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을 넣는 순간, 나는 마치 어떤 신비한 기운에 사로잡힌 듯했다.”
마들렌 한 입만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아는 맛’은 언제든 그 맛을 즐기던 시절과 함께하던 사람, 그때의 감정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움을 느낄 때도 사람들은 맛으로 그 마음을 달래죠. 그래서 ‘예전 맛이 아닐’ 때는 더없이 서운한 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브랜드에게도 우리가 아는 맛이 있습니다. 어떤 브랜드는 웃는 맛을 주고, 어떤 브랜드는 진한 감동의 맛을 주고, 어떤 브랜드는 늘 기발한 맛을 주고. 세상이 아는 그들만의 맛을 지키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브랜드들. 아는 맛은 브랜드의 세계에서도 강합니다.
우리가 아는 유머의 맛
언젠가부터 Coors Light는 유머 감각을 뽐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맥주맛만을 강조하는 게 아닌, 위트와 공감의 순간을 곁들이죠. 25년 슈퍼볼 캠페인에서 의도적인 오타로 시작한 “Case of Mondays"는 Coors Light의 맛을 강하게 각인시켰습니다. 그래서 Coors Light는 또 다른 유머를 기대하게 합니다.
그리고 올여름, 그들은 그들만의 ‘Chill"을 공유할 수 있는 브랜드로 데오도란트를 선택했습니다. Duradry와 협업해 만든 “Dura Chill". 마시기 딱 좋은 시원한 온도가 되면 Coors Light 캔에 그려진 산이 은색에서 진한 파란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데오도란트를 냉장고에 넣고 일정 온도가 되면 산 모양 패턴이 파랗게 변합니다. Coors Light의 슬로건인 “Choose Chill"을 데오도란트에도 적용한 거죠. ‘겨드랑이도 시원할 자격이 있다’는 브랜드의 유머와 함께. 그들은 ‘칠’한 겨드랑이를 만들어 줄 제품을 축구팬을 포함해 야외 활동을 하는 고객을 찾을 예정입니다.
태국은 다채로운 맛과 풍부한 식재료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에겐 또 하나 태국맛이 있습니다. 태국만의 유머 감각.
5분 가까이 되는 긴 콘텐츠에서 세일즈맨은 끊임없이 다양한 물건을 팔러 다닙니다.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물건은 없습니다. 말도 안되는 제품으로 고객들은 화가 나죠. 하지만 세일즈맨은 매번 “별점 5점”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돌아오는 건 매번 소비자들의 ‘분노’뿐. 운동하고 있는 남자에게는 치킨 냄새가 나는 데오도란트를, 아이에겐 아이가 앉아도 부서지는 의자를, 바이커에겐 쓰자마자 부서지는 헬맷을... 세일즈맨은 그들의 분노에 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 깨닫게 되죠. 별점 5점을 받을 만한 가치는 오직 Five Star Chicken 밖에 없다고. ‘Death of a Salesman'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콘텐츠는 태국의 방식답게 4분이 넘어 콘텐츠가 거의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반전을 놓치지 않는 태국의 맛이죠.
늘 긴 호흡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마지막엔 웃게 만드는, 우리가 아는 태국의 맛. 이 콘텐츠는 별점에 집착하는 태국 문화를 패러디한 것이기도 합니다.
늘 기본은 하는 Song의 맛
Song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는 일단 콘텐츠 내용은 차치하고 노래가 주는 흥겨움과 멜로디로 신이 납니다. 쉽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암호화폐거래소인 Coinbase는 뮤지컬 같은 콘텐츠를 공개했습니다. 2분 내내 영국인들은 행복하게 노래합니다.
