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미덕인 사회 합리적인 소비의 시대
말 그대로 '소비'가 미덕인 세상입니다. '소비'를 활성화시켜야 경제가 산다는 전제로, 대체 휴무일까지 지정되는 시대. 최저시급의 이슈, 오르지 않는 임금에 대한 불평불만이 쏟아져도 '소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엔 '합리적'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긴 했습니다. 월급만 빼고 다른 물가는 무섭게 오르기만 하니 그만큼 쓰는 것에 대해서 심사숙고하게 된 것이죠. 이커머스의 발달로, '발품'이라는 말 대신 '손품'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최저가 검색은 기본이고, 쿠폰이나 포인트 등의 각종 혜택을 영혼까지 끌어모으듯 모아 모아서 단 10원이라도 싼 곳에서 마침내 결제합니다.
요즘은 '1 코노미'나 '혼족' 그리고 'YOLO'들의 소비도 한창입니다. 남의 눈치를 보기보단 자신의 행복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나는 추세. 자신을 위한 '소비'는 좀 더 적극적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얻거나 누리기 위해, 다른 것은 과감히 포기하기도 합니다. 마니아의 소비는 더 그렇습니다. 밥은 굶어도 살건 사거나, 누릴 건 누립니다. 일 년에 한 번 가는 '여행'을 위해 다른 날들을 기꺼이 희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보면 '소비'라는 것이 단순히 돈을 쓰거나 어떠한 가치를 교환한다는 것을 넘어, 마음을 '위로'한다는 의미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억압된 감정은 소비로 향한다! 직장인의 'X발 비용'
직장인들의 '소비'는 어떨까요? 거시적 소비 트렌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로인 월급과 치솟는 물가 사이에 끼어서 안절부절못하니,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아끼려 노력하고, 저축하려 애씁니다. 택시를 타고 싶다가도 조금만 참으면 5배 ~ 10배 되는 교통비를 아낄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술 한 잔, 스트레스받을 때 깊이 들이마시는 담배 한 개비조차 다시 한번 더 생각하고 소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비'에 대한 억누름은 결국 어느샌가 튀어나오고 맙니다. 마치, 눌러놨던 욕구불만이 어떻게든 발현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샌가'를 규정하는 시점은 바로 '감정'이 흔들렸을 때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화가 났을 때, 억울할 때 등. 지친 몸을 이끌고 전철이나 버스에 몸을 실으려 하다가도, '내가 뭐 이 정도도 못해?'라며 과감하게 택시를 타거나, 상사에게 스트레스받은 후 '인생 뭐 있냐, 그동안 참았던 술이나 한 잔 하자!'는 경우. 또는 그러한 스트레스를 밑바탕 삼아 그동안 사지 못했던 '큰 건(?)'을 지르기도 합니다. 어느샌가 정신 차려보면, 고가의 명품 백이 결제되었을 수도 있고 유럽 여행 패키지 안내서가 날아와 있을 수도 있죠.
돌아보니 저도 그랬습니다. 뭔가 큰 것을 지른(?) 그 시점은, 감정이 요동했을 때였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고사양의 자동차를 샀던 때, 더 이상 넣어둘 곳이 없는데도 사게 된 신상 구두와 운동화. 어느 날, 갑자기 잡아탄 모범택시 등.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존재의 가치에 대해 회의하던 순간들이 모여 저로 하여금 호시탐탐 무언가를 소비하게 만든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억압된 감정은 언젠간 튀어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X발 비용'이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감정 소비'라는 말로 순화해보지만, 어쩐지 'X발 비용'이란 말이 더 정겹(?)습니다. 단어 하나가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경우죠. 그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지니까요.
감정으로 '소비'하고 '이성'으로 합리화한다!
우리는 시장에서 콩나물을 살 때 몇 백 원 깎거나, 덤으로 더 받는 것에 민감합니다. 마트에서 봉투 비용 몇십 원이 아까워 양손은 물론 두 팔을 최대한 이용해 구입한 제품들을 어기적 들고 가기도 합니다. 인터넷에서는 10원 단위로 최저가를 찾아 헤매고, 온갖 포인트와 할인 혜택에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 자. 기! 왜 평소에는 엄두도 못 냈던 '감정 소비'를 하고 마는 걸까요?
