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소설을 쓸 때는요. 소설 속의 세계에 제가 완전히 푹 담가져 있어요.
현실 속에 있지만 저는 계속 제가 만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한창 그 안에서 절여진 채로 정신없이 집필 중일 때,
남편이 제 방문을 갑자기 확 열면서 ‘집에 참외 좀 있나?’ 하고 다짜고짜 물어오면
그때는 진짜, 으, 죽이고 싶어요.🤯”
-임경선 작가 북 토크 中 -
가면을 쓸 결심
몇 개월 전 임경선 작가와 함께 전주에서 북 토크를 하던 때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던 말이었다. 나를 비롯한 관객들은 박장대소했다. 관객 중 누군가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평소 보이는 거침없는 화법으로 짐작컨대 나는 그녀가 ‘너는 손이 없냐 눈이 없냐, 직접 냉장고 문 열어서 볼 줄 모르냐’ 같은 말을 꽥 지르진 않았을까 싶었다.
“응, 아마 있을걸? 깎아줄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관객석은 조용해졌다.
“연기해요, 저는. 좋은 엄마 연기, 좋은 아내 연기.
저는 남편과 아이에게 내 감정을 언제나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주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이 말이 계속 잊히질 않았다. 나는 몇 주 뒤 그날의 발언에 대해 임경선 작가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가족에게만큼은 솔직한 자기 모습을 보여줘도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녀는 관계가 아름다워 보였으면 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일종의 가면극처럼 보여주고 싶은 가면을 쓰는 것이라고, 외부인들보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 앞에서 더 자주 그 가면을 사용한다고 했다.
“가면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쓰는 거야. 날것의 거친 나로부터 그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서.”
연기를 할 결심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데이비드가 강연 내내 말했던 ‘선택’ 이란 말을 ‘연기’라는 말로 대체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과연 ‘연기’야 말로 선택이다. 좋은 배우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말하지만 그것은 선택을 잘하는 배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디렉션을 요하는 감독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배우들은 감독의 의도에 최소한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어떤 눈빛으로, 어떤 손짓으로, 목소리는 어느 정도의 크기로 자신이 하고 싶은 (해야 하는) 말을 전달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도 어떻게 연기할지 선택할 수 있다.
밥을 안 먹겠다는데 기어이 밥 한 숟갈만 뜨라고 계속 성화를 부리는 엄마에게, 자꾸만 내 옷을 가져가 몰래 입는 동생에게, 만나기만 하면 은연중에 속 긁는 소리를 해대는 직장 동료에게,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만나는 무례하고 시끄러운 할아버지와 아줌마, 꼬마애들에게…
데이비드가 강연 때 예로 들었던 이러한 일상 속의 지긋지긋한 순간들 속에서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소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연기(선택)하는 일에 대해 말인데,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쓰는 나 조차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짜증 나 죽겠는데 이 와중에 뭔 연기야…’.'?
연기가 대체 뭘 바꿀 수 있을까. 데이비드는 왜 연기(선택)를 반복해서 말하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했을까.
선택할 결심
최근에 본 영화 중에 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 이 있다. 이 영화의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츠코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나츠코는 20년 만에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거기서 자신의 첫사랑 미카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미카는 나타나지 않는다. 상심한 채 다시 도쿄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던 나츠코는 맞은편 에스컬레이터에서 우연히 미카를 만난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며 미카의 집에 함께 들어가 차를 마신다. 그런데 둘의 대화는 미묘하게 어긋난다. 결국 나츠코와 함께 있는 사람은 미카가 아니라 아야라는 것이 드러난다. 아야 역시 나츠코를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고등학교 시절의 한 친구와 헷갈렸다는 우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를 다른 사람으로 동시에 착각했다. 황망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츠코에게 아야가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혹시 괜찮다면 내가 미카 씨를 할까?”
“하다니?”
“왠지 아까운 것 같아서”
네가 행복하지 않은 거, 나 때문이야? 아야가 미카가 된 것처럼 연기를 시작한다. 쑥스러우니 그만하라고 손사래를 치던 나츠코는 어느새 아야에게 미카를 다시 만나면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는다.
“난 너만을 사랑했다는 것, 넌 다른 사람이라도 괜찮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네가 아니면 안 돼.
나와 함께 하면 네 인생이 복잡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날 선택해줬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그때 하지 못했어.
지금 난 너에게 뭘 원해서 온 게 아니야.
단지 그때 그 말을 못 했다고 전하고 싶었어.
널 힘들게 하더라도 말했어야 했어.
그 고통이 우리 인생에 필요하단 걸 깨달았거든.
지금 네 인생에도 조금은 나와 같은 구멍이 생겼을 테니까. 그래서 왔어.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분명 있을 거야.
이젠 그걸 채울 수 없지만, 나에게도 그게 있단 걸 전하려고 왔어.
그 구멍을 통해 우린 지금도 연결돼 있을지도 몰라.
그걸 말하려고 왔어.”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분명 있을 거야’라고 나츠코가 말할 때 아야는 마치 미카가 된 것처럼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나츠코의 말이 끝났을 때, 그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그러나 아야의 아들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그 행동은 멈춘다.)
잠시 뒤 다시 집을 나와 처음 마주친 그 에스컬레이터 앞에 선 두 사람은 이제 곧 헤어질 예정이다. 그때 나츠코는 이번엔 자기 차례라면서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아야가 기억하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의 친구로 변해 ‘연기’한다. 아야! 내가 누군지 기억해? 그리고 이번엔 아야가 자신의 구멍에 대해 이야기한다.
“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야. 그렇지만 가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를 때가 있어.
뭐든지 될 수 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버렸어.
큰 불만은 없어. 모두 내가 선택한 거고, 이 이상 바라는 건 욕심이란 거 알아.
하지만 가슴속에 불타는 열정이 이제 하나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시간이 천천히 나를 죽여.”
왠지 아까운 것 같아서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서로의 연기가 끝나고 두 사람은 사이좋게 이 말을 한 번 씩 선사한다. 뒤돌아 헤어지는 길에, 아야는 내내 떠올리지 못하고 있던 친구의 이름을 마침내 기억해낸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나츠코에게 다시 달려간다.
이 에피소드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은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는 연기뿐 아니라 아예 대놓고 하는 연기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연기는 우리가 까먹었던 이름을, 우리가 가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기억나게 해 줄 수 있다. 지긋지긋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끝까지 연기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인간이라는 품위를 가져다줄 것이다. 아니 아니, 그냥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아야가 한 말로 연기의 당위를 대신할 수도 있다.
왠지 아까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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