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쓴 이야기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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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토하다’, ‘피눈물을 흘리다’, ‘피를 말리다’, ‘피를 보다’, ‘피 튀기다’, ‘피도 눈물도 없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피가 끓는다’. 피가 들어가면 의미는 극단적이 됩니다. 피는 본래 몸 안에서 흘러 눈에 띄는 일이 별로 없는 데다, 색깔 또한 강렬해서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줍니다. 인간의 몸 전체를 흐르는 중요한 구성 요소여서 의미도 남다르죠. 삼국지에서 유비, 관우, 장비는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유대를 맺기 위해 피를 섞은 약속을 합니다. 혈맹입니다. 이렇게 피가 주는 힘은 강합니다. 몇몇. 캠페인에 피를 섞어 임팩트가 몇 배 더 강해진 것처럼.

 

생각보다 충격적인 당신의 피

 

플라스틱.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플라스틱에서 파생된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가고 농산물에 흘러들고 다시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지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순환합니다. 그렇게 계속 흐르는 플라스틱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요?

 

브라질의 바이오테크 기업 OKA는 굉장히 충격적인 대답을 꺼냈습니다. 말로는 수없이 들었지만 쉽게 와닿지 않았던 사실, 우리가 매일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것.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믿지 않기에 몸속 플라스틱을 눈에 보이게 만들기로 한 겁니다. 방법은 인간의 혈액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추출하는 거죠. 그들은 혈액백에서 450리터의 혈액을 모았고, 기계를 이용해 그 안의 미세 플라스틱을 분리했습니다. 과연 그게 얼마나 될까?

 

Plastic Blood OKA / 출처: Thomaz Maksud Vimeo

 

반신반의하겠지만 그렇게 얻어낸 것으로 3D프린팅을 이용해 컵, 빨대, 가방, 물병을 만들어 냈죠. 충격적인 결과물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브제는 전시 작품이 되어, 상파울루를 시작으로 브라질의 주요 도시들을 돌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종 도착지는 2511,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UNFCCC COP30)가 열리는 브라질 북부 아마존의 도시 벨렝입니다. 환경 문제를 건강 이슈로 전환하여 관심을 높이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 전시는 3,000명 이상의 관객을 맞이하였으며, 정책 결정자들을 대상으로 피로 만들어진 오브제와 교육책자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강렬합니다. 누구나 미세 플라스틱의 존재는 알고 있으나, 사람의 피에서 추출한 플라스틱이 다시 제품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심각한 양일 줄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팩트 또한 충격적이지만,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크리에이터의 피땀눈물또한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새로운 묘미를 맛보는 피의 만찬

 

신선한 피를 주재료로 한 만찬.

 

시카고는 한 때 유명 셰프들이 만든 피의 요리 향연으로 가득 찼습니다. 피 소시지 타코, 피가 곁들여진 초콜릿 케이크, 피범벅 소시지와 피처럼 생긴 술 한 잔, 피로 만든 파스타, 피로 만든 신성한 피자... 유럽 지역의 전통 요리에서 따온 것도 있고 창작한 요리도 있습니다. 피로 물들여진 다양한 요리는 시카고의 유명 식당 등에서 선보여졌죠. 우리나라의 선짓국 같은 음식들입니다. 왜들 그렇게 피로 만든 음식에 열중했던 걸까요?

 

Blood Appetit / 출처: Hital Pandya 유튜브

 

음식을 기꺼이 먹은 사람들에겐 하나의 쿠폰이 증정됐습니다. Field Museum 전시를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 캠페인 타이틀은 “Blood Appetit", 프랑스어로 맛있게 드세요라는 뜻의 “Bon Appetit"에서 차용된 겁니다. 만찬은 필드 뮤지엄의 흡혈 생물 전시를 알리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거머리, 박쥐처럼 피를 빨아 영양을 얻는 생물들을 소개하는 전시, “Bloodsuckers : Legends to Leeches". 필드 뮤지엄은 이 전시를 홍보하기 위해 여느 생물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사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피를 빨아먹는’ 존재라는 사실에 집중했죠. 전시에 앞서 흡혈 생물처럼 식사를 하며 ‘흡혈’ 체험을 해보자는 거였죠. 식사를 마친 그들에겐 QR코드가 주어졌고, 흥미를 느낀 이들은 예상보다 더 많이 뮤지엄을 찾았습니다. 결과는 관람객 수 42%가 증가되는 효과를 낳았으며, 이는 목표한 것의 2배를 초과 달성하는 기록이었습니다. 242월에 진행된  이벤트는 겨울철이면 관람객 수가 줄어드는 문제까지 해결했습니다. 나아가 255월 미국에서 열린 Effie Award에서 Grand Effie Award를 수상하기에 이르렀죠.

