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왜 '완성형'보다 '성장형'에 열광할까?
최근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가 화제가 되면서 아이돌 그룹 리센느가 재조명되었습니다. 멤버 원이가 출연한 영상이 입소문을 타며 개인에게 쏠렸던 관심은 자연스럽게 팀 전체로 이어졌고, 이후 과거 발표한 곡이 역주행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신곡으로 지상파 음악방송 1위까지 거머쥐며, 리센느는 올해 가장 인상적인 성장 스토리를 만든 아이돌 그룹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1위를 했다"보다 "드디어 해냈다", "이제야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말이 더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한 팀의 성공을 축하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시간과 노력이 뒤늦게 조명받는 순간을 함께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들은 리센느를 '완성된 팀'이 아니라,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팀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 리센느가 걸어온 시간을 새롭게 발견했고,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한 것입니다. 팬들이 사랑한 것은 지금의 리센느만이 아니라, 여기까지 이어져 온 성장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언더독 효과'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끝까지 도전하는 존재에게 쉽게 감정을 이입합니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 단순히 '약자를 응원한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열광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나와 함께 성장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앞으로가 기대되고, 작은 변화 하나에도 기뻐하며, 그 과정을 함께 지나왔다는 감각이 더 큰 애착을 만듭니다. 우리는 어느새 결과보다 성장을, 완성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아이돌 그룹에만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 글로벌 브랜드들 역시 완벽한 모습보다 도전과 변화, 성장의 과정을 브랜드 서사의 중심에 놓으며 소비자가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먼저 그 브랜드를 응원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뛰어난 브랜드보다, 함께 성장하고 싶은 브랜드가 사랑받는 시대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글로벌 광고 사례를 통해 브랜드들이 어떻게 소비자와 함께 성장하는 서사를 만들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SB - Here for first steps to world bests (2026)
뉴질랜드 은행 ASB는 스포츠 스폰서십의 초점을 메달이 아닌 '첫걸음'에 맞췄습니다. 캠페인은 '모든 위대한 성취는 하나의 첫걸음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부터 세계 무대를 준비하는 국가대표 선수까지 하나의 성장 서사로 연결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ASB가 주목하는 대상이 '세계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고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우승을 기념하는 후원사가 아니라, 첫 도전부터 세계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함께하는 파트너를 자처합니다.
이 캠페인에서 스포츠는 성장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정상에 오른 선수보다,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에게 머뭅니다. ASB는 그 여정의 시작부터 함께하며 브랜드를 '성장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합니다.
Van Lanschot Kempen - Next Gen (2026)
금융 광고의 주인공은 대개 성공한 사람입니다. 여유로운 삶과 안정적인 자산, 완성된 미래를 보여주며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줍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금융기업 Van Lanschot Kempen은 최근 캠페인에서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캠페인 'Next Gen'의 주인공은 아직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청년입니다. 정상에 도착하지도 않았고, 미래가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브랜드는 "He will get there."라는 메시지를 통해 그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며, 자산 역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쌓여간다는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기존 금융 광고와의 결정적 차이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성공한 이후'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지금'에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완성된 사람보다 앞으로 더 성장해 나갈 사람을 브랜드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그 가능성을 믿는 태도 자체를 브랜드의 가치로 제안합니다.
이 캠페인에서 말하는 금융은 미래를 보장하는 상품이 아닙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곳에 이를 사람을 믿고, 그 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입니다. 완성된 미래를 약속하기보다 성장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것, Van Lanschot Kempen은 그 역할을 브랜드의 새로운 가치로 제시합니다.
PlayStation – Project: MEMORY CARD (2025)
브랜드는 시간이 쌓일수록 자신의 역사를 자산으로 내세웁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혁신을 만들어왔는지를 이야기하며 브랜드가 걸어온 시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이 30주년을 맞아 기념한 것은 자신의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캠페인은 브랜드의 역사를 기념하는 대신 플레이어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경험하고 싶은 게임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수만 명의 플레이어가 학창 시절 친구와 밤을 새웠던 순간, 처음 엔딩을 봤던 감동, 가족과 함께 웃었던 추억을 공유했고, 플레이스테이션은 그 기억들을 하나의 브랜드 필름과 음악으로 엮어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플레이스테이션이 30년 동안 브랜드와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기억을 브랜드의 역사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30년은 곧 플레이어들의 30년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처음 게임기를 잡았던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친구와 함께했던 게임은 평생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브랜드는 자신의 역사를 설명하기보다, 그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며 30주년을 완성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애착을 느낀 것은 플레이스테이션의 긴 역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 나도 있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역사와 나의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 브랜드는 더 이상 제품이나 플랫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됩니다. 어쩌면 오늘날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는 가장 오래된 브랜드가 아니라, 소비자가 자신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는 브랜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AXA France – Three Words (2025)
브랜드는 소비자보다 앞서 답을 제시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보험사 AXA는 먼저 답을 내놓기보다 소비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집을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주거적 부담이라는 현실을 확인한 AXA는 보험 약관에 단 세 단어, '그리고 가정폭력(And Domestic Violence)'을 추가했습니다. 이 작은 변화 하나로 피해자는 긴급 주거 지원과 상담 서비스를 보다 신속하게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보험은 사고 이후를 보상하는 상품을 넘어 위기의 순간을 함께하는 안전망으로 역할을 넓혔습니다.
이 사례는 브랜드가 처음부터 완성된 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소비자의 현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브랜드 역시 새로운 역할을 배우고 변화했습니다. 소비자와 함께 호흡하며 조금씩 자신을 바꿔간 결과, 보험의 의미도 함께 확장된 것입니다.
앞선 사례들이 소비자의 성장을 브랜드가 응원하고 함께하는 이야기였다면, AXA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브랜드 역시 소비자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소비자와 함께 성장하는 관계는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변화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함께 성장하는 브랜드의 시대
네 가지 사례는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브랜드는 더 이상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가 아니라, 소비자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완벽한 브랜드보다 가능성을 믿어주는 브랜드에,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브랜드보다 자신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브랜드에 더 큰 애착을 느낍니다.
결국 오늘날 브랜드의 경쟁력은 얼마나 완벽한가 가 아니라 얼마나 함께 성장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소비자의 첫걸음에 동행하고,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며, 때로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통해 스스로도 변화하는 브랜드. 이것이 지금 글로벌 캠페인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관계의 모습이자, 앞으로 더욱 오래 사랑받기 위한 조건일 것입니다.
마기태 AE의 해외광고 인사이트 20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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