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 Kong - 홍콩(香港)
홍콩(香港)은 1842년 8월 29일 난징(南京) 조약으로 대영제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898년에는 홍콩을 99년간 (영원히) 임차하는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1984년 12월 19일 홍콩반환협정을 통해 일국양제(一國兩制) 시행에 합의 후, 1997년 7월 1일에 중국의 홍콩특별행정구로 편입되었습니다.
Chapter1. 홍콩영화의 전성기
홍콩영화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였습니다. 영국에 할양(割讓)되기 전에는 아주 조그마한 어촌마을에 불과했지만, 근대 이후 무역 거점으로 떠오르고 마침내 세계적인 금융 허브로 성장한 국제도시 홍콩에서 탄생한 영화답게 홍콩영화는 중화권을 베이스로 광동(廣東) 문화와 영국 문화, 미국 할리우드까지 수많은 문화적 코드가 뒤섞이고 합쳐져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 쿵푸, 멜로와 로맨스, 강시, 코믹물, 홍콩 르와르, 고전 판타지, 무협, 액션·스릴러, 도박물, 퓨전, SF, 에로물 등 홍콩영화만의 다양하고 독특한 장르들이 존재했습니다.
영웅본색(英雄本色) 1986 - A Better Tomorrow
오우삼(吳宇森) 감독, 서극 제작, 적룡ㆍ주윤발ㆍ장국영ㆍ이자웅 출연. 198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홍콩 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으며 홍콩영화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어 제목은 ‘A Better Tomorrow’.
천녀유혼(倩女幽魂) 1987
정소동(程小東) 감독, 서극 제작, 장국영ㆍ왕조현ㆍ우마(午馬) 출연. 청(淸) 나라의 포송령(蒲松齡)이 1670년대에 기이(奇異)한 이야기를 모아서 편집한 요재지이(聊齋志異) 12권 중 제2권에 나오는 '섭소천(聶小倩)' 편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十里平湖霜滿天(십리평호상만천) 드넓은 십리호수엔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고
寸寸靑絲愁華年(촌촌청사수화년) 푸르른 청춘 마디마디엔 젊은 날의 슬픈 시름이 가득하네.
對月形單望相護(대월형단망상호) 홀로 달빛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길 바라니
只羨鴛鴦不羨仙(지선원앙불선선) 다만 원앙은 부러우나 신선은 부럽지 않으리.
드너른 십리호수 흰서리 가득하고
푸르른 우리 젊음 시름이 가득하네.
쓸쓸한 달빛아래 서로를 그리노니
외로운 신선보다 원앙이 부러워라.
천장지구(天若有情) 1990
진목승 감독, 두기봉 제작, 유덕화ㆍ오천련(吳倩蓮) 주연. 천장지구(天長地久)는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7장 도광(韜光)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당(唐) 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 현종(唐 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비련(悲戀)의 사랑을 묘사(描寫)한 장한가(長恨歌 : 긴 한탄)에서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하늘 오래고 땅 영원(永遠)한데도 다 할 때가 있을 것이나, 이 한(恨)만은 끊이지 아니하고 다할 기약(期約)이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천약유정(天若有情)'으로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 시불(詩佛) 왕유와 함께 당나라 4대 시인으로 불리는 시귀(詩鬼) 이하(李賀)의 시에서 유래했습니다. 해당 시구는 '天若有情天亦老(천약유정천역로)'이며 '만약에 하늘에 정(情)이 있다면, 하늘도 (슬픔으로) 늙어가리'라는 뜻입니다.
황비홍(黃飛鴻) 1991
서극(徐克) 감독 및 제작, 이연걸ㆍ관지림ㆍ원표(元彪) 출연. 무도가이자 의사인 실존인물 황비홍의 구전된 이야기를 영화적 허구로 각색하였습니다. 서극은 힘차고 날렵한, 그러나 기계적인 동작만을 구사하던 우슈(武朮) 선수 이연걸을 신필(神筆) 김용(金庸)의 무협소설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무공(武功)의 초식(招式)들을 멋지고 화려한, 그리고 우아한 예술의 경지로 시전(始展)하는 무림고수 황비홍 바로 그 자체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속편으로 황비홍 2 : 남아당자강(1992), 황비홍 3 : 사왕쟁패(1993), 황비홍 4 : 왕자지풍(1993), 황비홍 5 : 용성섬패(1994), 황비홍 6 : 서역웅사(1997)가 있습니다.