 

아이디어뿐 아니라 기발함이 이끌어낸 성과까지 인정받은 겁니다. 큰 비용을 들여 캠페인을 진행한 경쟁자들을 압도해 버린 마케팅 성과. 함께 캠페인을 진행한 대행사 Leo Chicago는 그야말로 피 튀기는 아이디어를 선보였습니다.

 

모두가 집중한 피 말리는 장면

 

어딜 가나 떼쓰는 아이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과 아이스크림, 초콜릿이 즐비한 공항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그중에서 특히 화제가 되어 5천만의 오가닉 조회수를 기록한 주인공이 있습니다.

 

Toblerone | Tantrum Girl / 출처: Toblerone 유튜브

 

4월 어느 날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 그날도 수많은 여행객들이 여행을 떠날 준비로 설레고 분주했을 겁니다. 그때 한 여자 아이가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하이 옥타브로 고래고래 소리 지릅니다. 사람들은 부모에겐 피 말리고 아이에겐 피가 거꾸로 솟는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자연스럽게 퍼져갔죠. 공항에 주저앉아 조용히 타이르는 엄마에게 온몸으로 소리를 지르는 아이. “토블론 초콜릿이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어. 내게 토블론은 단순한 초콜릿이 아니야. 당장 사 줘라는 절규. 공항 여행객들에 의해 촬영된 영상은, 4일 만에 틱톡 조회수 44백만 뷰, 메타에서는 37백만 뷰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채지 못한 게 있습니다. 이 영상은 단순히 떼쓰는 아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겁니다. 토블론이 ‘몰래카메라’로 연출한 퍼포먼스였으니까요.

 

미디어 비용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엄청난 조회수를 이끌어낸 거죠. 캠페인은 토블론의 메시지인 평범하지 말라 (Never Sqaure)”를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세모난 초콜릿답게 유니크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생각을 권하는 브랜드. 피 쏠릴 만큼 열연을 펼친 아이와, 역시 일상 속에서 리얼한 아이디어를 찾아낸 크리에이터의 피땀눈물이 보입니다.

 

누구의 피가 누구의 피를 구원하는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헌혈 캠페인. 아픈 사람은 계속 존재하고 누군가의 헌혈은 계속 필요하기에 관련 단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헌혈을 권합니다. 하지만 헌혈자만이 수혈자의 삶을 구하는 걸까요? Canadian Blood Service는 거꾸로 말을 겁니다.  “나는 당신을 구하러 왔어요(I'm here to save you)".

 

Who's Saving Who? / 출처: Canadian Blood Services 유튜브

 

우리가 매일 접하던 아프고 힘없는 수혈자가 아니라 당당히 화면을 바라보며 얘기하는 모습입니다. ‘당신에게 나누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교통사고, 출산의 순간, 추락 사고에도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죠. 이 이야기는 헌혈자에 초첨을 맞추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들에게 헌혈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나누는 데서 오는 성취감이자 자신이 얼마나 의미 있는 존재인지 깨닫는 기회라고 합니다. 서로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연결되는 거죠. 그래서 Canadian Blood Service는 말합니다. “누가 누구를 구하는 걸까요?"

 

세상의 수많은 훌륭한 캠페인은 크리에이터의 피로 쓴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더 좋은 캠페인을 열망하는 뜨거운 피가 절묘한 아이디어를 낳는 거죠. 하물며 니체는 말했습니다.

 

모든 글 가운데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신숙자 CD의 해외 크리에이티브 2025.06

 

Posted by 레인디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