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앗. 먼저 사과의 말씀을. 글로 설명할 재간이 없어서. 무리해서 설명하자면 "착-!"과 "척-!" 사이의 소리. 그 특유의 카메라 셔터음 소리. 내가 사랑하던 그 소리를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오밤중, 일본 니시카사이 공원 한 구석에서.
"엇? LG폰...?"
나도 몰래 샌 말에, 폰 주인 남자는 흠칫 돌아보며
"에? 칸코쿠진...?"
이래버린다. 우앗, 일본어? 일본인이다! 민망쩍어 뒤돌라다가, 아무리 봐도 같은 또래 한국 남자애 같아서.
"아. 어, 저, 나. 힌국인."
반말과 존대를 뭉개며 웅얼거려본다. 묘한 공기, 싸한 정적. 갑자기 이상한 여자가 된 듯한 기분이. 이게 대체 뭔 상황일까. 얼른 자릴 떠야겠다.
"응, 그럼 그쪽도 LG폰?"
드디어 남자 입에서 한국어가 나왔다. 휴, 한국인은 맞네.
처음 보는 한국인 남녀가 니시카사이 한 공원에서 한국어 같지도 않은 말을 몇몇 주고 받는 동안, 남아시아인 몇몇이 로컬화 된 공손걸음으로 공원길을 총총 스쳐 간다.
"어, 아니. 나는 아이폰."
"..근데 어떻게?"
"몇 년전까진 LG폰. 지금은 아니고."
남자애 코 앞에 척 하고 보여준다. 아이폰 12 시리즈 쌈무컬러. 바사삭 깨져 있는 액정은 뭐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충전을 못해 벽돌이 된 깜깜이 액정은 신경이 좀 쓰인다. 괜히 꺼낸 걸까.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내 약점을 드러내 보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여기서 뭐하세요?"
완성형 문장으로 처음 말을 건 건 남자 쪽이었다.
"그러는 그쪽은? 뭐하시는데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건 딱 질색인데. 앗, 내가 그러고 있네? 딱히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이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단 생각에 쏘아붙인 것 같은. 쪼그려 있던 그가 폰을 끄고 불쑥 일어선다.
"저요? 담고 있는데요."
"뭘 담아요?"
"음.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모든 것."
"..잉? 그게 뭔..."
"일이라서요."
"일? 뭔 일인데요?"
"예... 뭐... 그냥 '창작활동'이라고 해 두죠."
응? '해 두죠?' '해 두죠'라니. 으, 정 떨어지는 말투. 재수 없어. 그것도 그건데 ’창작활동‘이라는 말도 상당히 좀 밥맛. 털이 바짝 선 동물처럼 나는 눈썹에 힘을 콱 주며,
"대단하네요."
"그쪽은요? 산책 왔어요?"
"예... 뭐... 산책이라 해 두죠."
아싸. 복수 성공. 근데 산책이 맞긴 하다.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첫날부터 속이 불편했다. 그래놓고 오늘 저녁은 또 무리해서 다 먹은 나. 마지막 한 숟깔. 그거까진 먹진 말 걸. 으이그 나란 인간. 아무튼 내려보낼 겸 기어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배터리 잔량을 체크하지 않은 게 실수라면 실수? 후회라면 후회? 뭐 됐다. 이제 돌아가자. 빨리.
그 순간 벼락치듯 쾅! 사이렌이었다. 잠시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린가 했다. 아니었다. 저 담벼락 너머에서 난 소리. 119가 아파트 단지로 빨간 굉음을 달고 달려왔다. 사람을 싣는 듯 했다. 나는 별 소란에 심장이 콩콩 뛰었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새끼발가락에 힘을 꼭 준다.
"여기 잘 사는 동네라 치안 좋아요. 천천히 돌다 가세요."
그래, 사이렌은 경보이자 안심의 경종. 생각해보면 치안범위 안에 있다는 증거다. 남자의 무심한 목소리 끝에, 나는 조금 안심이 된다. 이런 거에 놀랄 게 있나. 아니 근데 지가 뭔데 가라 마라야.
"오! 저거 보세요!"
