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도 칸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경쟁을 했고, 유의미한 작품들이 수상했습니다. 늘 좋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꿈꾸는 칸의 사자는 올해도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예상했듯 생성형 AI는 주요 주제가 되었고, 구글은 세션을 통해 AI가 마케팅 전략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만들고 개인화할 수 있는지를 강조했습니다. 메타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이 브랜드 경험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강조했고, 브랜드와 소비자가 새롭게 소통하는 방법에 중점을 뒀습니다. 아마존은 데이터 기반 개인화에 주목했습니다.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에게 더 밀접하게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해, 참여도를 높이고 브랜드 로열티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죠.
결국 모두가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술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칸은 그중에서도 효과적으로 보이고 실제 변화를 만들었다고 판단되는 브랜드에게 사자를 안겼습니다.
AI의 축복
기술이 관심을 받고 발전해 가는 건 인간을 더 나은 미래로 데려다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절약하고 비용을 절약하고 더 나아가 불가능했던 것까지 가능하게 하는 일. 올해 칸 Innovation Lions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은 우리가 AI를 얼마나 이롭게 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건강 관리 솔루션 개발 회사인 KVI Brave Fund Inc. 이 회사는 생명 과학 브랜드의 마케팅과 미디어 전략을 지원하는 Klick Health와 손잡고 놀라운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위험하면서도 흔한 질병인 당뇨. 수시로 당 체크를 하고 진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지만 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사는 이들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 두 회사는 그야말로 'Innovative'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 바로 목소리로 당뇨를 진단하는 겁니다.
단 6초 ~ 10초가량의 음성을 녹음하기만 하면 애플리케이션이 AI와 머신 러닝을 활용해 음성의 미묘한 변화를 분석하는 거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89%, 남성의 경우 86%의 정확도로 당뇨병 진단을 해낸다고 합니다. 혈액 검사 대신 음성 녹음으로 대신할 수 있으니 누구나 쉽게 검사받을 수 있고요. 진정한, 혁신적인 변화입니다. ‘Voice 2 Diabetes'라는 이름의 이 캠페인은 Innovation뿐만 아니라 Pharma 부문에서도 골드 라이언을 수상했습니다.
목소리로 당뇨를 진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놀랍지만, 그 놀라움을 AI로 가능하게 한 능력도 놀랍습니다. AI는 이렇게 쓰는 거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기술로 깨뜨린 편견
축구는 보통 남자들의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월드컵에서도 유럽 리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온통 남자들만 축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관중들도 대부분 남자 축구를 선호하죠. 여자들의 축구는 남자들보다 약하고 기량이 낮으며 에너지가 적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이에 통신사 Orange와 Marcel Paris는 이 편견을 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은 늘 하던 대로 남자들의 축구를 보고 있습니다. 여느 때처럼 다소 거칠며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넘치죠. 경기도 그대로 중계도 그대로입니다. 그렇게 즐기던 그때, 놀라운 반전이 등장합니다. 남자인 줄 알았던 선수들이 여자였던 겁니다. 여자들의 경기에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모두 남자로 보이게 만들었던 거죠. 사람들은 그제야 여자 선수들의 기량과 역량도 남자 못지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스포츠만큼 성별에 따른 편견이 강한 곳도 없을 듯합니다. 여자들이 강한 경기, 남자들이 강한 경기 하면 모두들 떠오르는 종목들이 있죠. 이 종목이 우리가 가진 편견입니다. Orange의 캠페인은 여성 스포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고, 서로의 기량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합니다. 이른바 “WoMen's Football" 캠페인입니다. 칸은 이 캠페인에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부문 그랑프리를 수여했으며, 이 외에도 여러 개의 라이언을 수여했습니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기량으로 스포츠를 한다고 ‘말’로 하면 설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스포츠에 남자의 모습을 입혀,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즐기게 하다 결정적인 순간 여성 선수임을 밝힌 스토리. 이 스토리만큼 딥페이크를 효과적으로 쓴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Orange는 이 캠페인을 통해 사회를 바르게 만들어 가고 있는 브랜드라는 걸 강하게 각인시켰습니다.
데이터로 좁혀가는 거리
유럽에서는 작년, 난민 문제가 크게 부각됐습니다.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난민이 돼버린 우크라이나인들.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폴란드로 이주해 난민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낯선 이들에겐 그 어떤 곳도 녹록지 않습니다. 어딘가에 정착하려면 경제 활동을 해야 하고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만 ‘난민’이라는 위치에선 모든 게 쉽지 않습니다. 폴란드 주민도 그들을 경쟁자로 인식했으니까요.
이에 마스터카드는 데이터를 이용했습니다.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데이터. 바로 서점 옆에는 보석샵이 들어오는 게 좋고, 식당 옆의 이발소는 서로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주며, 약국과 펫샵은 붙어 있는 게 서로에게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데이터를 활용한 겁니다. 이 데이터는 실제 고객 숫자, 상거래 데이터, 부동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이와 같이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각의 상권이 어디로 들어가면 좋을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추천해 준 거죠.
데이터를 통해 자리를 잡은 두 국가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준다는 연대감을 느끼고 이웃으로서의 결속도 더 강해졌을 겁니다. 새롭게 개업한 사람들 중, 40%가 이 데이터를 이용했으며,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10% 더 끌어올렸습니다.
마스터카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가장 현명하게 활용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했고 실제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Room for Everyone"이라는 이름의 이 캠페인은 Engagement 부분 Creative Data 그랑프리를 수상했습니다.
데이터는 분석을 잘하는 게 첫 번째 주요한 과제이며, 이렇게 분석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게 더 중요한 두 번째 과제입니다. 상업적인 데이터이지만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조력자로 보게 하고, 어떻게 인식을 바꾸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술보다 중요한 이야기
23년 마드리드 지하철엔 의문의 할머니가 등장했습니다. 누군지 모를 인상 좋은 할머니 사진이 곳곳에 붙었죠. 사람들은 이 할머니가 ‘도대체 누군지’ 궁금증을 갖게 됐습니다. 많은 정보 없이 인스타 아이디와 할머니의 일상적인 사진이 실린 마드리드 지하철 광고 판. 이 할머니는 입소문을 통해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세계로까지 번졌습니다. 나중에서야 할머니는 100세 나이를 먹은 스페인의 마리나 프리에토라는 게 밝혀졌죠.
옥외 광고 기업인 JCDecaux가 아직도 옥외 광고의 효과는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David Madrid와 협력해 게재한 광고였습니다. 28명의 팔로워에서 5,000명 이상의 팔로워로 늘어날 만큼 할머니를 유명하게 만든 광고입니다. 이 캠페인은 B2B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티타늄을 비롯해 여러 개의 라이언을 획득했습니다. 지하철 광고 효과는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 인상적인 캠페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AI의 능력이 부각되고 있으며 이 기술로 뭘 할 수 있을지 모두가 고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결국 결론은 스토리의 힘이며 사람이라는 겁니다. 모두가 관심 갖고 나눌 수 있는 스토리인가, 그리고 그곳엔 사람에 그리고 세상에 이바지하는 요소가 있는가. 적어도 칸에서만큼은 스토리의 힘, 사람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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