‘모든 것이 괜찮다(Everything is fine)'고. 하지만 실상은 괜찮지 않습니다. 세들어 사는 집엔 비가 새고, 물가는 오르고 거리는 쓰레기로 가득하고, 사무직에서 배달업무로 전향하면서 노동시장의 어려움을 겪고. 많은 것이 암담해 보이죠. 하지만 모두가 괜찮다고 줄곧 노래합니다. Coinbase는 ‘진짜 모든 것이 괜찮다면, 아무것도 바꾸지 마세요"라고 전합니다. 오히려 이런 어려운 시기엔 암호화폐 시스템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돌려 말하는 겁니다. 노래는 신나지만 콘텐츠에서 그리고 있는 현실은 전혀 신나지 않는 상황. 흥겨운 노래는 콘텐츠의 모순을 극대화합니다.
전 세계의 전문가와 고객을 연결해 주는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Fiverr. 그들은 1987년도에 큰 인기를 얻었던 스타쉽의 ‘Nothing gonna stop us now'를 개사했습니다.
AI로 ‘아보카도가 익었는지 알려주는 앱’을 만들려는 사람과 아보카도의 열창.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모든 게 쉽다는 가사를 노래하지만 앱은 결국 완성되지 못합니다. 노래는 절정에 이르렀지만 실제 아이디어는 절정에 이르지 못하죠. Fiverr는 AI가 모든 걸 완벽하게 대신할 수 없다며, 전문가를 만나라고 합니다. 역시 노래의 맛에 흥과 메시지를 적절하게 섞어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맛으로 승부하는 맛
극단적인 쓴 맛으로 사람들이 혐오하는 술, Jeppson's Malort. 누군가는 이 술이 ‘고통의 통과의례’라고 표현하고 누군가는 도전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Jeppson's Molort은 오히려 맛으로 정면승부하기로 하죠. 세상의 혐오스러운 맛평가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한 겁니다. 있는 그대로 신랄하게 평가하면 그중에서 최고의 표현 3가지를 선택해 실제 병 라벨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일명, “Malort Tastes Like" 캠페인. 하지만 참여한 소비자들의 평가는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A Rat's Fart hole(쥐의 방귀구멍 같은 맛)", "Chewed up Aspirin from an Unwashed Butt(씻지 않은 엉덩이에서 나온, 씹은 아스피린 맛)".
혐오스러운 맛을 지독하게 과장하고 풍자하는 표현들로 가득합니다. 이 표현들 중 15개의 파이널리스트를 선택해 소비자들의 투표를 진행하게 됩니다. 이 중에서 최종 3개로 뽑힌 표현은 병 라벨로 부착돼 유통되는 거죠.
Malort은 SNS 통해 화제성을 높이면서 시카고 지역 브랜드를 벗어나 다양한 곳에서 소비되고자 합니다. 어쨌든 대담한 ‘맛’의 승부입니다. 그 맛이 환영받는 맛이든 그렇지 않은 맛이든.
아는 맛은 강합니다
‘무슨 맛인지 아니까 먹고 싶은 거다.’
개그맨이 한 이 말은 명언 같습니다. 모르면 호기심은 가지만 그리움의 대상이 되거나 기억을 소환할 수도 없습니다. 아는 맛이기에 먹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추억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하죠. 브랜드에게도 소비자가 ‘아는 맛’이 있습니다. 그 아는 맛을 강조하는 것이 브랜드가 가야 할 길이 되기도 합니다.
커피 머신인 드롱기는 누구나 다 아는 커피 머신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컴퓨터’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유는 트럼프 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정책을 세우면서, 컴퓨터는 면제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죠. 드롱기는 자신들도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데이터를 처리하고 출력을 하기에 컴퓨터와 같다고 주장합니다.
“It's not a coffee machine. It's a computer that makes coffee."
동시에 일반 커피머신보다 스마트하고 진화된 기술이라는 점도 부각합니다. 실제로 관세 정책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두가 아는 맛을 위트 있게 비틀어 기발해졌습니다.
이렇게 아는 맛은 강하기에, 브랜드는 세상이 아는 그들만의 맛을 가져야 합니다. 아는 맛으로도 소비자는 소비자가 아닌 팬이 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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