곧고 긴 손가락 끝에 고양이 두 마리가 걸쳐 보인다. 수풀 밖으로 머릴 쓱 내밀고 살랑살랑 기어나오는 고양이들. 아까 천둥 소리에 놀랐던 모양이다. 근데 웃기는 점 하나는, 방금 전까진 덤덤했던 남자애가 오! 고양이닷! 하면서 갑자기 내질러버린 하이톤. 그게 갑자기 웃겨서 푹 터지려는데, 뭐가 웃겨, 하나도 안 웃겨. 그래, 웃길 이유가 없지. 꾹.
"난 별로. 고양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럴 수 있죠. 근데 왜요?"
칼같이 내지른 불호 의견, 남자는 다 받아주는 척 되받아친다. 이 이상한 화법은 뭘까. 수긍해주는 건지 반박하는 건지. 그래서 내 쪽에서라도 그냥 콱 솔직해지고 싶은.
"무시하잖아요. 나를, 아니 사람을."
"아. 그거 존중하는 거예요."
"네? 뭐를?"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나와의 거리감을 존중해주는 거라구요. 고양이가."
"아아. 예에. 고양이가."
"제 말이 좀 어렵나요?"
"아뇨? 바로 이해 했는데요."
"네. 이해해줄 줄 알았어요."
아까부터 웩, 스러운 말투. 콧잔등에 힘을 주고 노려본다. 남자 어깨 뒤로 호수인지 강인지 물의 야경이 펼쳐 있다. 꽤 많이 걸어온 모양. 고양이 꽁무니를 설설 따르며 이 요상한 대화를 계속 이어가다 보니 공원 호수 위 다리였다.
"뭘 알아요?"
날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이냐는 그런 심한 말까진 일단 아껴두고, 살짝 쏘아붙였다.
"예민하니까. 감각이 예민하니까."
"..."
"제가 말을 좀 어렵게 하는 편인데. 그래도 그 감각이라면, 이해해줄 거라고 믿었어요."
"엥? 이해 못했는데요."
그래. 지가 말을 어렵게 하는 건 아는구나. 근데 내가 예민하다고? 칭찬이야 욕이야 이게. 예민한 '감각'이니까 칭찬인가? 어쨌든 예민하단 거니까 욕인가? 마음 속에서 막 깊게 따지려는데, 밖에서 선한 비누냄새가 흘러들어온다. 내 여린 점막은 살며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엇, 비누. 냄새.“
풀과 물밖에 없는 평범한 공원, 한 줌의 바람마다 한 숨의 비누향이 어릿어릿하다. 이상하다. 풀에서 나는 걸까. 물에서 나는 걸까. 아님 사람 몸에서 나는 걸까.
"거 봐요. 예민하다니까. 감각이."
"엥? 냄새 맡는 게?"
"네에. 아까 사이렌도. 셔터음도 그렇고."
"음. 그건."
"구석에서 사진 찍는 한국인 발견한 것도 그렇고."
'발견'. 마치 내가 자기를 발견했다 는 듯이. 자기는 가만 있었는데 내가 자길 발견이나 했다는 듯이. 낯선 외국 땅 밤 공원에서 방전된 폰 말고는 손에 쥘 게 없는 순간, 내가 자기를 '애타게' '발견'했다는 듯이. 그 단어 선택이 싫어지려 했는데 순간 비누냄새가 좋아서. 그 선한 냄새가 좋아서. 그걸 망치기 싫어서 관뒀다.
"얼마나 재능인데요, 예민한 거."
"난 싫어요. 예민한 거."
"남들보다 먼저 보고, 크게 듣고. 선명히 느끼는 거잖아요."
"뭐가 좋은데요, 그게. 하나도 안 좋은데요."
"갑자기 폰이 꺼져도, 외국 땅에혼자 있게 돼도, 무언가를 찾아내니까. 외롭지 않을 수 있어. 찾아낼 수 있어. 감각이란 게 결국 그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처한 상황에서 그 반대 것을 찾는, 그 본능. 능력."
문어체 반 구어체 반스러운 그의 말투가 뒤꽁무니처럼 익숙해질랑말랑. 걷고 또 걸어 우린 디즈니랜드 관람차 코앞까지 걸어 왔다. 저 멀리 불빛이 관람차란 건 출발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나도 모르게 거기 가고 싶었을까. 같이 가줄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글쎄.
"어려워. 뭔 말을 어렵게 해, 다."
"그럼에도 이해할 줄 알았어, 다."
”내 감각이 예민하니까?”
"아니, 내 말이 다 맞는 말이니까."
"칫. 무슨..."