이는, 우리 뇌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변연계'와 '전두엽'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던 걸 기억해 내면 쉽게 풀립니다. '변연계'는 감정, 행동, 동기부여, 기억, 후각 등의 중추입니다. '전두엽'은 정보분석 및 행동조절을 관장합니다. 즉, '변연계'는 감정, '전두엽'은 이성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정말 재밌는 건, '전두엽'은 온갖 합리성을 따지고 이성적으로 고려하지만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정은 결국 '변연계'가 합니다.
원시 시대 때부터 '공포와 두려움'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인류의 생존에 이바지한 것이 바로 '변연계'입니다. 호랑이를 만나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공포를 느껴 도망가야 했습니다. 이성이 분석을 하기도 전에 우리 몸은 이미 도망가고 있고, 그 도망가야 한다는 결정을 하고 행동하게 한 것이 '변연계'인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감정'으로 소비/ 행동하고, '이성'으로 합리화합니다.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전두엽'을 사용할 것을 강요받아왔습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사회에서 정한 규범과 질서를 잘 지켜야 했습니다. 감정은 숨기거나, 쉽사리 내비치는 것을 금기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선 더 그렇습니다. 상사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내세우다가는 어떤 후폭풍이 올 지 모릅니다. 그래서 참고 맙니다.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를 때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잘 훈련된 우리의 뇌는 그것을 곧바로 표현하진 않습니다. 곧바로 표현하면 '사회 부적응자'가 될 테니까요. 감정의 폭발은 그렇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소비'로 나타나게 됩니다. 또는 그동안 미뤄왔던 의사 결정에 대해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판단하기도 하고요.
그래서일까. 요즘의 광고는 참 영특합니다. 엔진의 마력수를 내세우던 기존의 자동차 광고는, 사랑하는 사람을 태우고 여행을 떠나는 감성 광고로 변신한 지 오래입니다. 'Needs'를 충족시키던 시대에서, 'Wants'를 자극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열심히 일한 당신은 떠나야 하고, 심신이 피로한 우리는 렌털 마사지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낼 권리와 자격이 있는 겁니다. (라고 시시때때로 설득을 당하고 있습니다.)
십수 년 전 처음 MP3 플레이어를 구매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이미 제 머릿속엔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생들은 형편이 빠듯하지만 결국 맥북 에어를 지릅니다. 타 기기와 호환은 쉽지 않고, 무엇보다 너무 비싸지만 강의 들을 때 꼭 필요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단 이성적 논리를 읊습니다. 저는 요즘 기계식 키보드를 알아보고 있는데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자판도 있고, 노트북으로도 글을 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계식 키보드를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사용하면 왠지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조만간 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소비'가 미덕인 시대라 했습니다. 단순히 경제활성화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소비'는 우리의 마음을 달래는 '위로'입니다. 물질만능주의라는 비판은 잠시 잊어도 좋습니다. 첫 월급을 타서 부모님께 빨간 내의를 사드렸던 옛날의 정겨운 모습도 결국 '소비'이자 '위로/감사'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소비'가 있다면 한 번 적극적으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단, 자신의 상황에 맞게 그리고 '소비'한 뒤에 후회가 드는 일이 있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 테니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잘 생각해도 결정은 '마음'이 할 테니, 결국 우리는 마음을 항상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리고 'X발 비용'을 자주 사용하거나 사용 후 후회한 적이 있다면 그때의 마음을 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내가 왜 그러한 소비를 하게 되었는지. 어떤 기분이었고, 감정이었는지를.
그렇지 않으면 '위로'가 아닌 '후회'가 계속될 것이고,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병들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위로'가 되는 소비가 계속된다면, 우리의 마음은 더 나아지겠죠. 또 하나. 소비 말고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달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으니, 각자에게 맞는 방법들을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위로하고, 살리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내 소중하고 미약한 월급도 아끼는 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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