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06 : Culture&Issue - 미국의 수퍼히어로 만화에 대한 고찰(두 번째 이야기)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Culture&Issue - 미국의 수퍼히어로 만화에 대한 고찰
(두 번째 이야기)
 
  ‘황금시대’와 ‘은시대’의 영웅들  
정 성 욱 | 영상사업팀 대리
swchung@lgad.co.kr


세계 최초의 만화 수퍼히어로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은 1929년에 처음 등장해 ‘시금치 열풍’을 불러일으킨 ‘뽀빠이’를 지목하기도 한다. 변신(시금치)·초능력(힘)·숙적(브루터스)·약점(시금치 결핍) 등 수퍼히어로의 성립조건을 전부 갖추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태생 자체가 신문에 짧게 실리는 코믹스트립이라는 한계, 그리고 후일 수퍼히어로의 절대조건이 되는 비밀신분이라는 요소가 없다는 이유로 이 주장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만화책이라는 매체에서 비밀신분을 가지고 활동한 최초의 수퍼히어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남자, 클라크 켄트, 일명 수퍼맨이다.
수퍼히어로물이 현대의 신화이자 영웅전설이라는 점을 반영하듯 수퍼히어로 만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의 시대 분류는 마치 그리스 신화의 인류 역사 분류법처럼 황금시대·은시대·청동시대 식으로 나뉘어진다. 1938년,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 DC코믹스의 이전 이름)에 등장한 수퍼맨은 만화의 황금시대를 여는 최초의 영웅이었다.

만화의 황금시대(Golden Age of Comic Books: 1938~1954)

조 셔스터와 제리 시겔에 의해 만들어진 수퍼맨은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모았고, 라디오 드라마, 애니메이션, 초창기 캐릭터 산업에까지 그 범주를 넓혀갔다. 수퍼히어로가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DC(당시 내셔널코믹스)는 1939년에서 1941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수퍼맨의 흥행 공식을 답습한 수많은 수퍼히어로들을 생산해낸다. ‘어둠의 백만장자’ 배트맨, ‘아마존 공주’ 원더우먼, 빛보다 빠른 플래시, ‘바다의 왕자’ 아쿠아맨, 하늘을 나는 호크맨 등이 당시에 태어난 DC의 영웅들이다.
그런데 훗날 DC의 경쟁사가 되는 마블(Marvel) 사의 전신인 타임리 코믹스는 이와는 조금 다른 접근 방법을 택했다. <마블코믹스> 1호는 DC와의 차별화를 위해 수퍼히어로물이 아닌 미스터리·공포물·탐정극·웨스턴 등의 장르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최초의 수퍼히어로라 할 수 있는 휴먼토치(인간 횃불) 역시 원래는 인간의 광기가 낳은 공포의 존재로 탄생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결국 DC의 ‘영웅만들기’ 전략에 편승, 미국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했고, 휴먼토치 또한 차츰 그 능력을 활용해 인간들을 돕는 수퍼히어로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표적인 두 출판사 외에도 수많은 출판사들이 수백 명의 수퍼히어로들을 만들어내던 만화의 황금시대에는 2차대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선이 악을 물리친다’는 믿음이 대량으로 소비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수퍼히어로물은 국민의 애국심을 선동하기 위한 훌륭한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는 또한 수퍼히어로물의 인기를 등에 업은 출판사들이 다양한 종류의 만화들을 선보일 수 있던 시대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만화가 미국의 주류문화로 진입한 그 시점이 바로 ‘황금시대’였다.
하지만 이런 황금기는 전쟁이 끝나고 수퍼히어로물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사양길에 접어든다. 만화의 판매도 예전 같지 않았고,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소비자들은 수퍼히어로를 유치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소규모 출판사들이 문을 닫고, 대형 만화출판사들은 전략의 변화를 모색하던 시점인 1954년, 오히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 뚜껑에 못질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심리학자 프레드릭 워섬 교수가 쓴 <순수의 유혹(Seduction of the Innocen)>이라는 책 때문이었다. 청소년 범죄를 불러일으키는 만화의 해악에 대해 이야기한 이 책은 급기야 만화산업계로부터 ‘자체 규제조항’을 이끌어내는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 결국 자유로운 창작정신이 꽃을 피우던 황금시대는 막을 내리고, 은시대가 찾아왔다.

만화의 은시대(Silver Age of Comic Books: 1956~1970년대 초)



‘코믹스 코드’라 불리는 만화출판업계의 자체 규제는 기본적으로 폭력과 성을 포함한 모든 자극적 요소에 대한 규제였다. 즉 수퍼히어로물에 식상한 독자들의 눈을 잡기 위한 ‘자극적인 표현’에 대한 규제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만화출판사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은시대의 시작은 새로운 버전의 플래시의 데뷔를 기점으로 삼는다. 1940년대의 플래시보다는 좀더 날렵해지고, 유체역학(流體力學)이라는 과학이 반영된 듯한 디자인 등은 단순한 외형의 변화를 의미하기보다는 기존에 비해 더욱 치밀한 설정과 스토리 전개를 지향하는 작가들의 의지의 산물이라 할만했다. 이 새로운 플래시는 기존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과 더불어 새로운 독자들까지 아우르며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이에 고무된 DC는 그린랜턴이나 호크맨을 리디자인해 등장시킨 것은 물론, 수퍼맨·배트맨·원더우먼·아쿠아맨 같은 기존의 수퍼히어로들을 모아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라는 연합팀을 만들어 내놓는다.
이렇듯 은시대의 DC의 업적이 ‘기존 영웅들의 재발견’인데 반해, 라이벌인 마블은 오히려 황금시대보다 더 왕성한 캐릭터를 창조했는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마블의 캐릭터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수퍼히어로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스파이더맨(가난한 고학생/신문기자)·데어데블(장님 변호사)·엑스멘(차별받는 돌연변이들)·헐크(자신의 분노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도망자) 등이 그 대표적인 예. 이들은 예전의 수퍼히어로들과는 달리 인간적인 고뇌와 심각한 결점을 안고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결점과 고뇌는 이들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고 드라마틱하게 해주는 장점을 지녀 좀더 어른스러운 독자층에 어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은시대의 종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지만, 70년대 초반에 끝났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한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은시대의 끝을 알리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1971년 ‘만화 규제조항’의 개정, 1975년 성인들로 구성된 엑스멘의 재출범(그때까지의 엑스맨들은 프로페서X를 제외하고는 전부 10대들이었다), 그리고 1973년 스파이더맨의 여자친구 그웬스테이시의 죽음이 대표적인 사건들. 이후 수퍼히어로물은 좀더 심각해지고 어두워지는 변화를 겪는 청동시대를 맞는다. (다음호에 계속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