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하나의 대륙이지만 오래된 역사만큼 각 나라와 도시마다 건축의 특성이 매우 강하다. 독일은 실용적인 건축이 주로 나타나는데, 네덜란드는 새롭고 실험적인 현대건축이 많다. 벨기에는 다양한 외국 건축가들의 작품을 받아들이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최신 건축 재료를 이용한 자유로운 건축을 선보인다. 스위스는 단순한 형태의 미니멀리즘이 주축인데 비해 이탈리아는 오래된 건축 유산을 보존하는데 힘쓴다.
남유럽의 포르투갈은 현상학적인 백색의 건축이 중심이며 스페인은 자연의 원리와 형태를 이용한 조각과도 같은 건축이 나타난다. 많고 많은 유럽의 건축 중에서도 중세 건축부터 근대건축과 최신의 현대건축까지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도시들을 찾아 나선다. 바로 독일 서쪽 지역에서부터 시작해서 네덜란드 남부를 들리고, 벨기에를 가로질러 프랑스 북부까지 다양한 건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여정이다. 그 건축기행의 두 번째는 벨기에와 프랑스다.
벨기에의 현대 도시 리에주(Liège)와 투르네(Tounai)
벨기에의 작은 도시 리에주(Liège)는 와플(Waffle)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유명한 와플만큼 놀랄만한 현대건축이 있다. 리에주 기차역(Liège Guillemins Train Station)이 그 주인공인데 스페인 발렌시아가(Valencia) 출신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설계했다. 자연 속의 형태를 구조와 함께 풀어낸 백색의 건축으로 대담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기차역은 기능상 거대한 역의 중앙 공간과 각 열차 플랫폼의 개별 공간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데 서로 상반된 기능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건축가는 철골로 작은 유닛을 만들고 연속해서 반복 배치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공간을 포함하는 뼈대 구조를 만들고 피부처럼 유리로 덮어 새롭고 놀라운 건축을 만들었다.
현대 건축의 대표적인 재료인 철골과 유리로 만들었지만 리에주 기차역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우아함이 있다. 보통 철과 유리로 만들어 내는 건축은 기능적인 공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리에주 기차역 중앙의 거대한 우주공간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환상의 공간이 되고 각 플랫폼으로 길게 뻗은 백색의 지붕은 우아하고 세련된 촉수와도 같다. 기차역은 떠남과 돌아옴의 공간이다. 인간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공간에 묻어 나오기 마련이다. 리에주 기차역 의자에 앉아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차역 풍경을 보면서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진다. 건축은 말없이 나에게 다가와서 조용히 공간의 의미를 읊조리고 사라진다.
리에주에서 나무르(Namur), 몽스(Mons)를 지나 한참 서쪽으로 달리면 프랑스 국경 근처에 나타나는 도시가 투르네(Tournai)다. 생소하지만 이 작은 도시를 꼭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포르투갈(Portugal) 건축가 아이레스 마테우스(Aires Mateus)가 설계한 투르네 루뱅 대학교(UC Louvain Site de Tournai) 때문이다. 기존의 오래된 공간을 백색의 매스를 이용하여 서로 엮어 하나로 만들어 새로운 교육공간을 보여준다. 외부형태부터 예사롭지 않은데 건물의 주출입구는 백색의 매스 하부에 박공의 형태를 빼낸 빈 공간이다. 입구를 지나면 바로 학교 외부 중정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오래된 건축과 새로운 건축이 만나 중정을 만든다. 중정을 지나 오래된 건물을 통과하면 또 다른 오래된 중정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면 후문이 나온다. 후문 쪽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반사되는 골목의 풍경은 정문과는 또 다른 표정이다.
신축한 백색의 학교 내부의 거대한 로비는 회색의 콘크리트 공간에 흰색의 매스 하나가 집속의 집 같이 끼워져 있다. 로비 옆으로는 두 개의 계단이 마치 유전자의 더블 헬릭스처럼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사색의 공간과도 같은 빛과 어두움으로 구성된 미니멀리즘의 공간이 나타난다.
