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의 게임질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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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배터리 3%. 충분.

카톡 딱 하나, 팀장님한테 답장만.

... ...

'종료합니다.'

(배터리를 굉장히 많이 잡아먹을 것 같은 오색찬란 애니메이션과 함께.)

망했다.

예정보다 일찍 찾아온 이별.

 

멍하니 바라본다. 굳이 보고 싶진 않지만 가끔 마주하게 되는 화면. 꺼진 화면의 빈 액정. 나는 그걸 '검은 우물'이라 부른다. 누가 독을 타놓은 것도 아니고 귀신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누구나 '검은 우물'과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와이파이 약한 지역에서 유튜브 빨리 감기를 누를 때. 가족 다 재우고 거실 TV넷플릭스를 틀 때. 자동차 시동 끄고 무심코 네비 화면을 볼 때. 빈 화면, 검은 액정, 그 검은 우물 안에는 반쯤 낯선 이의 얼굴이 있다. 그 침침하게 드리운 얼굴 역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유튜브 영상은 이내 다시 재생되고, 넷플릭스 로고는 머지않아 두- 등장하고, 차 내부 조명도 곧바로 꺼지지만. 검은 우물 속에서 봤던 얼굴은 마음속에 계속 남는다. 따르르르릉. 공덕역 3-1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릴 때도, 껌뻑이는 형광등 불빛이 반사된 스크린도어 안에서도, 분명 그 얼굴을 봤다.

 

전면 카메라로 보던 얼굴, 손거울로 보던 얼굴과는 사뭇 다른. 세면대 앞에서 평생 멋진 얼굴만 연출해 오던 그 수 천 시간의 노고가 무색해질 만큼, 정말로 보기 싫은 얼굴. 10살은 더 들어 보이고 동시에 10살은 덜 들어 보이는, 기분 나쁘게 나를 반쯤 닮은 얼굴.

 

최근엔 닌텐도 스위치2를 샀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올라 새 디바이스를 꺼내 들었을 때도 언뜻 그 얼굴을 또 봤다. 잠깐만. 누구니? 표정이 왜 그렇니? 사랑하는 선배, 친애하는 동기, 떡두꺼비 같은 후배들이 기다리는 출근길에 어째 넌 그런 침침한 얼굴을 짓고 있니? 그래, 8년 전에도 널 봤어. 난 그때 닌텐도 스위치1을 들고 있었고, 로딩과 게임 플레이 사이 그 0.5초의 틈에서 너를 본 적이 있어. 그래, 8년에도 넌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어.

 

- 혹시 도움이 필요해?

 

8년 내내 거기 갇혀 있는 2년 차 카피라이터의 얼굴이 보기 싫었고, 또 그만큼 안쓰러웠다. 게임은 곧 다시 플레이되고 화면엔 즐거운 것들로 가득해지겠지만, 검은 우물 속 그 울상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우물 속에 머리를 대고 외쳤다.

 

- 그래? 말해 봐. 바로 앞에 있잖아.

 

이 글은 8년 동안 한 우물에 갇혀 있던 2년 차 카피라이터 신동혁에게, 월요일 출근길 10년 차 카피라이터 신동혁이 보내는 도움의 손길이다. 조언의 동아줄이다. 누군가에겐 복잡한 암호문처럼 보일 테지만, 또 다른 조난자에겐 밤하늘의 구조신호처럼 선명히 읽힐지도 모른다. 정말 모르겠어서, 글로 남기는 게 두렵다. 그래도 일단 손을 뻗는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의 나를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욕심을 버리고, 반쯤 포기해.

 

 

2020년. 나에게 쓴 업무요령 메모에서.

 

동혁아, 너는 일적으로 더더더 욕심내야 한다고 스승님께 배웠어. 그 뜻을 전혀 이해 못 하다가, 욕심으로 우직하게 결과를 만드는 스승님 뒤만 졸졸 따르다가, 그 기연이 다했을 때 네 욕심에 눈뜨기 시작했어. 실제로 네 욕심은 좋은 아이디어를 낳았어. 욕심만이 낳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거든. 잘했어. 하지만 마냥 잘했다고만은 해줄 수 없어.

 

그분의 욕심은 욕심을 발휘할 수 있는 재량과 권한과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욕심이었어. 근거 있는 욕심은 성과에 도달할 수 있는 충분한 동력이 되지. 하지만 지금의 네 욕심은 담아갈 물통 없는, 뜨거운 물과 같아. 네 작은 손으로는 담을 수도 없고 뜨거워 데일 수밖에 없는. 뜨거운 물을 네 손으로 팔팔 끓이다가 너는 결국 화상을 입게 돼. 그리고 더 심각한 마음의 저온화상을 입게 돼.

