다’, ‘배수가 되는 양변기가 있다’, ‘불이 들어오는 전구를 갖춰 놓았다’는 등등의 호텔. 당연히 있어야 할 사실들을 대단한 특종 뉴스를 전하듯이 뻔뻔하게 자랑하는 광고들은 젊은이들의 키치(Kitsch)적 감수성을 자극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떨어진 화장실, 그래도 화장지 걸이만은 정성스럽게 정돈해 두는 풍경, 다 찢어지고 얼룩진 누더기 침대 시트와 베갯잇을 노출시키면서도 멋진 그림을 머리맡에 붙여 놓고선 ‘이보다 나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린 최선을 다합니다’라는 카피로 생색을 내는 광고 등이 한스브링커 광고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호텔 요금은 잠자는 데만 쓰여지는 최소한의 비용임을 말하듯, 최소한의 광고제작비로 최고의 크리에이티브를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의 굴레에서 탈출하라!
미디어는 이제 광고 같은 컨텐츠를 담는 그릇으로 머물지 않는다. 마셜 맥루한의 말처럼 미디어는 바로 그 자제가 메시지가 되어 버렸다. 영화와 광고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장르라는 의미의 신조어로 ‘무버셜(Movercial)’이 있다. BMW가 최근 인터넷 캐스팅의 형식으로 선보이고 있는 광고영화는 자본과 예술의 동거를 모색하는 실험이라 할 수도 있다. 종래의 PPL이 직접적인 광고 메시지를 개입하지 않고 영화의 주요 장면에 상품을 교묘하게 배치하는 간접광고라면, 무버셜은 드러내놓고 제품을 등장시키는 직접광고이다. 한마디로 무버셜은 광고를 하기 위해 고안된 영화, 즉 ‘광고영화’인 것이다. 이는 잠재적, 암시적인 홍보가 아니라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판촉이다. 방송(Broadcasting)이 도저히 엄두도 못낼 가공할 위력을 웹 캐스팅이 수행하는 것이다.
BMW 광고영화는 상업메시지를 담는 혁신적인 매체를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상업영화에 고용된 감독들의 면모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요즘 할리우드를 평정하고 있는 시네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동한다. 이를테면 <해피투게더> <중경삼림> <타락천 사> <동사서독>으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 <결혼피로연> <음식남녀> <와호장룡> <센스 센스빌리티>의 리안 감독, <로닌>을 만든 거장 존 프랑켄 하이머 등이 연출을 맡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에는 새로운 컨텐츠를 담아야 한다는 발상의 산물이 바로 무버셜인 것이다.
수용자들이 변하고 있고, 미디어도 변하고 있다. 그 안에 담길 컨텐츠도 당연히 변하고 있다. 변하는 미디어는 광고만을 예전처럼 귀빈으로 대하지 않는다. 광고는 새로운 시대의 미디어가 접견하는 수많은 손님 중의 하나에 불과한 컨텐츠일 수 있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지 않으면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이 광고의 현실이다. 그러나 광고에 있어 아이디어만 있으면 안전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안전한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