동방불패(東方不敗) 1992
정소동 감독, 서극 제작, 임청하ㆍ이연걸ㆍ관지림ㆍ이가흔ㆍ이자웅ㆍ원결영(袁潔瑩) 출연. 동방불패는 김용(金庸)의 장편 무협소설 소오강호(笑傲江湖)를 원작으로 하여 만든 영화 소오강호의 후속 편입니다. 소오강호는 도가(道家) 사상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무협지 구조를 넘어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야심가는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스스로를 거세(去勢)하고, 가장 믿고 신뢰했던 동료와 부하가 가장 앞장서서 배신하며, 세속의 모리배들은 권력을 탐닉하는 굶주린 욕망에 다른 이를 해하고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소오(笑傲)’는 ‘자존감(自尊感)을 지닌 자유로운 웃음’이며 ‘강호(江湖)’는 장자(莊子) 산목(山木) 편 2장에서 나오는 말로 표범의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가죽을 취하기 위한 죽음의 그물과 덫이 여기저기 촘촘하게 펼쳐져 있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세상을 말합니다. 강호에 든 이는, 굶주림과 허갈(虛竭)로 고통 속을 헤맵니다. 헌데, 이를 모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욕심이 일어, 다른 이의 가죽까지 모두 빼앗으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흐트러진 탐욕에 미혹(迷惑)된 실상(實相)의 세계가 바로 강호(江湖)이며, 강호라고 하는 어지러운 아수라장(阿修羅場)의 추악한 욕망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웃음이 바로 소오강호(笑傲江湖)입니다.
Chapter2. 홍콩스타와 한국광고
홍콩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당시 홍콩배우들은 한국에서 그 인기와 매력을 기반으로 한 준거(準據)적 권력(referent power)을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왕조현, 임청하, 양조위, 장학우, 곽부성 등 홍콩스타들이 자주 한국을 방문했고, 광고회사들은 이들의 매력적인 모델 파워를 저관여 제품시장에서 정교화 가능성 모델(ELM : Elaboration Likelihood Model)의 주변경로(peripheral route)를 통한 소비자 태도변화유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시도하였습니다.
주윤발(周潤發) - Chow Yun Fat
“사랑해요, 밀키스”
주윤발이라는 모델 파워로 당시 1위였던 코카콜라의 암바사를 끌어내렸던 광고.
왕조현(王祖賢) - Wang Zuxian
“반했어요, 크리미”
밀키스 CF처럼 헬리콥터까지 동원하고 카피도 따라 해 보았으나 결과는...
장국영(張國榮) - Leslie Cheung
“사랑을 전할 땐, 투유초콜릿”
장국영이라는 모델 파워에 더하여 장국영의 감미로운 광고음악과 소비자가 광고의 후속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다음 편에 계속’이라는 파격적인 크리에이티브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유덕화(劉德華) - Andy Lau
유덕화와 이영애가 함께 사랑을 전하는 투유 초콜릿
금성무(金城 武), 카네시로 다케시 - Takeshi Kaneshiro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끝까지 마신다.
“난 맥스웰”
Chapter3. 세기말의 홍콩영화
1999의 해, 일곱 번째 달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와 인류가 멸망한다는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의 묵시론(黙示論)적 공포와 함께 세기말(世紀末 : fin de siècle)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기말의 종말적이고 퇴폐적인 사조(思潮)는 1997년 중국에 귀속(歸屬)되게 되는 어둡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가던 홍콩영화에서 더욱 암울하고 짙은 색채로 묻어났습니다. 홍콩이 중국에 이양(移讓)되기까지 겨우 3년도 남아있지 않았던 시점에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이 등장하여 화려했던 홍콩영화의 마지막 불꽃놀이를 시작합니다. 회광반조(回光返照).
중경삼림(重慶森林) 1994
왕가위(王家衛) 감독 및 각본, 임청하ㆍ금성무ㆍ양조위ㆍ왕페이(王菲) 주연. 중경삼림은 크랭크인후 2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없던 영화 동사서독(東邪西毒) 제작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왕가위 감독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잠시 쉬면서 23일 만에 촬영해 만든 그야말로 ‘찍어낸’ 영화입니다. 미완성된 시나리오에 리허설도 없는 즉흥적인 촬영으로 제작되었고 급기야 상영 직전까지도 영화의 최종 편집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1994년 7월 14일 밤 11시 30분에 처음으로 개봉했는데, 편집을 완성한 필름부터 박스에 담아 순차적으로 극장에 보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영화들은 필름 박스 1개당 10분 분량의 영화가 담기고 이 필름들을 상영기사가 여러 개의 영사기를 이용하여 돌려가며 상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중경삼림 최초 편집버전은 90분이었으므로 9개 박스가 영화관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모든 필름이 도착한 극장에서 중경삼림을 본 관객들은 해피엔딩의 결말을 보았고, 8개의 박스만 도착하여 80분간 중경삼림을 본 극장의 관객은 양조위와 왕페이가 엇갈려 헤어지는 새드엔딩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70분 분량의 영화를 본 관객들입니다. 이들은 양조위가 주변의 변화된 일상의 사물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다가 영화가 마무리되는 여운 가득한 예술영화로 중경삼림을 기억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제에 편집상(Award for Best Film Editing)이 있는 이유입니다.
