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힘이 예전만 못하다 얘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시청률만의 얘기는 아니다. 시청률보다 더 체감되는 건 TV라고 하는 대화의 주제다. 통상 사람들이 나누던 공통의 관심사 중 TV에 대한 대화는 지난 몇 년간 계속 좁혀져 왔다. 옛날 사람의 옛날 얘기겠지만, 개콘에 새로 나온 코너, 무한도전의 새로운 미션, 주말드라마의 예상치 못한 전개 등은 다음 날 사람들 대화에서 꼭 들어가는 주제였다. 비단 한두 개 예능이나 드라마와 같은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시사 프로그램의 문제 제기는 곧잘 정치적 이슈로 확대되었고, 심지어 일부 교양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팬덤으로 자리 잡기도 했는데, 그런 현상들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심지어 광고 회사, 매체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마저도 TV에서 비롯된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 어렵다. 그래도 매번 가구 시청률 20%는 넘는다는 주말드라마에서 진행되는 스토리를 아는 이도 드물고, 10년이 다 되어 가는 스테디셀러인 관찰 예능의 대표 프로그램은 지난주의 출연자를 헤아리는 이도 드물다. 그렇다고 아예 보지 않는 건 아니다. 각자 OTT를 통해서나 방송에서도 꾸준히 보는 프로그램들은 있다. 그것이 30, 40대가 주류인 사회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대중적으로 또 대화할 만한 거리로 부상하지 못할 뿐.
그러다 보니 매체를 선택하는 이유가 급변하고 있다. 과거의 매체 트렌드가 디지털이라는 매체와 디바이스의 부상에 따라 ‘신선한 매체’였던 디지털을 한번 선택해보는 방식이었다고 하면, 이제는 TV라는 매체가 대중적 영향력을 잃어가면서, 파편화된 대중을 세그먼트 할 수 있다는 장점을 토대로 디지털을 선택하는 추세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선택의 이유들이 변화했다는 점은 이제 근본이 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최근 요구되는 매체 전략적 방식은 2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디지털 매체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디지털은 이제 더 이상 매체가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디지털은 과거처럼 선택할 수 있는 많은 매체 중 하나의 수준이 아니다. 디지털은 이제 그간 나왔던 매체들과의 비교가 아닌, 실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견줄 수 있는 수준으로 여기는 게 맞다. 메타버스라는 얘기가 나오고, 심심치 않게 가상의 인물을 실제 인물과 같이 다루면서도 디지털을 겨우 하나의 매체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건 큰 아이러니다. 그야말로 디지털의 세상이 열렸다면 그에 맞게 그 디지털 안에서의 광고를 어떻게 해볼지가 아니라, 먼저 그 안에 어떻게, 무엇으로 브랜드가 존재할지를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광고를 한다고 했을 때, 오프라인 광고를 선택했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어떤 비즈니스가 이미 존재했다면 TV 매체를 통해서 이미지를 만들지, 프로모션으로 당장 찾아오게 할지를 다양한 광고 툴을 활용해서 전략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디지털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광고를 선택했다는 말보다, 더 구체적으로 디지털 안에서의 비즈니스 이정표가 있어야 그에 맞는 광고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디지털 안에서 하나의 존재로서 분명한 이정표를 가지려 한다면 그것은 커머스나 플랫폼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 수준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고, 계속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디지털의 장소로서 말이다. 겨우 홈페이지 하나로 디지털 비즈니스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하던 시절은 이미 20년 전이다. 그 정도의 매력으로는 디지털 세상에서의 브랜드는 ‘준비되지 않은 첫인상’으로서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물론 디지털이 오프라인에, 혹은 오프라인이 디지털에 주는 상호 영향력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오프라인과 디지털이 갖는 사람들의 프로토콜이 다르다는 게 입증된 현재에 -단순한 예지만 유튜버가 오프라인을 평정하는 것도, TV 콘텐츠가 디지털을 평정하는 일도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 굳이 그 상이한 프로토콜을 IMC 같은 70년대 구식의 툴로 묶어 둘 이유는 없지 않을까.
두 번째로 “디지털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것이 아니다." 그간 심심치 않게 디지털 매체를 소개하는 얘기는 MZ세대였다. 그러나 MZ세대는 그렇게 매체에 순응적이지 않다. 한 예로 대표적인 디지털 영상 매체인 유튜브만 봐도 그들의 유튜브는 기성세대들의 사용법과는 달라졌다. 유튜브에 의미 없는 영상 하나를 올리고, 댓글 창에서 반말로 대화하면서 친구를 만들어가는 ‘반모방’이라는 문화는 이미 유튜브를 적어도 그들에게만은 SNS와 같이 만들었고, 기성세대에게는 한물갔다는 블로그나 밴드, 트위터는 또한 그들에게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21년 네이버에 새로 생성된 블로그는 전년 대비 7% 이상 증가했다고 하는데, 이 중 2030 세대의 비중이 무려 70%였다고 한다. 이들의 블로그는 일기처럼, 또 밴드는 마치 책 읽기, 달리기 등 챌린지 인증을 위한 툴로서 소비된다.
우리가 기존에 한 매체의 이용방식이나 사람들을 정의하던 방식을 젊은 세대는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디지털 매체가 만들어 놓은 고유한 방식으로서의 소비는 기성세대를 비롯 노년층까지 확대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과 같은 형태의 디지털 매체 운영은 TV 매체로도 충분히 어필 가능한 기성세대 이상 층에 대해 반복적인 노출의 역할만 할 가능성도 높다.
그런 단어가 있다. 독일어로 Verfremdungseffekt. 20세기 독일 극작가인 브레히트가 만든 개념이라고 하는데, 한국말로 하자면 ‘소외 효과, 낯설게 보기 효과’ 정도로 해석 가능하다. 그의 극을 보면 보통 연극과 다르게, 관객이 등장인물과 자기를 동일시하여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것을 최대한 방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스스로 감정을 제거하여 객관적인 극의 주제를 이해하게 만드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매체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위와 같은 관성에서 벗어나, 고정관념을 벗어나, ‘낯설게 보는 방식’들이 많이 요구된다. 디지털을 매체로서 보지 않기, 디지털을 MZ세대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기. 이것은 지금의 매체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작점에 불과한 이야기인데도, 이것을 증명하고 이해시키느라 소모되는 시간이 참 적지 않다. 디지털 매체는 지금에도 또 다른 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연 그런데도 이것이 굳이 증명이 필요한 것이란 말인가.
*출처
<Z의 스마트폰>, 박준영, 2022
<베를린 천 개의 연극>, 박철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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