고양이는 어느덧 묘연히 사라졌고, 두 한국인의 꽁무니 추격전은 그냥 산뜻한 산책이 되어 있었다. 특별한 점이라면 두 사람의 검은 눈에 색색별 불빛이 쏟아질 듯 했다는 것 정도. 고요히 눈부시게. 밤새 그럴 기세로.
"좋아하게 될 거야, 언젠가."
"언젠가 뭘?"
"고양이."
"싫어. 영원히."
우린 쉽게 그러잖아. 누군가 미칠듯이 낯설어도, 문득 막 조바심 날 정도로 가까워지고 싶고. 또 영영 가까워 있다가도, 어느 날 휙 거리를 두고 싶고. 그 불안한 거리감을 고양이는 예민하게 체크해. 어제의 거리감과 오늘의 거리감을 예리하게 구별해. 상대가 싫어서가 아니야. 내가 약해서도 아니고. 그냥 감각이 예민한 거고, 관계에 섬세한 거지. 그게 고양이의 삶이고, 그게 그 삶의 아름다움인 거야.
우린 이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내가 왜 혼자 여행을 오게 됐는지, 그가 왜 혼자 공원 풀밭을 찍고 있었는지. 조금씩 터놓고 얘기하면서. 그렇게 우리 둘이 저 관람차를 올려 보면서.
"잘 봐, 내가 조종해 볼게."
그는 큰 걸음으로 걸어 나가더니 긴 팔을 휙휙 휘적인다. 관람차 불빛이 오색찬란하게 교차하다가 어느덧 그 남자애 팔짓에 맞춰 움직인다. 그의 팔이 살짝 웨이브를 주면 관람차도 살짝 파도를 타고, 그의 다리가 빠르게 흔들리면 불빛도 빠르게 흔들린다.
"에이 뭐야. 니가 그냥 저기에 맞춘 거잖아."
"아냐, 진짜 다 컨트롤 하는 거야. 너도 와서 해봐. 된다니깐."
그는 어린애 같은 소리를 내며 계속 움직인다. 나는 그게 춤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이렌처럼 보이기도 하고 고양이 꼬리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게 영 귀여워 보였다. 나는 그와 위치를 교대한다. 그는 나의 관객이 되고, 나는 그의 춤이 되어준다. 그의 사이렌이 되어주고 그의 고양이 꼬리가 되어준다. 어떤 소리도, 어떤 향기도, 어떤 어른거림도, 모두 정적이 된 것을 느꼈을 때. 고개를 돌렸고 그 자리엔 그 남자 대신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돌아와 깜깜해진 폰을 가득 충전하고, 돌아가 모국 땅을 다시 밟고서도, 나는 그때 일을 말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심지어 엄마에게도. 관람차 아래 빈 들판에서 나는 그렇게 결심했던 것 같다.
10년 정도가 지나고, 결혼을 전제로 한 소개팅 자리에서 누군가 '게임'이란 것을 내게 물었을 때. 나는 그때 일이 떠올랐다. 그 질문 한 마디에, 멈춰 있던 스크롤이 휙 돌아가듯 그때의 일들이 순식간에.
*
낯선 공간에 내버려지기를 자처하고
작은 익숙함에 귀를 쫑긋 새웠다가
경계심에 털끝을 세우는 것.
지난 상처와 다가올 걱정을 매만지다가
영문 모를 귀여움에 뒤꽁무니를 쫓고
일렁이는 향기에 나도 몰래 젖는 것.
저 멀리 바라던 환상에 기어코
한 발치 앞까지 다다르고서는
조종한다는 착각에 흠뻑 취하는 것.
문득 고개를 들면, 아무것도 없는 것.
*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누군가 '게임'이란 것을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답하고 말았다. 내게 게임은 -니시카사이에서 홀로 춤을 추는 것- 이었다.

신동혁의 게임 몇 글자 2026.01
'애드이야기 > 신동혁의 게임 몇 글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기연민의 게임질 (13) | 2025.08.01 |
|---|---|
| 게임의 효능: 근육 편! (5) | 2025.05.22 |
| 어이, 꼼짝 말고 근면성실 내려 놔. (0) | 2025.03.20 |
| 피차 소년병인데 잘해봅시다 (1) | 2025.01.15 |
| 사업 빼고 거의 모든 것들의 실패담 (10) | 2024.11.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