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내 남편이었다면, 나는 당신의 커피에 독을 탔을 거예요.”
의견 차이로 격렬한 토론을 하던 이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요? 의견도 다른 데다 이미 많은 논쟁을 거친 후이기에 감정적으로 나갈 확률이 높죠. 하지만 이 얘기를 실제로 들은 이는 그렇게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내가 당신의 남편이었다면, 나는 그 커피를 기꺼이 마셨을 겁니다.”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일화입니다. 그는 늘 재치가 넘쳤고 자신감이 있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감각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여성은 적어도 논쟁에선 자신이 졌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감정적으로 응수하지 않았지만, 센스 있게 공격한 대답.
자신감은 많은 것을 다르게 만듭니다. 좀 더 대담해지고, 흥분하지 않고, 많은 말을 생략하고. 그런 태도가 결국 센스를 발휘하게 하죠.
브랜드도 자신감이 넘치면 화법이 달라집니다.
로에베가 선보인 브랜드의 자신감
스페인 패션 브랜드, 로에베. 스펠링은 LOEWE, 브랜드가 의도한 대로 읽기 힘든 철자입니다. 이 약점을 로에베는 콘텐츠로 활용했습니다. 제목은 ‘Decades of Confusion'으로 수십 년간의 헷갈림을 담았습니다.
영상의 시작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단어의 철자를 맞히는 게임. 캐나다의 배우이자 희극인이며 제작자인 댄 레비가 사회자입니다. 게다가 그는 이 콘텐츠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죠. 무대엔 1970년대 로에베 의상을 입은 미국 배우 오브리 플라자가 등장합니다. 사회자는 그녀에게 로에베의 철자를 퀴즈로 냅니다. 이해 못 하겠다는 그녀의 표정. 낯선 이름을 들은 그녀는 무슨 제품인지 힌트를 달라고 하죠. 댄 레비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라고 답합니다. 시간이 흘러, 퀴즈 게임은 1986년과 1995년을 거쳐 2024년인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집니다.
매 시기 진행되는 게임에 맞게 오브리 플라자는 시대에 맞는 로에베 의상을 입고 스타일링하죠. 물론 사회자인 댄 레비 또한 그때에 맞는 헤어 스타일과 패션을 선보입니다. 긴 시간을 함께한 로에베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는 순간입니다. 아쉬운 건, 철자 게임에서 그녀는 한 번도 정확한 스펠을 맞히지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 댄 레비는 자연스럽게 로에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24년도엔 자동차 모양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플라자, 철자를 맞히지 못하고 퇴장할 때는 자동차가 후진하듯 소리를 내는 위트를 잊지 않습니다. 이 드레스는 22년 로에베 FW 런웨이에 등장한 의상입니다.
모든 게 물 흐르듯 흘러가며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가운데, 브랜드는 시대의 패션을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워낙 오래된 브랜드인데다 명성도 높아, 로에베 철자를 틀리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여줘도 로에베는 로에베입니다. 브랜드를 들은 이는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에피소드를 차용해, 센스 있는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British Airways의 자신감 있는 생략
영국의 항공기, British Airways.
이 항공사는 늘 크리에이티브한 콘텐츠들로 이목을 끕니다. 올 3월에도 여전히 자신감이 넘치는 광고를 선보였죠.
출처: Muse by Clio 홈페이지
출처: Muse by Clio 홈페이지
영국은 섬나라여서 수많은 비행기들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그만큼 경쟁해야 하는 항공사들이 매우 많죠. 하지만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브리티시 에어웨이스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월엔 자신감의 절정을 선보였습니다.
여행 가는 사람들이 가장 큰 설렘을 느끼는 순간은 도착한 목적지 상공에서 비행기 창문을 내다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국적인 풍경에 대한 호기심, 낯선 곳에 대한 긴장감, 앞으로 펼쳐질 날들에 대한 기대가 넘치는 순간이죠. 브리티시 에어웨이스는 이 순간의 표정들을 콘텐츠에 담았습니다.
그들의 표정을 보여주기 위해 비행기 창문을 확대하고 대신 비행기에 씌어진 로고는 과감하게 잘라 버렸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광고엔 브리티시 에어웨이스가 다 보이는 콘텐츠는 없습니다. 로고 폰트와 컬러만 봐도 어떤 항공인지 모두가 알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에 콘텐츠는 오히려 강한 인상을 남기죠. 영상 콘텐츠는 창문 안의 사람 외엔 아무것도 움직이는 게 없어 스틸인가 착각할 정도로 심플합니다. 크리에이티브해지려면 과감해져야 하고,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원칙. 그들은 실제로 실행할 만큼 그 원칙을 잘 알고 있습니다.
