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을 아마 ‘먹방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도 한국어 발음 그대로 ‘mukbang’으로 알려져 고유명사처럼 불리고 있죠. ‘먹는 방송’의 줄임말인 만큼,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컨텐츠인데요. 우리는 왜 남이 먹는 모습에 열광할까요? 남이 먹는 모습을 통해 추구하는 만족은 어떤 것일까요?
이번 포스트에서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통해 음식의 공연성과, 음식과 트라우마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다시 먹방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등장 이래로 계속 발전하고 다양화되는 중인 먹방은 ‘대식좌’, ‘소식좌’, 'ASMR' 등 여러 테마의 컨텐츠를 생산해내고 있죠. 이를 보면 먹방이 단순히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먹는 것이 컨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취식 행위 자체가 가지는 어떠한 공연성이 있겠죠. 사실 음식은 우리의 오감을 모두 만족시키는 아주 대표적인 소재입니다. ‘문화생활’로 일컬어지는 예술이 사회에 주는 에너지가 감각적인 자극이라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이 시각과 청각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미각, 후각, 촉각은 우리가 예술을 소비할 때 흔히 접하지 못하는 감각이지요. 이때 취식이라는 것은 시청각에 더해 나머지 세 가지 감각까지 골고루 자극하는 행위입니다. 먹방에서는 마이크를 통해 먹는 소리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그 맛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는 먹는 모습, 소리, 묘사가 취식의 다양한 감각을 효과적으로 돋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음식을 먹는 것은 의미 있는 예술 행위가 될 수 있는데요. 취식 행위가 주는 것이 사실 감각적 만족감 만은 아닙니다. 정서적 자극 또한 정말 큰 요소지요. 취식이란 음식을 실질적으로 내 몸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 번 몸 속에 들어간 음식은 되돌릴 수 없이 나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이는 허기가 일깨우는 내면의 실질적, 정서적 공허감을 채워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음식을 먹는 것은, 실질적 배고픔과는 다른 차원의 어떠한 상처와 구멍을 메우려는 행동일 때가 많죠.
그럼 이제 영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프랑스에서 2013년에, 한국에서는 2014년에 개봉하며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입니다. 묘하게 동화적인 분위기와 근사한 프랑스 디저트의 등장에 마음을 뺏기기 쉬운 작품이지요. 그러나 마냥 동화적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어둡고 우울한 톤이 작품 전반을 이끌어갑니다.
작품에서 주인공 폴은 어렸을 때 어머니의 사망을 목격한 충격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말을 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무기력한 표정으로 이모들의 뜻에 따라 피아노를 치면서 살아가는데요. 그가 유일하게 집착을 보이는 것은 빵과 디저트, 그 중에서도 특히 슈케트라는 작은 빵입니다. 폴은 늘 슈케트를 옆에 두고 먹으면서 일상을 버틸 힘을 충전하는 듯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아파트 층계참에 난 작은 문 너머 마담 프루스트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집 안쪽 공간에서 고객을 맞이하는 마담 프루스트는 신비한 식물을 이용하여 고객이 원하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해줍니다. 폴이 어머니에 대한 깊은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마담 프루스트는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그를 자신의 고객이 되도록 회유합니다. 희한하게도 기억 여행을 시작한 폴은 더 이상 슈케트를 찾지 않게 되고 마담 프루스트의 충실한 고객이 됩니다.
폴이 오해로 얼룩진 과거를 천천히 마주하며 성장해 나갈 동안, 마담 프루스트는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영화는 폴이 아버지가 아닌 이모들이 어머니를 사망에 이르게 했음을 깨닫고, 시간이 지나 자신도 아이를 낳자 드디어 입을 떼고 아이를 향해 “아빠야” 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마들렌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볼게요. 마들렌은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쓴 차와 함께 마담 프루스트가 내어오는 달콤한 디저트입니다. 사실 영화는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로부터 영감을 받았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선 영화의 두 주요 인물의 이름이 각각 ‘마르셀’(폴의 성)과 ‘프루스트’이지요. 게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의 가장 유명한 ‘마들렌 대목’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마들렌 대목이란, 소설의 화자가 어느 날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모금을 마심과 동시에 몸의 감각이 일깨워지면서 마들렌에 얽힌 과거의 추억을 생생하게 체험하였다는 장면을 서술한 부분을 말합니다. 음식과 기억의 상관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음식과 기억’하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고전이 되었지요.