 

그러니 포기해.

다 포기하진 말고. 딱 반만 포기해.

딱 반만 포기할 요령이 없다면.

빡 힘줘서 욕심 내.

그리고

빡 힘 빼서 욕심도 빼.

 

그럼 딱 절반의 욕심만 남게 돼. 팔팔 끓던 물이 딱 네 체온처럼 돼.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더 있어. 특히나 카피라이팅은 체온으로 쓰는 것이 정말 중요해. 너무 뜨거운 마음으로 쓴 카피는 프로파간다에 머물 수 있어. 물론 프로파간다에 소비자 마음 간다 할 수도 있지만. 괴벨스가 아닌 이상 궤변을 쓰기 쉽거든. 반대로 팍 식은 마음으로 쓴 카피는 챗지피티가 쓴 글처럼 돼. (너 지금 **핵심**을 찌른 거야!) 마음에 어떠한 미동도 주지 못하는, 차갑게 식은 언어의 유해가 될 수밖에 없어. , 미안. 너는 2017년이니까 챗지피티 모르겠구나.

 

어쨌든,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게 아니야. 빡 힘을 줘서 욕심을 팔팔 끓이고, 빡 힘을 빼서 욕심을 푹 식혀. 차가워질 걱정은 하지 마. 한 번 뜨거워진 욕심은 쉽게 차지지 않아. 천천히 따뜻함을 오래 이어갈 거야. 스승님은 그 잔열로 이룰 것을 이루신 거야.

 

'NEW FACE'라도 이목구비는 '제 위치'여야 해.

 

아직 넌 모르겠지만. 너는 '파격'이라는 말을 오래 쭉 가슴에 지고 살 거야. 왜냐면, 그 단어라도 가슴에 없으면, 루틴화 되고 생활화되는'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이 '직업'이 불가능하거든. 그래서 넌 파격! 파격! 파격!을 외치며 마치 파격의 거인처럼 이 광고판을 다 조사 버리려고 할 거야.

 

뭐 좋아. 괜찮아. 진심으로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연차가 쌓이고 쌓인 연차가 벽돌처럼 굳어져서 아이디어와 레토릭까지 고착화되는, 그런 카피라이터가 됐을지도 몰라. 그런데, 우리 잠깐 연예인 얘기 좀 해보자.

 

2019년. 업무요령 메모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뉴 페이스를 찾지. 연예인 관심 없는 너도 신선한 얼굴에 눈길 한 번 더 가는 게 사실이잖아. 그런데 뉴 페이스라고 해서, 정말 뉴-하게 두 눈썹이 눈 밑 아래 있고, 입술이 코 옆에 있고, 콧구멍이 각각 네모나다면... 정말 사람들이 뉴-페이스라고 열광할까? -뉴 하면서 울지 않을까?

 

모양이 새로워도, 위치는 원래 제 자리에 있어야 해. 그래야 모두가 바라던 그 페이스가 되는 거야. 정 위치를 틀고 싶다면, 반대로 모양을 정석적으로 가져 가. 그것도 유효해. 반면에, 모양도 위치도 전부 뉴-하기만 하다면, 그건 NEW가 아니야. NEW CREATIVE가 아니라 NEW CREATURE가 되는 거라구! (그것도 NEWNEW다만...)

 

이건 중요한 포인트인데, 파격이라는 것은 항상 클리셰와 공존할 수 있는 파격이어야 해. 네가 좋아하는 모든 음악은, 장르적 클리셰 위에 춤추는 파격이 공존했기 때문에, 그 음악이 될 수 있었던 거잖아. 뭔 말인지 알지?

 

(그리고 슬슬 밴드음악 좀 들어. 흑인음악 그만 듣고.)

 

한의원 앞에서는, 배트 내려놔.

 

어제 그 아이디어를 팀장님이 좋아하셨다 해서, 내일 또 비슷한 아이디어를 내면?

내일 또 팀장님이 또 좋아하시겠지.

 

너는 이틀 연속 칭찬받고, 그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무슨 건이든 그런 아이디어를 계속 내겠지. 그래선 안돼. 아무리 같은 아이디어가 똑같이 유효하다고 해도, 어제의 시장상황과 내일의 시장상황이 다르고 어제의 브랜드 위상과 내일의 소비자 행동이 달라. 고여있는 커뮤니케이션으로는 흐르고 있는 그 어떤 것도 낚아챌 수 없어.

