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가 뒤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

 

“프로세스 이코노미”라는 책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광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지점들과 맞닿아, 좁게는 광고, 넓게는 마케팅에서 폭넓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여기 가져와 봤다.

 

도서 '프로세스 이코토미' / 출처: yes24 도서

 

책의 요지는 이렇다. 과거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품을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되는 시대에는 그 제품 자체로의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마케팅이 가능했다. “혁신”, “차세대” 뭐 그런 마케팅의 말들 말이다. 그러나 너도나도 기술이 발전된, 상향 평준화의 시대에 이르러 어떤 제품의 기술은 소비자에게 마케팅적으로 신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과정에서 주목되는 건 오히려 제품 밖,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나 이유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프로세스 이코노미가 지적하는 그간의 ‘아웃풋 이코노미’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 사례로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Don’t buy this jacket”을 대표로 얘기한다. 옷을 산다는 것은 그것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발생하는 화학 물질은 물론, 그것을 직조하기 위해 투여되는 빈국의 노동 환경 등 얼룩진 과정들을 겪게 되는데, “사지 말라”는 메시지는 이런 감춰진 과정들을 반대하는 것에 동의해 달라는 얘기와 같다. 그 동의는 곧 같은 생각을 하는 브랜드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Open your World – World Apart / 출처: 하이네켄 UK 공식 홈페이지

 

또 하나의 사례는 하이네켄의 “Open your World – World Apart”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에서 보여주는 하이네켄은 일반적으로 맥주 캠페인이 보여주는 즐거운 분위기에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게 되는 파티가 아니다. 오히려 살얼음 같은 분위기가 더 맞다. 사회적 갈등에 가장 극단적인 사람들, 좌파와 우파, 동성애자와 동성애 혐오자들이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간단한 미션을 하고, 대화를 하고, 함께 맥주를 마신다. 그러다 갑자기 영상을 통해 각자의 입장을 얘기하는 녹화된 인터뷰가 나온다. 당황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누가 봐도 뭔가 곧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 그러나 누군가를 알고 대화한다는 것, 그 자체로 갈등을 해소하면서 그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건 하이네켄이다. 이는 앞서 파타고니아의 공식과도 유사하다. 우리가 감추고 싶어하는 것들, 또 보면 불편한 것들이 결국 우리가 마주 보고 해결해야만 하는 것임을, “용기 있는” 브랜드로 포장하고 있다.

 

또 하나 “마이너리티 디자인”이라는 책을 읽었다. 광고를 시작하는 이, 혹은 요즘 광고를 고민하는 이에게 광고란 앞으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 가져와 봤다.

 

도서 '마이너리티 디자인' / 출처: yes24 도서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광고를 고민하며 책은 시작한다. 태어난 지 3개월 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시각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어느 일본 광고인이 이 책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본래 누구나 다 알 만한 브랜드에, 큰 예산을 쓰던 광고를 주로 담당하던 작가는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강자를 위한 광고가 본래적 의미에서의 광고가 될 수 있을까”, “강한 것을 강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부족한 부분, 필요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 본래의 광고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하는 질문들 말이다.

 

대중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많은 것들은 피라미드 꼭짓점으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을 강조한다. 엘리트들이 정한 규칙에 따라, 보다 우월하고, 강한 자만이 강하게 남는 그런 경쟁. 그러나 대중이 아닌 각자의 기준으로 보면, 경쟁은 많은 이들이 제각각의 영역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은 사회에서 소외될 수 있는 부분을 줄여 가면서, 나아가 새로운 비즈니스로의 토대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것이 책의 저자가 지금까지도 키우고 있는 대표적인 이벤트 브랜드인 ‘유루스포츠’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팔이 없어도, 다리가 없어도, 즐거움을 바탕으로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룰 안에서 경쟁해 볼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 브랜드. 아마도 엄청난 예산의 프로 스포츠에 비해 대중적 인기를 얻긴 어렵겠지만 누군가에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브랜드라서.. 가슴이 벅찬 느낌을 받았다.

 

자신에게 맞는 룰 안에서 경쟁하는 사람들 / 출처 : 유루스포츠 공식 페이스북

 

위 두 가지 책은 오묘한 연결고리를 가진다. 과거의 일반적인 혁신 모델이 미래를 향한 기술적 혁신, 수익 모델의 지능화를 이야기했다면, 이 두 가지 책이 얘기하는 혁신은 혁신이라는 게 사실 우리의 ‘오래된 미래’에 존재했음을 드러낸다. 마치 동화 속 파랑새와 같이, 알고 있었고, 본래 그래서 시작했던 이 일은 결국 미래에도 있었음을. 프로세스 이코노미는 제품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나온 과정이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 있을 수 있음을 얘기한다.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대중보다는 소수의 이들을 위한 고민이 새로운 비즈니스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얘기한다.

 

최근 많은 광고 콘텐츠들은 브랜드의 이야기보다 ‘말초자극’을 우선으로 얘기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선정적, 폭력적 소재뿐만 아니라 최저가와 득템, 교묘한 럭키 드로우를 통해 도박성 광고도 그럴듯한 광고 디자인 속에 숨어있는 마찬가지의 말초자극적 광고 메시지다. 이는 한계에 이른 제품과 기술 혁신의 한계에서 손쉽게 접하게 되는 마케팅 방식의 매력적 선택지일 수 있다. 또 모든 효과가 즉각적이고, 직관적이기 때문에 수치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광고인들과 광고주들에게도 적합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자극적 소재들 사이에서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앞서 책에서 언급된 브랜드들의 용기, 광고인의 용기를 우리는 만나본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너무 전설처럼만 느끼는 것은 아닌가. 광고라는 것이 과연 지금처럼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시절도 있었는가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