프랑스 현대건축의 집합소 릴(Lille)과 됭케르크(Dunkerque)
벨기에 투르네(Tournai) 옆에 위치한 프랑스 북부지역의 중심도시인 릴(Lille)은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지역과 가까워 다양한 17세기 문화와 현대건축이 풍부하다. 특히 구조주의 현대건축의 대표 건축가인 렘 콜하스(Rem Koolhaas)에 의해 설계된 마스터플랜과 함께 릴 역(Gare Lille-Europe), 유라릴(Euralille), 엉히 마띠쓰 공원(Parc Henri Matisse), 컨벤션센터인 릴 그랑 팔레(Lille Grand Palais) 등 현대건축의 개념으로 가득 차 있다. 프랑스 건축가 크리스티앙 포잠박(Christian de Portzamparc)이 설계한 마치 의자와 같은 형태의 고층 오피스 건축물은 역 지붕의 연속성과 상반되면서도 도시의 새로운 시각적 아이콘으로 작용한다. 현대건축의 집합소를 지나면 바로 구도심의 샤를 드골 광장(Charles de Gaulle Square)과 그랑 플라스(Grand Place)가 나타난다.
서로 다른 구도심과 최신 개발한 신도시가 동전의 양면처럼 바로 붙어 있다.
릴 시 외곽에는 프랑스 건축가 마뉴엘 고트랑(Manuelle Gautrand)이 설계한 LaM(Lille Métropole Musée d'art Moderne)이 있다. 이 미술관은 원래 1989년 광대한 공원 안에 벽돌 건축물로 설계되었다. 이후 다양한 미술품 컬렉션을 보유하면서 2010년 증축하였다. 기존의 적벽돌 공간과 새로운 콘크리트 건축이 서로 어울리게 감싸 안으며 외부 중정을 만든다. 다양한 패턴의 콘크리트 패널로 만든 현대건축의 전시공간과 외부공간은 현대적 아름다움 그 자체다.
릴에서 서쪽으로 가면 만나는 서쪽 끝 북해의 도시 됭케르크(Dunkerque)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이 영국으로 퇴각했던 1940 디나모 작전이 펼쳐졌던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 장소를 현대의 문화로 소환하는 건축이 있다. 프랑스 건축가 라카통과 바살(Lacaton & Vassel)이 설계한 프랙 그랑 라지 오 뒤 프랑스(FRAC Grand Large—Hauts-de-France)이다. 현대미술에 집중하는 미술관 프랙(FRAC)은 1947년 지어진 조선소 조립공장에 똑같은 규모의 공간을 설계하였다.
기존의 건물 공간도 거대한데 그 옆에 또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사이를 적절하게 연결하여 크고 작은 전시공간을 형성하였다. 이곳은 전시공간의 건축도 좋지만 미술관이 위치된 사이트가 됭케르크 해변 바로 옆에 위치해서 매우 좋다. 미술관 5층의 전시공간이나 2층 주출입구로 연결된 다리에서 바라보는 해변 전망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물론 바닷가에서 휴식과 여유를 즐기다 예술 공간을 느끼기 위해 자연스럽게 연결통로를 이용하여 미술관으로 바로 들어올 수도 있다. 프랑스 특유의 자유로움과 낭만이 느껴진다.
독일의 중세 성당과 스위스 건축가의 종교 공간, 독일 근대 건축가의 흔적, 네덜란드 도시에서 오래된 성당의 새로운 도시재생과 이탈리아 건축가의 신고전주의 건축, 벨기에 속 스페인 건축가의 우아한 기차역과 포르투갈 건축가의 백색 건축, 프랑스에서 네덜란드 건축가의 전형적인 현대 건축과 프랑스 건축가들의 자유로운 건축까지 유럽의 도시와 건축은 각각의 공간에서 여러 시대의 건축이 따로 또 같이 다양한 변주를 만든다.
독일의 대표 도시 쾰른(Köln)을 떠나 서쪽 끝 프랑스의 대서양 해안 도시 됭케르크(Dunkerque)까지 여러 나라와 작은 도시들을 거치는 여행은 중세시대의 고딕 성당에서부터 최첨단의 자유로운 현대건축까지 볼 수 있는 압축된 경로이지만 감동은 그만큼 폭발적이다.
'트렌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체를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서 (0) | 2022.10.06 |
---|---|
당신의 이름과 그 이름의 글자 (0) | 2022.10.06 |
당신의 잠재력을 끄집어낼 사람, 곁에 있습니까? (0) | 2022.10.04 |
유럽건축기행_유럽에는 모든 건축이 있다 01 (0) | 2022.09.19 |
인생은 ‘모순’이 아니라 ‘역설’입니다. (0) | 2022.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