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ify you are human."
연말입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가 넘쳐나는 때죠. 사랑하는 사람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서로에게 따뜻해지라고 권하며, 마음을 나누라고 얘기합니다. 모두가 아름답지만 비슷한 이야기. 그 중 UPS Store 광고는 자동화방지 시스템으로 종종 뜨는 ‘사람임을 증명하세요’라는 요구를 시즌 테마로 선정했습니다.
엄마 선물로 뭘 고르면 좋을지 AI에게 묻고,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만 하며 고민하던 청년은 어느 날 ‘사람임을 증명하라’는 메시지를 마주합니다. 늘 보던 메시지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UPS는 밖으로 나가 직접 정성스럽게 고른 선물을 소포로 보내라고 말하죠.
인터넷으로 선택해 빠르게 보내는 게 좋을 때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라면 나가서 직접 선물을 고르는 수고, 고민하는 시간, 받을 사람이 좋아할까 생각해보는 설렘. 이 모든 게 필요한 때죠. 우리는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오면 소중한 이를 위한 수고로움을 더하고, 따뜻한 얼굴이 되어주고, 새해가 되면 서로를 축복해주는 마음을 살려고 합니다. 제철에 맞게 인생을 살아가는 거죠. 그렇게 철에 맞게 사는 시간들. 그거야말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순간들이 아닐까요.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당신에게
모두가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야’라고 말할 때, 네덜란드의 맥도날드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연말의 가장 끔찍한 순간을 찾아냈죠. 이유는 사람들에게 연말에 대해 물었더니, 좋은 시즌이긴 하지만 해야 할 일도 많고 일정도 겹치고, 쇼핑과 크리스마스 준비 스트레스가 높다고 답했기 때문입니다. 맥도날드는 이 감정을 조금 유쾌하게 풀기로 합니다. 이 즈음에 경험할 법한 ‘나쁜 순간’을 모두 모았죠.
장난감 가게에서 하나 남은 인형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 연말의 혼잡한 도로, 폭발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미끄러지고 떨어지고 트램에 끌려가는 사람들, 타버린 저녁 식사와 타버린 쿠키, 전기가 나가버린 도시. 이 모든 피로함을 겪는 모두에게, 가장 편하고 쉬운 선택지가 있으니 맥도날드로 피신하라고 권합니다. "It's the most wonderful time of the year"라는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롤은 “It's the most terrible time of the year"로 개사되었습니다.
명절 때 맞는 우리의 스트레스와 비슷하겠죠. 리얼한 상황을 유쾌함을 잃지 않고 풀어가는 스토리. 45초의 위트 있는 이야기는 모두 AI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실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모두가 'Wonderful Time'을 얘기할 때 당당하게 ‘Terrible Time'을 꺼낸 맥도날드는 사람들을 모아 촬영하고 편집하고 후반 작업을 하는 대신, AI 아티스트를 모아 크리스마스의 혼돈을 만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광고 만들기의 수고로움은 AI와 마주하는 책상 앞의 시간들로 바뀐 거죠.
사람으로 사는 시간을 얘기하는 메시지에 진짜 사람은 없습니다. 인사인트는 있지만 인간은 없는 광고. 아이러니한 시대입니다.
크라스마스에 스테이크를 썰 당신에게
사람들이 모여서 만찬을 즐기고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풍경이죠. 따뜻한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와인도 한잔합니다. 모두가 종이 왕관을 쓰고 있는 정겨운 모습, 은은한 조명과 함께 따뜻한 촛불도 놓여 있습니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시간들. 하지만 음식을 먹는 순간 풍경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맛있게 먹는 얼굴 위로 선명하게 튀는 붉은 빛깔들. 새빨간 피가 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모두 개의치 않습니다. 입에 묻은 음식물은 금방 닦아내지만 얼굴에 흥건하게 묻은 핏물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점점 더 많은 피가 서로의 얼굴에 낭자해지죠. 마치 식탁에서 가축의 배를 가르듯 피는 사방으로 튀어갑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피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그들 모습 위로 메시지가 뜹니다. ‘올 크리스마스에 영국에서만 1억 8천만 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도살될 것이다.’ 동시에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대학살 (Christmassacre)'이란 조어로 바뀌죠. 동물 보호 단체 PETA의 메시지입니다. 우리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권유로 끝을 맺습니다.
