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로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참가자들이 같은 재료를 받아 들고도 전혀 다른 요리를 완성해 냈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풀어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합과 방식으로 같은 재료를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결국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만든 것은 재료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냈는가에 가까웠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광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이 평준화된 시대에 제품의 스펙이나 기능 같은 '재료' 자체로는 더 이상 차별화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검색 플랫폼이나 AI를 통해 ‘딸깍’ 한 번으로 제품의 스펙과 후기, 가격 비교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토록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광고가 굳이 또 한 번 같은 정보를 친절하게 반복해서 설명해야 할까 하는 질문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이미 소비자는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글로벌 브랜드들은 ‘설명’ 대신, 소비자가 스스로 보고 느끼며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는 방식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광고가 답을 전달하기보다, 하나의 장면이나 상황을 제시하는 방식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Apple TV+ — “Severance Grand Central Activation” (2025)
애플 TV+는 드라마 <세브란스> 시즌2 공개를 앞두고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사 한복판에 실제 드라마 속 사무실을 구현했습니다. 배우들은 대사 없이 반복적인 업무 행동만 이어갑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한동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장면을 바라보게 되고,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콘텐츠를 해석하고 공유하기 시작합니다.
브랜드가 세계관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의미를 조립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한 사례에 가깝습니다.
Squarespace — “A Tale As Old As Websites” (2025)
스퀘어스페이스의 슈퍼볼 캠페인은 웹사이트 제작 플랫폼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기능이나 사용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 같은 연출 안에서 하나의 상황과 이야기를 길게 따라갑니다. 사람들은 “이 서비스가 무엇이 좋은가”를 빠르게 이해하기보다, 먼저 장면 자체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광고가 끝난 뒤에야 브랜드가 말하고자 했던 방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게 됩니다.
예전 광고가 제품의 정보를 빠르게 이해시키는 데 집중했다면, 이런 방식은 브랜드를 하나의 콘텐츠처럼 경험하게 만드는 방향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Spotify — “Spreadbeats” (2024)
스포티파이의 캠페인은 얼핏 보면 광고보다 하나의 인터넷 밈이나 장난친 영상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해당 영상 속 엑셀 스프레드시트 안에서 뮤직비디오가 재생되는 낯선 장면을 한동안 바라보게 됩니다. 브랜드가 광고 상품을 설명하는 오브제 선정조차 흥미롭습니다. 직장인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지루한 화면이자 효율의 끝판왕 프로그램 ‘엑셀’을 오히려 가장 비효율적이고 낯선 방식으로 뒤틀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광고의 기능보다, “왜 굳이 저걸 엑셀로 만들었을까?”를 먼저 이야기하게 됩니다.
사실 이 캠페인은 B2B 광고주와 미디어 바이어들을 타깃으로, 그들이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엑셀’이라는 환경 자체를 하나의 미디어처럼 활용한 사례에 가깝습니다. 가장 익숙한 업무 화면을 가장 비업무적인 방식으로 해킹해 버리며 브랜드 경험 자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해석과 대화가 발생하는 장면 자체를 만든 사례처럼 보입니다.
Corona — For Every Golden Moment (2025)
코로나의 최근 캠페인은 해 질 무렵의 빛, 바람, 파도, 사람들의 움직임처럼 특정한 순간의 분위기를 오래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장면들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코로나를 마시는 순간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제품이 중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은 특정한 순간들과 비슷한 결 안에 브랜드를 함께 위치시키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고를 보며 제품 정보를 이해하기보다, 각자 경험해 본 ‘좋았던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브랜드를 설명하는 대신,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억과 분위기 안으로 스며드는 방식처럼 보입니다.
설명은 지나가고, 장면은 남는다.
예전 광고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은 한 장의 포스터처럼 작동했습니다. 제품이 화면 중심에 놓이고, 그 옆에는 기능과 장점, 메시지가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광고는 소비자가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정보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부 광고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억됩니다.
뉴욕 한복판에서 이유도 모른 채 반복적으로 일만 하던 사람들, 엑셀 안에서 갑자기 재생되기 시작한 뮤직비디오, 해 질 무렵의 바다와 맥주 한 잔 같은 장면들. 사람들은 광고를 ‘이해했다’기보다, 어떤 장면을 경험한 것처럼 기억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원래 무언가를 완벽하게 설명 들었을 때보다, 스스로 의미를 연결했을 때 더 오래 기억합니다. 특히 SNS 시대에는 ‘잘 설명된 광고’보다, 사람들끼리 한 번 더 이야기하게 만드는 광고가 더 오래 퍼지고 소비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브랜드가 말을 잃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생존해야 하는 신생 브랜드나 퍼포먼스 중심의 광고에서는 여전히 친절한 설명과 명확한 USP 전달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광고는 여전히 정보를 설명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미 소비자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온 글로벌 브랜드들은 이제 제품의 장점을 반복해서 설명하기보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억하고 해석하게 되는 ‘경험의 장면’을 만드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제 브랜드의 역할은 정보를 정리해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자의 머릿속에 오래 남을 하나의 장면을 설계하는 일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기태 AE의 해외광고 인사이트 2026.05
'광고&마케팅 > 마기태 AE의 해외광고 인사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해외광고 인사이트] 가공된 픽셀의 시대, 우리는 왜 다시 ‘진짜’를 갈망하는가? (0) | 2026.04.27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