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택시난이 심각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이 심각함이 비단 ‘심야’뿐만이 아니라고 느낀다.
얼마전 장마기간 때 갑자기 쏟아지던 장대비 속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택시를 호출했던 적이 있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택시 어플들을 총동원했음에도 (카카오T, 마카롱, 타다, i.M, 고요한M) 한 시간이 넘도록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결국 택시를 타는데 실패했던 그 날 이후 나의 택시 호출은 한동안 굉장한 의심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낮밤을 막론하고 택시 호출에 성공하는 확률이 예전에 비해 아주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수요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심야 택시난을 취재한 기사를 보니 공급의 문제도 있었다.
어쨌거나 예전보다 택시를 타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나를 무척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나는 택시 타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차라는 이동수단이 너무 좋다. 직접 운전하는 것도 좋아하고, 옆에 타는 것도 좋아하고. 어디 이동할 때 지하철보다 당연히 버스를 선호하고. 커다란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좋아해서 버젓하게 KTX 기차역이 있는 지역에도 굳이 버스를 타고 갈 때가 있고. 그런데다가 내 소유의 차도 없다보니 그만큼 택시를 툭하면 이용한다. 그 안에서 주로 음악을 들으며 쉬거나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혹은 쓰고, 때로는 짧고 깊은 숙면을 취하기도 한다.
택시가 늘 즐겁고 유쾌한 이동수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여성에게 택시는 여전히 두려움을 감수해야 할 이동수단이다. 장애인에게 장애인 콜택시는 존재하지만 누리기 힘든 그림의 떡같은 존재라고 들었다. 세상의 편리는 대체로 고스란히 노인의 불편이 되므로 이제 너도나도 앱으로 호출을 하는 택시는 노인들에게 새로운 박탈감을 선사하는 존재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데 참 뻔뻔케도 나는 택시를 타며 즐거울 때가 많다. 너무 많아서 그동안 써온 책 속에 택시에 얽힌 에피소드가 몇 개나 들어가 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또 재밌는 일이 몇 개나 추가로 생겨났다. 이에 대해 나는 내가 타고난 택시복이 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이유없이 부잣집 자제로 태어나거나 이유없이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갖고 태어나는 것처럼, 나는 이유없이 택시 안에서 즐거운 경험을 자주 하는 복을 얻었다. 택시를 타서 범상치 않은 기사님을 만나뵙게 될 때마다 내가 복이 많아 또 이런 사람을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몇 달 전 택시 안에서 Arvo Part 의 Spiegel im Spiegel🎵 이 흘러나올 때도 그랬다.
“지금 혹시 클래식FM 틀어놓으신 건가요? 제가 좋아하는 곡인데 마침 여기서 듣네요.”
내가 기사님께 먼저 말을 걸었다. 나이가 지긋해보였다. 나를 위해 볼륨을 조금 올려주면서 기사님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거 그냥 제가 틀어놓은건데.”
기사님은 아이패드를 들어보이셨다. 거기에는 클래식 음악들이 빼곡하게 리스트업 되어 있었다. 출근하시면서 매번 플레이 리스트를 만든다고 했다.
“손님… 클래식 좋아하시나보네?”
기사님이 물었다.
“아…아뇨. 좋아하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요. 그냥 집에서 클래식FM을 bgm 처럼 틀어놓는 수준이죠, 뭐.”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기사님의 다음 반응을 반사적으로 유추했다. 저도 그래요 랄지, 클래식은 다 그렇게 듣는 거죠 랄지, 쉽고 어렵고가 어딨어요 그냥 자기 듣기 편한거 들으면 그게 좋은 음악이지 랄지.
기사님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그냥 틀어놓는 수준으로는 절대 클래식을 알 수 없지요.”
‘귀인’을 만났다는 감이 왔다.
기사님은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음악가들의 책을 읽고, 한 음악을 계속 듣고, 분석하고, 외우고, 다양한 버전을 비교하고, 직접 공연장에 가서 연주를 보고 하면서 보낸 시간. 그러니까,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직접 몸으로 증명해오던 시간.
“직접 가서 보면 그렇게 좋아요. 근데 자주 못가지. 비싸기도 한데, 그것보다 시간이 없지 뭐. 일하느라. 그래도 괜찮아요. 요즘엔 유튜브에 다 있어. 보고 싶은 공연들 다 거기서 보면 돼요.”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일종의 주제의식은 성인기를 앞두고 한 번, 노년기를 앞두고 한 번 크게 찾아오는가보다. 기사님에게도 이 질문이 10년 전에 찾아왔었다고 한다.
“자식 새끼들 다 키워놓고 이제 어떻게들 살고 있나 하고 내 주변 놈들을 보니까 죄다 그냥 술이에요. 뭐 등산다닌다 운동한다 하는데 다 핑계고 아무튼 몰려다니면서 맨날 술이나 마신다고. 나는 그렇게 살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선택한게 클래식이었어요.”
“어렵진 않으셨어요?”
