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속 따뜻함은 나에게만 보여줄래 – 갭모에, 츤데레, 쿨데레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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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일본인 크리에이터 다나카가 사용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문구. ‘모에모에 큥~’ 여기에서 ‘모에’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다들 알고 계시나요? 활용범위가 너무 넓어 번역하기 어렵지만, ‘내 마음을 흔드는 매력 포인트’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모에’라는 단어를 간단히 다루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오늘은 그 심화 과정으로 대표적인 모에 유형 ‘갭모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갭모에란, 캐릭터가 가진 두 속성의 차이(Gap)가 만들어내는 매력을 말합니다. 한국에도 알려져 널리 쓰이는 갭모에 속성인 ‘츤데레’와 그로부터 파생된 속성 ‘쿨데레’ 캐릭터를 소개해드리면, 더욱 이해가 빠르실 것 같습니다.

 

모에모에 큥~ / 출처: 내 휴대폰 깊은 곳 비밀폴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가장 성공한 츤데레

 

츤데레는 일본어 ‘츤츤거리다’와 ‘데레데레하다’의 합성어입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틱틱거리다’ ‘부끄부끄하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요, 풀어서 설명하자면 ‘겉으로는 차갑고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가끔은 (나를 좋아하는) 수줍은 속마음을 내비치는’이 있는 캐릭터를 말합니다. 매번 세 보이려고 하고, 불친절했던 여자 캐릭터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때, 그 차이(GAP)가 우리 마음속의 장막을 찢어내며 무언가 싹트게(싹틀 맹 : 일본어로 동사로 ‘모에루’라고 읽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됩니다.

가장 유명한 츤데레 캐릭터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스카’입니다. 아스카는 주인공 ‘신지’와 함께 살면서 신지에 대해 사사건건 화를 내고 무시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상처를 가리고 있던 그 갑옷이 해제될 때, 신지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중에 아스카는 신지에게 장난 삼아 키스를 해보자고 하는데.. (중략)

 

자 빨리 나한테 화를 내줘~ / 출처 : 데일리뉴스

 

아스카는 잠시 재워두고,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하는 츤데레는 바로 ‘스즈미야 하루히’입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츤데레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요, 라이트 노벨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2000만 부 이상 팔렸고,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글로벌로 대성공을 거두며 한국 지상파 방송까지 소개될 정도의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2007년의 그 열풍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작 트렌드와 모에 캐릭터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는 하나의 특이점이 됩니다.

 

이 정도면 캐릭터 카탈로그 같은 느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2기 공식 오프닝 애니메이션 / 출처: 자나 ZANA 유튜브

 

하루히는 고등학교 첫 자기소개 시간에 ‘평범한 사람들은 관심 없어, 우주인, 미래인, 초능력자정도 되는 것들만 나에게 올 것!’이라고 반 전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선언을 해버립니다. 마치 그 명령에 복종이라도 한 듯이 남자주인공 쿈, 말 없는 안경 소녀 유키, 덤벙대는 미소녀 미쿠루, 영문 모를 전학생 코이즈미가 하루히의 동아리 ‘SOS단’에 가입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쿈은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1) 하루히가 중학생 시절에 겪은 특이점 이후로, 이 세상은 하루히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2) 이 세상 자체가 그 특이점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하루히는 ‘신’에 가까운 존재이다

3) 하루히가 우울해져서 ‘이 세상 따위 망해버려’라고 생각하면 지금의 세상은 끝나버릴 수 있다.

4) 우주, 미래, 초능력자 집단이 그 상황을 우려하고 있으며, 실제로 유키는 우주인이라 할 수 있는 존재,

미쿠루는 미래에서 온 감시자, 코이즈미는 초능력자 기관이 파견한 인물이다.

 

하루히의 의도 때문인지, 아니면 하루히의 우울을 막기 위함인지(세상을 종말에서 구해내기 위해), 그들은 하루히가 원하는 대로 함께 영화도 찍었다가, 야구도 했다가, 문화제에서 공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을 몇 달간 봐왔는데도, 캐릭터들은 초반 설정과 비슷한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이전의 애니들에서도 캐릭터는 매우 중요했지만 그래도 작품의 중심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서사였습니다. 하지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서 대부분의 서사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독특한 설정을 설명하는 용도로 쓰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더 좋습니다. 이 순간의 이 캐릭터들이 영원했으면 할 정도로 사랑스러우니까요.

 

스즈미야 하루히의 대성공은 미소녀 캐릭터 일상물의 범람을 초래하게 되는데..

