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견하고 나면 모든 것이 당연해진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사람들의 말에, 콜럼버스는 그들에게 달걀을 세워보라고 제안합니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하자 달걀 끝을 살짝 깨뜨려 세웠고, 사람들은 그제야 “그렇게 하는 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중요한 것은 방법을 알고 난 뒤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그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회자된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과 닮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건 나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좋은 아이디어는 때로 놀라울 만큼 단순합니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눈앞에 있던 것을 조금 다르게 바라봤을 뿐인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가능성이 갑자기 선명해집니다. 결과를 보고 나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누군가 먼저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것을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발견’이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방식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작은 행동을 관찰하고, 익숙한 제품이나 일상에서 남들이 지나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오래전부터 좋은 마케팅 아이디어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오히려 요즘 이 오래된 원칙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무언가를 ‘만드는 방식’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AI를 통해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공간을 만들고, 현실에서는 촬영하기 어려운 장면까지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상상과 구현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까지 만들 수 있느냐보다, 그 가능성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기술이 아이디어의 한계를 넓혀줄 수는 있지만,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것인지는 여전히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흥미로운 마케팅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기술이나 거대한 스케일과는 별개로, 좋은 아이디어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여전히 아주 작은 발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반복하던 행동, 너무 익숙해 지나쳤던 제품의 특징, 디지털 상에서 우연히 시작된 밈처럼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던 것들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어느 때보다 많아진 지금에도 결국 좋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모두가 보고 있는 것에서 아직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익숙한 일상과 행동, 제품과 문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마케팅 아이디어로 발전시킨 최근 글로벌 사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Škoda – Šhhhkoda (2026)
체코 자동차 브랜드 Škoda의 이름을 자세히 보면 알파벳 S 위에 작은 기호 하나가 있습니다. 체코어에서 ‘하체크(háček)’라고 불리는 이 기호 때문에 Škoda의 정확한 발음은 영국에서 흔히 읽는 ‘스코다’보다 ‘슈코다(Sh-koda)’에 가깝습니다. 오랫동안 브랜드 이름에 존재해왔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은 그 의미나 정확한 발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Škoda는 2026년 영국 캠페인 ‘Šhhhkoda’에서 이 작은 기호를 캠페인의 중심으로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이 정확한 발음을 처음 들으면 ‘Shhh’를 길게 따라 하게 된다는 점에서 착안해 ‘Šmart’, ‘Špacious’, ‘Štylish’처럼 브랜드와 제품의 특징까지 ‘Š’로 연결했습니다. TV와 OOH, 디지털을 비롯해 영화관이나 윔블던처럼 조용히 해야 하는 장소에서는 ‘Shhh’라는 소리 자체를 활용하며 아이디어를 다양한 접점으로 확장했습니다.
새로운 심벌을 만들거나 거창한 브랜드 세계관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수없이 봐왔던 브랜드 이름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작은 기호 하나에서 브랜드의 이름과 발음, 제품의 특징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낸 것입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더하지 않아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브랜드의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Škoda의 ‘Š’는 모두의 눈앞에 늘 있었지만, 누군가 다시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캠페인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Ecover – The Rewear Chair (2024)
벨기에에서 시작된 친환경 세제 브랜드 Ecover는 사람들이 세탁을 대하는 아주 사소한 습관에 주목했습니다. 한 번 입었지만 세탁기에 넣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옷장에 다시 넣기도 애매한 옷을 의자 위에 걸쳐두는 이른바 ‘빨래 의자’입니다.
Ecover는 흔히 게으르거나 지저분한 습관처럼 여겨졌던 이 행동을 ‘옷을 한 번 더 입기 위한 지속가능한 행동’으로 바꿔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여러 벌의 옷을 걸쳐두고 다시 입을 수 있도록 설계한 ‘Rewear Chair’를 실제 가구로 제작해 Dutch Design Week에서 공개했습니다. 바람에 쓰러진 삼나무를 활용하고, 옷을 걸 수 있는 팔을 펼칠 수 있도록 만드는 등 실제로 옷을 다시 입는 행동을 돕는 기능까지 더했습니다.