 

특히나 광고 창작물의 흐름이란 것도 달라지고 있어. 모든 창작물이 그러하듯이 고체적 성질을 띠었다가 액체적 성질을 띠었다가 최근엔 기체적인 성질을 띠고 있어. 무슨 말인가 하면, '고체' - 전통매체를 통한 하드보일드한 메시지 전달이었다가, '액체' - 딱딱한 메시지보다는 쌍방향적인 흐름과 유기적인 소비자 경험이었다가, '기체' - 곳곳에 산재하면서 맞는 듯 아닌 듯 분위기로 감도는. 2025년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시기는 '기체'의 시대가 끝물까지 다 된 느낌이야. 네가 일하는 17년도는 '고체'의 시기가 끝나고 '액체'적인 광고들이 득세하는 시기지. 또 재미있게도, 그 액체 홍수 속에서, 고체처럼 묵직한 광고와 기체처럼 몽롱한 광고 몇몇이 액체와 변별성을 가지면서 더 빛을 보기도 할 거야.

 

수시로 변하는 크고 작은 흐름 속에

툴을 여럿 다양하게 가져가야 해.

방금 ''을 쥔 손으로 지금 ''을 던질 수 있어야 해.

 

2018년. 업무요령 메모에서.

 

구려질 필요가 있다, 자주가 아닌 선에서.

 

2022년. 업무요령 메모에서.

 

요새 유행하는 '짜친다'라는 표현을 10년 전부터 쓰던 광고계지만, 가끔은 진짜 짜쳐질 필요가 있어. 정말로 구려질 필요가 있어. 훌륭하신 선배님들 밑에서 제대로 배운 너니까. 뭐든 멋있게 하고 싶겠지만... 가끔은 그게 널 가장 멋없게 만드는 이유가 될 거야. 이유는 두 가지가 있어.

 

하나. '바보 같은 시작'이 '천재 같은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오티에서 아이디어가 20개 쏟아져 나와도, 일단 오티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아무나 낼 수 있는 아이디어라 생각해서 저기 멀리 분리수거장에 버리고 오지? (유우곽은 종이가 아니야. 알아 둬.) 그리고 다른 팀원이 그 아이디어를 들고 와서 잘되면 괜히 속으로 분해하면서 말야. 하지만 말이야. 봉준호 감독의 최고작 <마더>는 그 시작만 보면 '모성애'라는 뻔한 단초 하나였을지 몰라. 김훈 작가의 최고작 <칼의 노래>는 그 씨앗만 보면 보면 난중일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세상에 나온 건 그게 아니잖아.

 

네 머리에서 나온 '뻔한 것, 바보 같은 것'이 세상 밖에서 구체적 형태를 가지게 될 때. 천재 같은 디테일이 살처럼 돋아날 수도 있어. 지금의 나는 오히려 그쪽이 더 '아이디어블'하다고 믿는 쪽이야. 괜히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 게 아니야. 특히나 요즘처럼 '생성' 그 자체는 AI로 뚝딱 하는 시기에, 구체성에 살을 보태는 일이야말로 살아있는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해.

 

둘. 천재의 논문보다 바보의 러브레터가 더 힘이 세다.

 

모두가 아고라에서 잘난 논리를 들며 잘난 목소리로 떠들어대지만, 오히려 인터넷 게시판에선 똥 멍청한 질문글이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지. 광고의 목적은 '분초 단위로 쏟아지는 게시물들 속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어그로를 잘 끌어야 한다는 말이지. 그게 - - - 자로 시작하든, - - - 자로 시작하든 말이야.

 

그런 측면에서 바보는 천재만큼 유리하다. 유튜브만 봐도 그래. <일론과 알트먼, 두 천재의 대화!> 썸네일도 클릭하고 싶지만, <자퇴가 간절한 고3 찐따 브이로그> 썸네일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채널 주인분이 바보라는 게 아닙니다. 썸네일과 제목에서 오는 그 러프함, 그 파괴적 임팩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쁜 A컷에 예쁜 폰트로 아웅아웅 장식된 광고도 클릭하고 싶지만, 웬 초점 다 나간 사진에다가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냅다 빨간 갓 쓴 아저씨를 썸네일로 올려놓으면, 그걸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범 내려온다는데 어떡해, 그냥 물려가야지 뭐.

 

브래인롯이라는 게 한참 유행했어. 누군가는 '도파민 중독'이라니 'SNS의 폐해'라느니 '요즘 애들 바보 다 됐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건 엽기코리아부터, 그전부터 청계천에 나돌고 있던, 원초적이고 순수한 재미거든. 그 멍청한 재미가 우릴 멀쩡한 어른으로 키운 거야.

 

애써 천재가 되려 하지 말자.

바보로 시작하자.