크리스마스에 건넬 수 있는 매우 강한 스토리입니다. 복날이 되면 수많은 닭들이 도살되듯, 크리스마스 또한 많은 가축의 수난 시기입니다. 사람들은 입에 묻은 작은 음식물은 신경쓰지만, 수많은 피를 흘리고 죽었을 동물에겐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이 비유적으로 잘 드러나 있죠. 식탁 위의 폭력입니다. 우리에겐 더없이 평화로운 날들이지만, 동물에겐 처절한 대학살의 시기. 그래서 PETA는 늘 충격 요법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다른 사람의 후기가 중요한 당신에게
사람들은 광고 문구를 온전히 믿지 않습니다. 직접 써 본 사람의 후기나 지인들의 경험담을 훨씬 더 신뢰하죠. 아마존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캠페인, ‘Five Star Theater'. 평점 5점을 받은 후기를 연기파 배우가 리얼하게 읽어주는 겁니다. 그것도 셰익스피어 연극 톤으로 매우 진지하게. 24년에 시작된 캠페인은 좋은 반응을 얻어 25년 베네틱드 컴버배치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상품은 비데, 파자마, 슬리퍼 등 사소해 보이지만 잘 사고 싶은 제품들. 배우는 리얼하고 현실감 있는 후기를 마치 연극 대사 보듯합니다. 비데 편에선 ‘이것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내 첫째 아이를 팔겠습니다’라며 시종일관 진지하게 읽어나가죠.
펭귄 그림이 있는 파자마 후기에선 더 진지해지고 디테일해집니다.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과 혹독함, 그리고 삶의 순환이 이 잠옷에서 새로운 펭귄 가족과 함께 완전히 실현됩니다.’ ‘쓸 데 없는 고퀄’ 낭독입니다. 모든 게 이런 식입니다. 신경쓰지 않고 써내려갔을 후기를 마치 대 극작가가 쓴 듯, 진지하게 읽는 재미.
청소기에 대해서도 슬피러에 대해서도 요가 체어에 대해서도. 베네틱드 컴버배치가 진지하지 않은 순간은 없습니다. 사소한 글들이 위대한 배우의 연기로 생명력을 얻습니다. 모두가 비슷한 크리스마스를 얘기하는 시기, 아마존은 매력적인 방법을 찾았습니다.
겨울이야기
겨울은 흔히 ‘견뎌야 하는 시기’, 봄을 맞기 전에 거쳐가야 할 인내의 시간들로 보곤 합니다. 도시 생활에 지쳐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들에서 밭에서 나는 것들로 아름다운 음식을 해먹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 영화는 계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겨울에 심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배는 달고 단단하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야만 양파의 ‘단맛’이라는 더 좋은 가치를, 더 아름다운 깊이를 지닐 수 있다는 것. 그 해 겨울이 유난히 춥고 혹독하면 그 다음해 농사가 더 잘된다는 농부들의 말이 있듯, 영화는 겨울이라는 좋은 시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건넵니다.
크리스마스로 시작되는 겨울은 온기가 있는 것들이 더 반가워지는 시기입니다. 그러니 겨울에 해야 할 인사를 건네고, 겨울에 누려야 할 기쁨을 만끽하고, 겨울에 건네야 할 메시지를 보내야겠죠. 한 때 존루이스가 어떤 크리스마스 광고를 만들까, 궁금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해마다 동화 한편을 만들곤 했죠. 올해도 많은 동화들이 브랜드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마케팅의 일부이긴 하지만, 비슷하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이 겨울을 더 풍성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가장 잘 사는 방법, 소비자와 잘 교감하는 방법.
제철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숙자 CD의 해외 크리에이티브 2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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