 

일본 만화판을 완전히 바꿔놓은 캐릭터 / 출처: 마이너 리뷰 갤러리 유튜브

 

하루히는 항상 공격적으로 자기주장만 하고, 무모하게 돌격하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 특정 인물에게만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대상이 바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화자이자, 유일하게 평범한 인물, 작중에 이름이 아닌 애칭으로만 존재하는 인물, 그래서 지금 이 콘텐츠를 시청하고 있는 나와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인 쿈입니다. 쿈은 하루히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평범함이란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보통 하루히는 쿈으로 하여금 자신이 추진하는 일들을 수행하도록 윽박지르지만, 본인의 마음이 위기에 처했을 때,아주 가끔씩 자신이 속마음을 드러내며 쿈에게 의지합니다.

바로 여기에 츤데레 캐릭터의 핵심이 있습니다. 갭모에라고 하지만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그 갭을 보여주면 그건 그냥 정신이상자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 대부분의 시간에는 츤츤거리더라도, 아주 가끔 나에게는 데레데레해주는 미소녀가 오타쿠를 미치게 만듭니다.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츤데레는 완성됩니다.

 

<장송의 프리렌> 감정 없음이 만들어 내는 감정

 

츤데레를 필두로, 갭모에 속성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우후죽순 만들어집니다. 쿨데레, 얀데레, 메가데레, 욕데레 등등. 그중에서도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점유했던 캐릭터는 대부분 쿨데레였습니다. 쿨데레는 평소에는 쿨하여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역시 아주 가끔은 나에게만 데레함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말합니다. 쿨데레는 츤데레보다 더 오타쿠의 마음을 애타게 만듭니다. 보통 츤데레는 매일 츤츤거리다가 1주일에 1번 정도는 데레데레한데.. 쿨데레는 작품 전체를 걸쳐 1~2번 정도 웃어주면 다행입니다. 가장 유명한 쿨데레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야나미 레이는, TV시리즈 26화가 진행되는 동안 딱 한 번 웃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내 연습장 표지를 장식했던 레이의 웃음 / 출처: 내 책상 깊은 곳 비밀 서랍

 

레이는 제 추억 속에 묻어 두고, 오늘 소개해드릴 쿨데레는 <장송의 프리렌>의 프리렌입니다. 23년에 처음으로 애니화가 되는 최신작이기도 하지만, 작품이 가지고 있는 정서가 쿨한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사례입니다. 보통의 판타지 모험 만화는 주요 인물들이 차례로 한 명씩 모여, 함께 싸우고 성장하면서, 마왕과 같은 최종 보스를 물리치는 과정으로 마무리됩니다. <장송의 프리렌>은 마왕을 물리친 직후, 모든 모험이 마무리된 그 시점에서 시작하는 만화입니다. 10년의 모험을 함께했던 동료들은 각자의 길로 헤어지고, 그대로 나이가 들어, 차례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수천 년을 사는 엘프 마법사 프리렌에게 인간의 일생은 너무나 짧은 시간일 뿐이기 때문에, 동료들의 죽음을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모험의 끝에서부터

 

판타지 만화책 기대작! [장송의 프리렌] 예고편!! / 출처: 학산문화사

 

프리렌은 항상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고, 어떤 일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합니다. 동료들과의 모험을 언급할 때도 항상 ‘고작 10년의 여행’이라고 얘기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프리렌의 행동을 통해 그녀의 따뜻함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녀는 ‘그냥 지나가다 들렀다’라고 말하며 10년마다 동료들의 집에 찾아가서 그들의 안위를 챙깁니다. ‘혼자 있는 것이 좋다’라고 얘기하지만 동료들이 살아있을 적 데리고 있던 제자들을 키우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과 함께 과거 마왕을 쓰러뜨렸던 모험의 루트를 다시 한번 찾아갑니다.

프리렌은 과거 자신들이 구해주었던 마을에서, 오랜 세월 속에 잊혀가는 자신들의 동상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일행의 리더, 용사 힘멜은 동상을 만들어주겠다는 마을 주민의 요청을 항상 사양하지 않았고 동상 제작을 위한 포즈 연구에 열심이었습니다.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동상은 동료가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할 프리렌이 미래에 외톨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장송의 프리렌>은 현재의 이야기 전개보다, 그로 인해 알게 되는 과거의 추억이 더 큰 울림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따뜻함, 그 쓸쓸함이 작품의 주된 정서이기 때문에, 쿨데레 캐릭터가 메인이 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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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글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거칠게 대하거나, 냉정하게 대해야겠어! 그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실까요? 그런 생각이 든다면, 지금 바로 거울 앞에 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당신이 아스카, 하루히, 레이, 프리렌 같이 생겼다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츤데레, 쿨데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저 짜증 나고 답답할 사람일 뿐입니다. 누군가에 대해 마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 사람 앞으로 가서 이야기하세요. 오직 그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표정과 함께.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