“어렵다 마다요. 무척 고생했어요.”
왜 그런 고생을 10년간이나 하셨냐고 묻지 않았다. 실은 오히려 질투심에 가까운 감정이 일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말해보자면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고생하고 싶어 괴롭다. 혹시 지루하지는 않느냐고, 이렇게 클래식만 들으며 운전하다 졸음이 쏟아진 적은 없느냐고 내가 다소 삐딱한 마음으로 물었을 때 그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되려 내게 물었다. 어떻게 졸릴 수가 있겠냐고.
행선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말러의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하던 중이었다. 마침 당시 읽고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클래식 레코드 수집기에서 말러에게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기사님은 추천하지 않았다. 그는 나같은 초보가 벌써부터 말러를 들으면 지쳐(?)서 나가떨어질 거라고했다. 말러를 향한 도전욕이 와랑 무너진채 내리려는 차비를 하는 나에게 무뚝뚝한 기사님이 말했다.
자기는 늘 클래식 FM 채팅방에 있다고. 거기로 놀러오라고.
그런가하면 계속 아이돌 음악이 나오던 택시를 탄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나도 내가 듣고 싶은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어팟 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나중에 이어폰을 뺐고, 곧바로 택시 안에 흐르는 음악의 일관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간 중간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는 기사님의 점잖은 흥이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또) 말을 걸었다.
“기사님은 저보다 요즘 음악을 더 많이 아시는 것 같네요.”
“아, 그래요? 아마 그럴걸요? 제가 실은 젊은 사람들이 듣는 음악만 골라서 아주 열심히 듣고 있거든요.”
마침 흐르던 노래의 후렴구가 흘러나왔고, 기사님은 이제 대놓고 훨씬 크게 따라불렀다.
쾌활한 목소리로
손을 잡아 따라와
맑은 날씨 보름달
가르쳐줘 오늘 밤
가나다라마바사
나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고 기사님은 만족했다.
“아이 손님이 이렇게 기분좋게 웃어주시니 제가 정말 기쁩니다.”
대단하세요, 저는 아직도 방탄소년단 멤버가 몇 명인지조차 모르는데요, 라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사님은 또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호명했다. 나는 또 크게 웃었다.
이야기를 더 나누며 기사님이 오래 암투병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완쾌할 수 있었고, 그 순간 강력하고 가공할만한 기쁨과 감사를 느꼈고, 동시에 또한 간절한 욕구 하나가 자신을 사로잡았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이 지금 느끼는 이 기쁨과 감사를 자신의 차에 들어서는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아이돌 음악을 그래서 듣기 시작했어요. 아이돌 음악은 다 신나고 기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요. 젊은 친구들이나 듣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진짜 너무 좋아요.”
저토록 돌진하는 기쁨과 명랑함은 대체 얼만큼의 고통과 슬픔을 알았어야 가능해지는 것인지.
“기사님, 저는 음악보다도 완쾌되셨다는 소식이 가장 신나고 기분좋네요.”
울컥하는 걸 참느라 딱딱해진 표정으로 나는 말했다. 기사님은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아이돌 음악을 따라 부르며 살겠다는 결론이 조금 이상한 다짐을 하셨다.
한편 전주에서는 뜬금없이 클로버를 좋아하냐고 물었던 택시기사님이 있었다. 택시 기사 일을 하다가 짬이 날 때면 클로버가 무성하게 피어있는 곳에 가서 세잎클로버도 따고, 네잎클로버도 따고, 다섯잎클로버도 딴다면서.
“저는 한 번도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던 적이 없어요. 그걸 발견해야 행운이 올텐데..”
내가 말했을 때, 네잎클로버를 따서 진짜 행운이 찾아오는거면 지금쯤 자신은 억만장자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기사님은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행운을 비는 마음으로 당신이 찾아낸 납작하고 곧게 말려놓은 네잎클로버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받아드는 내 손이 가늘게 떨렸다. 정말로 행운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예쁘고, 바스러질 것 처럼 연약했다. 나는 그 행운을 내가 읽던 책 속에 하룻동안 끼워두었다가, 그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와 동행했던 임경선 작가님이 읽던 책 속으로 옮겨 넣어주었다.
그 밖에도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기사님을 만나 신나게 채식이야기를 나눈 적도, 기상천외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기사님을 만난 적도, 역대급으로 욕을 무섭게 내뱉던 기사님(여성이었다)을 만나 발음연습을 했던 적도, 빨간 신호등에 택시가 멈춰설 때마다 운전대의 경음기가 위치한 판판한 곳에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한자연습을 하던 기사님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던 적도 있다.
이쯤되면 내가 택시복을 타고났다는 가설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쓰다보니 이 복의 치명적인 하자를 하나 발견했다. 만약 내 택시복이 진정으로 완벽하다면 이런 택시난 속에서도 나의 호출에는 문제가 없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내 택시복이 완벽해지려면 정치가 나서서 택시난이 해소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
복도 정치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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