타락천사(墮落天使) 1995
왕가위 감독. 여명ㆍ이가흔ㆍ막문위ㆍ금성무ㆍ양채니 출연. 타락천사는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의 임청하ㆍ금성무의 미묘(微妙)한 만남과 양조위ㆍ왕페이 러브스토리에 뒤이은 3부작의 마지막 에피소드였으나, 이렇게 되면 러닝 타임이 너무나 길어져 중경삼림과는 별개의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중경삼림과 함께 한국 대중문화계에 큰 영향을 끼친 마지막 홍콩영화라고 일컬어집니다. 정우성 주연의 한국 영화 비트를 비롯해 숱한 국내 영화나 광고들이 타락천사를 비롯한 왕가위 영화들의 상당 부분을 카피하여 ‘왕가위 신드롬(syndrome)‘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배우 김선아가 데뷔했던 광고로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라는 카피로 히트했던 화장품 CF도 이가흔과 막문위가 지하도에서 마주치는 타락천사의 한 장면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입니다.
첨밀밀(甛蜜蜜) 1996
진가신(陳可辛) 감독. 장만옥ㆍ여명 주연. 첨밀밀(甛蜜蜜)은 ‘꿀처럼 달콤 달콤하다’는 뜻으로 1975년 발표된 등려군(鄧麗君)의 동명 노래 제목을 사용했습니다. 영어 제목은 Comrades: Almost a Love Story(동무들 : 거의 러브스토리에 가까운)입니다. 1989년 6월 4일,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일어납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중국 인민과 학생들을 인민해방군(人民解放军)이 탱크를 앞세워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본 홍콩 시민들은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중국의 약속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고, 다가올 중국의 통치를 피해 캐나다나 호주 등으로 이민을 떠납니다.
혹자(或者)들은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소군(여명)과 이요(장만옥)가 각각 중국과 홍콩을 상징하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중국과 홍콩이 하나가 되는 것을 우의(寓意)한다는 알레고리(Allegory)적인 해석을 하기도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홍콩을 떠난 사람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다시 만나 사랑했던 홍콩에서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추억하는 영화입니다.
有緣千里來相會(유연천리래상회) 인연이 있다면, 천리 멀리에 떨어져 있어도 만나지만
無緣對面不相逢(무연대면불상봉) 인연이 없다면, 얼굴을 마주하고 살지라도 만나지 못한다.
해피투게더(春光乍洩) 1997
왕가위 감독. 장국영ㆍ양조위ㆍ장첸(張震) 주연. 크리스토퍼 도일(Christopher Doyle) 촬영. 1997년 제50회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감독상, 34회 금마장(金馬奬) 영화제 촬영상 수상. 그러나 한국에서는 공연윤리위원회의 검열로 상영금지 되었고, 이듬해인 1998년 장국영ㆍ양조위의 문제적 장면을 삭제한 후에야 개봉이 허락되었습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하보영(장국영分)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다시 시작하자' 이 말은 내게 꽤 큰 힘이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했지만 헤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가 다시 시작하자고 하면 난 항상 그와 함께했다.
2003년 만우절(萬愚節)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번호를 차마 지우지 못했던 양조위는 장국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장국영의 녹음된 목소리에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A Better Tomorrow - 더 나은 내일
천녀유혼(倩女幽魂)에서 사랑하는 두 연인이 그토록 오지 말라고 빌던 새벽이 찾아오고, 홍콩은 1997년 7월 1일 中华人民共和国(중화인민공화국)에게 해방당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홍콩과 홍콩영화는 세월의 추억 너머로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돈과 권력을 숭배하는 모리배들의 탐욕(貪慾)에 좌지우지되는 아귀다툼의 강호입니다. 소오강호(笑傲江湖)의 한바탕 웃음은 시간의 강물을 따라 흘러갔으나, 그 웃음의 울림은 맑고 푸르른 바다의 더 큰 파도가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반드시 다시 찾아올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劇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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