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맞추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때부터였다. 시험기간이었는데 갑자기 칠판에 적힌 글자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시험지 위의 글자들도 뿌옇고 답답했다. 물론 눈에 힘을 주면 읽을 수는 있었지만 그 분명치 않은 시야가 영 불편해서 시험을 망치자마자 교내 안경점에 찾아가 시력검사를 하고 싸구려 안경을 급하게 맞췄다. 나에게 난시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더불어 난시가 컨디션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는다는 것도.
지금은 여러 개의 안경을 가지고 있다. 시력이 나쁜 편이 아닌데도 책을 읽을 때마다 눈이 계속 불편해 안경을 찾게 되는 현실이 내내 참 이상스럽다고 생각하며 맞춘 것들이다.
얼마전에 마음에 쏙 드는 안경테를 우연히 발견해 구입했다. 그리고 렌즈를 맞추기 위해 책방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안경점을 찾았다. 처음에는 그저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방문했었지만 검안을 엄청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해주시는 것에 하품을 하면서도 감동을 받아 그 이후에는 꼭 이곳만 찾아갈 만큼 신뢰하게 되었다. 그동안에는 각종 기계들 앞에 다소곳이 앉아 눈을 고정시키고 묵묵히 묻는 질문에만 대답해왔지만 (빨간 쪽 글씨가 더 또렷합니다, 북서쪽이 흐릿합니다, 네, 잘 보입니다, 아니 아까가 더 잘 보입니다, 3, 80, c, …) 이번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내가 오래 느낀 이상스러움(시력이 나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눈이 금방 피곤해지고 잘 안 보이는가)에 대해 말하게 됐다.
“작년에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하면서 시력검사도 했었거든요. 심지어 그때는 시력이 평소보다 더 좋게 나왔다니까요. 근데 책을 읽을 땐 침침하고… 제 눈 정말 너무 웃기고 이상해요.”
새하얀 기계 건너편에서 안경을 쓴 직원분은 아이패드를 들여다보며 기계의 세팅값을 조정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나의 넋두리를 조용히 듣고 있던 그는 내 이야기가 끝나자 고개를 오른쪽으로 쭈욱 빼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쓴 안경의 도수는 아주 높은 게 분명했다. 그의 얼굴 윤곽선이 안경알 속에서 크게 어그러져있었다.
“저처럼 눈이 아예 나빠버리면요. 시력에 관여하는 근육들이 잘 보려고 노력할 생각 자체를 안해요. 그냥 손 놓고 포기한 거죠. 우린 글렀어, 하면서요. 그래서 사실 피로할 일은 없다고 봐야 해요. 그런데 손님처럼 애매하고 복잡하게 눈이 안 좋은 경우에는 근육들이 포기하지 않아요. 또렷하게 보려고 계속 노력하는 거예요. 노력하면 될 것 같으니까. 마치 초점이 살짝 나간 카메라 렌즈가 끊임없이 초점을 맞추기 위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움직이는 것처럼요. 그렇게 수고를 하다 보니 눈이 금방 피곤해질 수밖에 없죠. 피곤하니까 시력도 급 저하되고요. 지금 모르시겠지만 저하고 검사 진행하는 사이에 이미 손님 눈이 충혈됐어요. 눈 피곤하시죠 벌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든든한 체력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의 피곤을 어쩌지 못해 책과 노트북을 덮어야 했던 지난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아아, 봐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지금 눈알이 또 녹초가 됐어, 답답해 죽겠어, 투덜거리며 두 눈을 손바닥으로 꾹꾹이 하던 나날들.
나와 같은 눈은 기능성 안경을 써야 한다고 직원분은 말씀해주셨다. 일 년에 한 번씩 검사하면서 시력의 추이를 지켜보면 더 좋겠다는 말씀도. 난시와 원시가 뒤섞인 복잡한 내 눈을 위한 렌즈는 주문제작을 해야 해서 10일쯤 뒤에 나온다고 했다.
직원분의 카메라 렌즈 비유가 어찌나 적절했는지 책방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다.
‘근육들이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노력하면 될 것 같으니까.’
‘근육들이 포기하지 않는거예요. 노력하면 될 것 같으니까.’
…
특히 이 말은 너무나도 근육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게 만드는 말이 아닌가? 손님 없는 책방에 우두커니 앉아 잠시 동안 서로서로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안구 근육들을 상상해보았다.
얘들아! 조금만 힘내 봐! 더 잘 보려고 노력해봐! 거기 친구, 넌 특히 몸을 더 쪼여야지. 옆에 있는 너는 몸을 풀고. 그래. 이제 수진이가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더 잘 보일 거야. 모두들, 피곤하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보자. 아마 수진이가 이제 곧 뭔가를 알게 될지도 몰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읽으면 어쩌면…
내 상상이 만들어낸 감정이지만 내 안구 근육들이 너무 안쓰러워져서 얼른 상상을 그만두었다.
책을 읽으며 뭔가 대단한 걸 알게 되는 일 같은 건 여간해서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읽은 책들은 며칠이면 다 까먹어버린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한심하고 멍청하다(겸손이 아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 근육들을 희망 고문하면서 계속 혹사시키고 있는 건지..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책을 읽지 않는 삶을 산다면 내 안구를 둘러싼 근육들은 한결 덜 고생스러운 인생을 살 것이다.
“멋진 안경도 갖게 되셨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안경잡이로 사는 삶에 익숙해져 보시지요.”
직원분은 나와 헤어질 때 자신의 안경을 의미심장하게 고쳐 잡으며 이 말을 했다. 아직은 지금의 안경과 데면데면하다. 모니터 앞에서나 독서할 때를 빼고는 안경을 벗어서 내가 입고 있는 옷의 목에 걸어두거나 그냥 가방에 훽 넣어버리고 있다. 오래된 안 좋은 버릇이다.
사실 오래된 안좋은 버릇은 또 있다.
눈이 피곤하고 침침해 읽고 있는 페이지가 잘 안 보일 때마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다가 특정한 생각에 빠져들게 될 때마다 미간에 주름을 잡아 버릇하다가 그게 이제는 정말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 되어 미간에 흔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인이 되면 옷도 못 입고 반드시 못생겨진다는 이유로 자신은 정치를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선언할 만큼 못나지는데 민감한 내 친구는 독서 때문에 미간에 주름잡는 버릇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조금의 지체도 없이 독서를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책 읽어서 뭐해? 넌 그냥 못생겨지고만 있을 뿐이잖아!
책을 읽는 인간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적어도 나의 경우 무언가 대단한 것을 깨달아 영혼이 위대하게 뒤집힐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다만 약간의 돋보기, 블루 라이트 차단 기능 때문에 살짝 노란 기운이 도는 안경을 쓰고 미간에 주름이 점점 깊어지는 어떤 얼굴이 남겠지. 책방 인스타그램 계정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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