트라우마의 주요 증상이라고 한다면 일관적이지 않은 기억과 큰 공허감, 그리고 침묵을 꼽을 수 있습니다. 폴에게는 이 모든 것이 집약되어 나타나고 있지요. 그의 치유사와 다름없는 마담 프루스트는 음식과 음악이라는 감각적 요소를 주로 사용합니다. 쓴 차를 마시고 달콤한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무는 즉시 폴은 과거로 떠날 수 있게 되고, 음식과 음악, 과거에 대한 정확한 대면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갑니다. 영화 막바지에는 깊은 내면을 풍부한 감각으로 표현하게 되어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마들렌 대목’이 말하는 음식과 기억의 상관관계에서 나아가 음식의 역할을 하나 더 추가하는데요. 영화 전반에서 음식, 더 정확히 말해 디저트는 현실도피와 망각의 도구로도 기능합니다. 폴이 늘 섭취하는 슈케트는 과거를 대면하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임시방편이고, 부패한 콩쿠르 심사위원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단 것만 섭취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편 이모들이 먹고 취해 망발을 하게 하는 술에 절인 체리는 현실에서 어느정도 절제하던 그들의 추악한 본성을 가감없이 드러나게 합니다. 이처럼 <마담 프루스트>의 음식은 깊은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기도, 외면의 감각을 현혹시켜 내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기도 하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영화가 최종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음식을 주의해서 섭취하자’ 일까요? 그러기엔 조금 더 영화가 표현하는 것이 많아 보입니다. 사실 <마담 프루스트>가 관객에게 제시하는 신선함은 트라우마의 치유로 음식과 기억이라는, 언뜻 보기에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안을 채택한다는 점입니다.
트라우마와 같은 무의식의 병리현상을 서양에서는 정신분석학이라는 서양의료적 관점에서 접근해왔습니다. 서양의학은 주로 향정신성 약물 처방을 통해 뇌의 작용을 조절하고자 하죠. 프로이트가 꿈이라는 비이성적 세계를 연구의 대상으로 끌어왔지만, 그는 꿈을 이성적 사고 속으로 영합하려고 했습니다.
마담 프루스트는 트라우마에 대한 서양적 접근을 정면 반박하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공간 여기저기에 불상이 세워져 있고, 마룻바닥 대신 흙이 메우고 있는 바닥에서는 식물이 자라나고 있는데요. 스스로도 자신이 불교인라 말하는 프루스트는 우쿨렐레를 치며 자연과의 상생을 이야기하는 보헤미안입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각 버섯을 사용하는 그녀의 모습은 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부흥했던 히피 문화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마담 프루스트>는 서양 의학이 간과하고 있는 감각적 영역의 힘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음식인 것이고요. 한편 서양에도 존재하는 감각적 영역은 음악으로 표상되는데요. 이는 피아노를 치는 폴, 뮤지컬처럼 펼쳐지는 기억 여행, 기억 여행을 위해 음악이 꼭 필요하다는 설정으로 나타납니다. 이렇듯 영화는 동양과 서양을 분리된 양극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양쪽 접근이 융화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동서양 세계관의 맞물림은 폴이 중국인 첼리스트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모습으로 직접적으로 제시되지요.
‘마들렌 대목’에서처럼 음식을 통해 기억 속으로 여행을 가 보는 경험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한 번씩은 있었을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음식이 촉발하는 과거는 주로 돌아가신 이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음식의 ‘손맛’이란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어떤 마음으로 음식이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점을 짚어내고 있는데요. 그리운 과거의 인물을 다시금 현실에서 잠시 접할 수 있는 것이 그 손맛의 어떠한 질감을 체험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마담 프루스트의 사망 이후 그녀가 남긴 것 또한 우쿨렐레와 차와 마들렌이었죠. 나의 마들렌은 무엇일지 생각하면서, 찬찬히 음식을 음미하며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오후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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