Epidemic Sound의 모먼트들
이제 모두가 콘텐츠를 만드는 세상입니다. 유튜브에는 단어 하나만 검색해도 수많은 콘텐츠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콘텐츠들은 모두 음악이나 사운드 이펙트를 씁니다. 하지만 음악에는 저작권이 있기에,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게 현실이죠. 스웨덴에 기반을 둔 Epidemic Sound는 그런 이들을 위한 음악 라이브러리입니다. 구독만 하면 저작권이 해결된 음악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죠. 게다가 상업적인 콘텐츠도 포함됩니다. 음악가들에겐 수익이 돌아가게 하고 콘텐츠 제작자에겐 좋은 동반자가 되는 게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들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생활 속으로 더 깊게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모든 순간에 맞춘 음악으로.
‘A Sound for Every Feeling,' 캠페인 테마입니다. 3월 중순, 뉴욕과 LA 그리고 런던엔 다양한 메시지들이 나타났습니다. 주차장 벽에는 ‘할리우드에서 주차장 주인이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꿈을 짓밟는 깨달음이 올 때’라는 문구와 함께 QR code가 보입니다. 코드 옆에는 ‘Feel it, Find it'이라는 문구도 함께 보이죠.
접속하면 그때의 감정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나 사운드로 연결됩니다. 바닥에 잘 꽂혀 있어야 할 도로 표지판이 뽑혀 있는 곳엔 ‘모두가 대충 하고 있다는 확신이 주는 안심’이 있고 역시 QR코드가 있죠. 뉴욕 거리의 쓰레기봉투엔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를 사랑스럽게 받아들이며’라는 문구가 있고, ‘그들이 끝낼 생각이 있기는 한 건가 의심되는 공사 중 현장을 지나며,’ ‘영혼 없는 얼굴로 끊임없이 불평하면서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라고 부를 때’ 등 다양한 문구들이 맞춤 음악과 함께 게재됐습니다.
묘사된 상황이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공감 포인트가 있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접속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 것 같습니다. 이 맞춤 음악은 OOH와 디지털 OOH를 포함해 무려 500개의 구체적 상황을 다뤘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이 콘텐츠에서 다루는 상황은 매우 다양합니다. Epidemic Sound는 그에 맞게 음악들이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쓰이길 바랍니다. 다양한 광고만 찾아봐도 필요한 음악은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그들이 가진 음악의 다양함을 다양한 모먼트로 연결시켜 쉽게 알리고 있습니다. 대신 모든 설명은 생략했습니다. 이들이 핫해지는 건 시간문제인 듯합니다.
자신감은 제품도 생략합니다
누구나 아는 브랜드 이케아는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아예 제품도 생략했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가구 시리즈(The invisible collection)를 선보였죠.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방구석에 잔뜩 쌓여 있는 옷가지들. 그 옆엔 ‘see-through laundry basket'이라고 제품명이 보입니다. 속이 보이는 투명한 빨래 바구니이기에, 옷이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니라 투명 바구니에 담겨 있는 거란 식이죠. 소파 위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그린 낙서 옆엔 ‘보이지 않는 액자’라고 상품명이 씌어 있습니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신발 옆엔 ‘보이지 않는 신발장’이라고 소개하죠.
광고처럼 가구 없이 대충 널브져 있는 물건들을 찍어서 보내면, 실제 ‘보이는 가구’를 구매할 때 41불을 할인해 주는 행사도 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이케아 싱가폴에서 진행하고 있는, 재미있는 만우절 행사입니다. 이케아라면 굳이 제품을 사진에 담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기에, 제품 없는 광고로 오히려 위트를 만들어내고 있죠.
무함마드 알리는 경기에 앞서 늘 자신이 몇 라운드에서 승리할 것인지 예언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리의 예언은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언은 매번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죠. 그는 세상의 관심을 어떻게 불러 모을 수 있는지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자신감이 쇼맨십이 되고 이슈가 되었던 거죠. 게다가 예언이 적중하면 팬들의 환호는 더 커졌습니다. 사실 그는 예언이 아니라 매회 자신감을 내보인 겁니다. 그 자신감이 수많은 경기를 이기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거고요.
자신감은 사람에게도 큰 힘을 주듯, 사람이 만들고 소통하고 이용하는 브랜드에게도 큰 힘이 되어줍니다. 임팩트를 남기고 인상을 주기 위해선, 과감하게 생략하고 대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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