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하나의 대륙이지만 오래된 역사만큼 각 나라와 도시마다 건축의 특성이 매우 강하다. 독일은 실용적인 건축이 주로 나타나는데, 네덜란드는 새롭고 실험적인 현대건축이 많다. 벨기에는 다양한 외국 건축가들의 작품을 받아들이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최신 건축 재료를 이용한 자유로운 건축을 선보인다. 스위스는 단순한 형태의 미니멀리즘이 주축인데 비해 이탈리아는 오래된 건축 유산을 보존하는데 힘쓴다.
남유럽의 포르투갈은 현상학적인 백색의 건축이 중심이며 스페인은 자연의 원리와 형태를 이용한 조각과도 같은 건축이 나타난다. 많고 많은 유럽의 건축 중에서도 중세 건축부터 근대건축과 최신의 현대건축까지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도시들을 찾아 나선다. 바로 독일 서쪽 지역에서부터 시작해서 네덜란드 남부를 들리고, 벨기에를 가로질러 프랑스 북부까지 다양한 건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여정이다. 그 건축기행의 시작은 독일과 네덜란드다.
독일 쾰른(Köln) 지역의 중세건축과 현대건축
쾰른(Köln) 지역은 중세시대부터 근대와 현대건축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 쾰른 중앙역 바로 앞에 있는 쾰른 대성당(Kölner Dom)은 도시의 상징이다. 13세기 중세시대에 착공되어 19세기에 완공된 독일의 대표 성당이자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신성 로마 제국 시절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가져온 동방 박사 3인의 유골함을 안치하기 위한 건축물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크다. 원래 하얀색의 조면암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과 매연으로 검게 변한 상태로 세월과 역사의 또 다른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성당 바로 옆에는 루드비히 박물관(Museum Ludwig)은 독일 건축사사무소 버스만+하베러 아키텍텐(Busmann+Haberer Architekten)이 설계한 박물관이다. 공장과도 같은 특이한 형태이지만 상당한 규모의 전시공간에 유럽 최고의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쾰른 대성당 가까운 곳에 있는 콜룸바 뮤지엄(Kolumba Museum)은 스위스 건축가인 피터 줌터(Peter Zumthor)가 고대 로마의 유적 위에 그대로 건축물을 올려 역사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원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콜룸바 교회가 있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파괴되었고 1950년에 고딕 예배당으로 대체되었다. 현재는 천공된 회색 벽돌이 망토처럼 건축물을 둘러싸고 있다. 저층부에서는 벽돌 사이로 비치는 빛 안에서 직접 유적 사이를 걸으면서 그리고 상층부에는 발굴된 고전 기독교 유적과 현대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박물관이다.
독일 쾰른에서 남서쪽으로 약 55km 떨어진 작은 농촌마을 메허니히(Mechernich)에는 피터 줌터가 설계한 작은 채플인 브루더 클라우스 펠트카펠레(Bruder Klaus Feldkapelle)가 있다. 워낙 시골이라 오기 힘들고 주차하고도 꽤 걸어야 하지만 넓은 밀밭 사이에 거석처럼 서 있는 자연 속 건축풍경과 채플 내부 공간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스위스 건축가가 선사하는 최고의 존재와 종교 공간이다.
15세기의 수호성인 브루더 클라우스(Bruder Klaus)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마을 주민이 당시 쾰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건축가에게 요청하여 진행되었고 지역 농부들이 직접 시공에 참여하였다. 24개 층의 콘크리트와 나무 프레임을 태워 남긴 내부 벽체 위로 빛이 쏟아지는 검은 동굴의 채플은 현대건축과 빛이 만나 최고의 현상학적 공간이 탄생하였다. 설계를 맡기려는 재벌들의 의뢰를 마다하면서도 작지만 큰 의미가 있는 건축을 위한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와 설계과정은 또 다른 감동의 이야기이다.
이곳을 떠나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가는 도중 만난 도시는 아헨(Aachen)이다. 아헨 공대로 유명한 이 도시는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태어난 도시이다. 건축가의 이름보다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말로 더 유명한 건축가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1886년 태어난 미스 반 데어 로에 생가(Mies van der Rohe Geburtshaus)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4층의 주택이다. 현재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 출입구는 닫혀 있고 입구 옆에 푸른색의 작은 표식만이 남아있다. 이와 함께 아헨 시내에는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박물관, 학교, 그리고 아헨 공대 안에 있는 건축학과와 실험실 건물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건축가의 대표작이나 유명한 건축물이 있지는 않지만 근대건축의 대표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에 관심이 있으면 지나면서 들려볼 만하다.
네덜란드의 최남단 도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의 현대건축
독일 국경 도시 아헨에서 가까운 곳은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Maastricht)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부터 암스테르담의 신도시나 로테르담의 전후 복구 작업 덕분에 현대건축으로 가득 차 있다. 그중 네덜란드의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 마스트리흐트는 다른 곳과 조금 다른 독특한 건축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지리적으로 네덜란드라기보다는 벨기에와 독일에 더 가까운 탓인지 도시의 건축도 네덜란드 건축가의 설계보다 유럽의 다른 지역 건축가들의 작품이 많다. 그런데 이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오래된 성당을 서점으로 바꾼 획기적인 곳이다. 서점 도미니카넨(Book Store Dominicanen)은 마스트리흐트 구도심에 있는 성당 서점이다. 주변이 조금 복잡한 탓에 이곳에 들어가면 밖과는 다른 안정과 조용함을 얻을 수 있다. 1294년 고딕 양식의 도미니칸 교회로 만들어져서 18세기 수도원으로 이용되다가 다양한 공공시설과 근린 생활 시설로 사용되었다. 2006년에 성당이 서점으로 탈바꿈하여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높은 층고의 성당 안에서 책을 고르고 서점 속 카페에서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은 책을 매개로 문화를 접하는 장소를 경험하는 특별한 기회가 된다.
구도심의 반대쪽에 위치한 보나판텐 뮤지엄(Bonnefanten Museum)은 마스트리흐트를 대표하는 현대 건축물이다. 박물관은 1995년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가 설계했다. 외부에서는 돔 형태의 쿠폴라(Cupola)가 제일 중요한 형태적 특징인데 전면부에서는 보이지 않고 강가 쪽인 박물관 후면에 있다. 신고전주의의 독특한 형태만큼 중앙의 계단을 중심으로 펼쳐진 내부 전시 공간 분위기도 특이하다.
보나판텐 뮤지엄 건너편에 위치한 바이엘 의료 케어(Bayer Medical Care B.V.)는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설계한 건축 작품이다. 건축가의 상징처럼 된 적벽돌로 건축물 전체를 쌓아 올려 단순한 기하학의 원통과 육면체 매스를 만들고 각 매스를 연결하고 일부 공간을 빼내서 건축가 특유의 공간 구성을 완성한다. 우리에게는 서울 강남 교보타워로 알려진 건축가가 이곳에서는 고층의 교보타워를 주변에 맞춰 낮게 펼쳐 놓은 것처럼 풀어냈다. 이 건축의 익숙함에 낯선 도시가 조금 편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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