세제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더 깨끗하게 빨자’가 아니라 오히려 ‘덜 빨자’고 말한 셈입니다. 새로운 친환경 습관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던 행동을 발견하고, 이를 지속가능성이라는 브랜드의 가치와 연결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평범한 ‘빨래 의자’는 그렇게 하나의 마케팅 아이디어가 됐습니다.
캠페인은 2025 Campaign Big Global Awards Design 부문 Winner와 The One Show IP & Product Design 부문 Merit에도 선정됐습니다.
Cadbury – Made to Share (2025)
영국의 초콜릿 브랜드 Cadbury는 대표 제품 Dairy Milk의 너무나 익숙한 특징인 ‘초콜릿 조각’에 주목했습니다. 초콜릿은 원래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습니다. Cadbury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다면 꼭 똑같이 나눠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Made to Share’ 캠페인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순간 각자가 맡은 역할에 따라 초콜릿 조각의 크기를 다르게 나눈 한정판 패키지를 선보였습니다. 자동차 여행에서는 운전한 사람에게 가장 큰 몫을, 길을 안내한 사람에게 그다음 몫을, 뒷좌석에서 잠만 잔 사람에게는 가장 작은 몫을 주는 식입니다. 함께 요리하거나 여행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처럼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관계 속 작은 역할들이 초콜릿 한 판 위에 그대로 담겼습니다.
초콜릿에는 원래 조각이 있었고, 사람들은 원래 그것을 나눠 먹었습니다. Cadbury가 새롭게 바라본 것은 ‘나눈다’는 행동 안에 사람들의 관계와 각자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품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지 않고도 익숙한 초콜릿 조각이 하나의 메시지가 된 이유입니다.
늘 보던 제품에서도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는 발견됩니다. Cadbury는 제품이 이미 가지고 있던 가장 평범한 특징을 사람들의 실제 관계와 연결하며, ‘나눠 먹는 초콜릿’이라는 오랜 브랜드 자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줬습니다.
McDonald’s – Shortcuts to McDonald’s (2026)
길을 걷다 보면 정식으로 만들어진 메인 도로 옆으로, 사람들이 반복해서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생긴 샛길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를 ‘올리판텐파드제(olifantenpaadjes)’라고 부르는데, 사람들이 목적지까지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같은 곳을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입니다.
맥도날드는 2026년 이 평범한 샛길에 주목했습니다. 오픈 지도 데이터와 맥도날드 매장 위치를 함께 살펴본 결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비공식적인 지름길 중 실제 맥도날드 매장으로 이어지는 길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새로 만들거나 광고를 위해 연출하는 대신, 사람들이 실제로 이용해 온 모습 그대로 촬영해 해당 지역의 OOH와 인쇄 광고로 활용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는 때로 광고 문구보다 그들이 남긴 흔적이 더 잘 보여줄 수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우리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직접 이야기하는 대신, 수많은 소비자의 발걸음이 만들어낸 길 자체를 브랜드를 향한 자연스러운 행동의 증거로 바꿨습니다.
무엇보다 이 캠페인에는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거의 없습니다. 길도, 사람들의 행동도 이미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브랜드가 한 일은 모두가 무심코 지나쳤던 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광고가 될 수 있는 장면으로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캠페인은 공개 이후 The Drum의 ‘Ad of the Day’에 선정되며 그 단순한 아이디어와 발견의 방식에 주목받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당연하게 지나쳤던 것에 질문을 던지는 일은 좋은 아이디어의 오래된 출발점입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 누군가는 그대로 지나치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아직 아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그 차이는 결국 사람과 세상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느냐에서 시작됩니다.
AI의 발전으로 상상한 것을 구현하는 일은 빠르게 쉬워지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만으로는 차이를 만들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같은 기술과 도구가 주어졌을 때 무엇을 만들 것인지, 그 기술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인사이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노력보다 이미 우리 곁에 있지만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알아보는 시선일지도 모릅니다.
마기태 AE의 해외광고 인사이트 20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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