천재적으로, 그 바보 같은 자존심을 버리자.

 

2017년. 업무요령 메모에서.

 

2023년. 업무요령 메모에서.

 

유행을 소비하고 고전을 사랑하기.

 

2022년. 업무요령 메모에서.

 

한때는 유행을 너무 몰라서. 한때는 유행을 너무 좇아서 힘든 시기가 있지.

 

그래, 최신 밈을 너무 몰라도 카피 쓰기 어려운 게 사실이야. 막내 카피라이터에게 기대하는 것이 기성세대 글빨 어설피 흉내 낸 열화버전도 아닐 테고 말이야. 그렇다고 너무 앞서가도 어려워. '또 이런 게 있어? 하하하-, 다음.' 이러곤 누군가에게 버려질 테니까 말이야.

 

이건 사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긴 해. 내가 갖고 있는 밈의 최신 버전과 사회에 통용되는 보편적 수준이 쉽사리 안 맞다가, 630분 시침 분침의 포개짐처럼 맞는 날이 오거든. (그건 또 그것대로 슬픈 일임.) 일단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 사망선고' 간 보면서 아슬하게 선 타 보자. 그 안에서는 조금 올드해 보여도 '모두가 아는 '의 힘을 믿어보자.

 

그리고 단편적 밈을 떠나서, 유행이라는 것을 대하는 태도도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TOP100 음악들 있잖아. '트렌드 공부 차원에서 들어야지 들어야지' 하면서 기어코 안 듣잖아,. 일단 들어. 진심으로 듣지 말고 막 들어버려. 조휴일 앨범 버리고 조째즈 열성 팬 되라는 게 아니야. 대충 막 듣다 보면 그 틈에서 오늘날의 고전, 10년 뒤의 클래식을 발견할 수 있어. 오늘날 가장 생생하게 살아서 들썩이는 언어들, 유행곡의 노랫말을 네 언어로 가져올 수도 있어.

 

특히나 아이돌 노래 가사는 '기성세대의 언어''10대들의 언어'가 만나는 삼각주야. 언어의 천혜보고라는 말이지. 기성 작사가가 10대 언어에 영향을 받고, 기성세대가 쓴 가사를 10대들이 흥얼거리며 재생산해. 거기서 건져 올린 워딩 하나하나가 갓 잡은 물고기처럼 팔팔 거릴 거야. 물론 구리다고 욕먹는 가사들도 있는데. 그건 돌판 커뮤니티 기웃거리면서 선생님들 말씀 잘 참고해서 거르면 되고. (~머글은 항시 겸손해야 한디.~)

 

알고리즘으로 세대 언어가 점점 파편화되는 요즘. 이런 공용 보물창고는 정말 흔치 않아. 내가 다른 건 강요 안 하는데, 이건 꼭 해. ? 알았지?

 

쓰읍. 어허이? 잔말 말고 해.

 

2024년. 이건 좀 웃겨서 넣어봤다.

 

용사여, 이제 그만 우물에서 빠져나오세요.

 

<<A버튼을 눌러 게임을 시작하세요!>>

 

, 잠깐 딴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로딩과 게임 시작 사이 언뜻 뭘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뭐랄까. 책 읽는 사람들이 문장과 문장 틈에서 새로운 의미를 추출하듯이, 게이머도 어떤 경지에 이르면 화면과 화면 틈 뭔가 특별한 의미를 경험하게 되는, 뭐 그런 걸까. 꽤 자주 예전부터 딴생각에 빠졌다. 막상 빠져나오면 무슨 생각이었더라 하면 생각나지도 않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전부 다 생각나고. 전부 부끄러운 기억들뿐이다.

 

그동안 닌텐도 스위치를 4대 써왔다. 8, 그러니까 대충 2년씩 한 권의 책을 떼나 간 것이다. 그 한 권 한 권의 기기에 그 시기 내가 담겨 있다. 기분 좋은 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울할 때 더 깊이 탐독했을 것이다. 나는 그 우울함을 검은 화면에 파묻고, 나만의 자기 연민과자아비대를 거기 묻어두고 왔을지 모른다. 4권을 전부 차곡차곡 모아둔다. 팔지도 못하고 켜켜이 한구석에 놓아놓고. 글쎄. 어쩌다 게임 얘기가 이렇게 흘러간 걸까.

 

이번 글은 특히나 부끄럽다. 붉어진 얼굴을 어디에 파묻어야 할지. 모쪼록 2년 차 그 녀석에게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무슨 어둠의 밀매상 같지만. 모두 정상작동하는 양품들이다.

 

신동혁의 게임 몇 글자 2025.07

 

Posted by HSAD공식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