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PT의 세계는 인생의 축소판
오늘도 제 휴대폰에는 우리 회사가 경쟁 PT에 승리했다는 반가운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각 영역의 전문성을 지닌 수많은 팀과 구성원들이 모여 밤과 휴일도 잊은 채 제안에 매진한 결과, 업계 경쟁사들을 가뿐히 뛰어넘는 전략과 제작물이 탄생했습니다. 그 결과, ‘역시 HS애드’ 라는 찬사를 받고, 더 나아가 시장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성공 캠페인을 탄생시키는 ‘승리의 DNA’가 우리에게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경쟁 그리고 승리의 과정은 그러나 한편으로 매번 어렵고 힘든 고난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전략이라는 지극히 논리적인 영역조차도 최선은 있으되 정답이 없는 주관적 판단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영역은 클라이언트가 그 의도와 함의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길 기대할 수밖에 없는 정성적 평가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늘 승리가 보장된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이 경쟁 PT를 준비하는 우리를 때때로 더욱 힘들게 합니다.
수많은 이들의 최선이 몇몇 사람들에게 한순간에 평가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냉혹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승리의 환희와 함께 패배의 좌절감을 번갈아 느낄 수밖에 없는 경쟁 PT의 세계는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광고 영역뿐만 아니라 심오한 예술의 영역에도 이와 같은 치열한 경쟁 PT의 무대가 존재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콩쿠르가 그것입니다.
국제 콩쿠르 무대에서 돋보이는 코리안 파워
콩쿠르(concours) 프랑스어로 경쟁, 경연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competition으로 번역됩니다. 콩쿠르의 영역은 전 예술 분야를 포괄하는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지닙니다만, 주로 음악과 무용 분야에서 자웅을 겨루는 경연이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몇몇 경연은 뉴스 지면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그 이름이 익숙하지요.
조성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전 세계에 알린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International Chopin Piano Competition)’가 대표적입니다. 폴란드가 낳은 불멸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쇼팽의 이름을 따 만든 이 경연은 전 세계 모든 피아니스트들의 꿈의 무대이자, 월드스타로 단번에 발돋움 가능한 가장 확실한 등용문으로 통합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보다 긴 5년을 주기로 펼쳐지다 보니 그만큼 주목도도 높은 편입니다. 2015년 10월, 이 유서 깊은 경연에서 조성진이 우승했다는 소식이 뉴스에 보도되자 당시 함께 있던 (클래식 음악엔 별 관심이 없던) 팀장님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 팀장님 :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게 그렇게 큰일이야?”
😦 에디터 : “네, 이병헌이나 송강호가 아카데미나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받은 것에 버금가는 일이죠.”
🧐 에디터의 TMI
그만큼 예술가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이자 한국에선 아직 유례가 없었던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점을 영화라는 조금 더 친숙하고 대중적인 영역에 빗댄 것이었습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입상해 세계 무대에 그 이름을 처음 알린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ion)’ 역시 세계적 명성의 콩쿠르로 인정받습니다. 1974년 당시 막 약관에 이른 피아니스트 정명훈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경연에서 공동 2등을 수상했습니다.
🧐 에디터의 TMI
참고로 당시 우승은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함께 수상한 이는 스타니슬라프 이고린스키였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당시 결선 참가자들의 어마어마한 클래스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준우승이긴 했지만 냉전 시대 구 소련의 심장 모스크바에서 한국인 최초로 이뤄낸 쾌거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습니다. 그가 귀국하자 대한민국 언론이 공항에 모두 모여든 것은 당연지사. 정부에서 김포 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준비할 정도였으니 당시 콩쿠르 준우승이 지닌 의미가 그만큼 남달랐다 할 수 있겠습니다.
정명훈은 이를 계기로 카네기 홀과 같은 세계적인 무대에 설 수 있었고, 이후 줄리어드 음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지휘자로 전향하였습니다. 그가 오늘날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스무 살 때 이뤄낸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입상 경력이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젊은 음악가들의 세계 진출이 활발해진 지금, 거의 다달이 들려오는 국제 콩쿠르 우승 소식은 더 이상 카 퍼레이드를 펼칠 만큼의 국가적 경사는 아니긴 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한국 음악과 음악인의 위상을 세계 속에 드높이는 희소식을 들을 때면 마치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올 때만큼의 짜릿함과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가장 최근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첼리스트 최하영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Queen Elizabeth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첼로 부문에서 우승하며 또 한 번 세계 음악계에 코리안 파워를 과시했습니다.
흥미로운 점 중에 하나는 국제 콩쿠르 무대 수상 실적에도 일종의 트렌드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때 미국, 유럽 출신 백인들의 독무대였던 국제 콩쿠르 무대는 90년대 이후엔 아시안 파워가 두드러진 모양새입니다. 그중에서도 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 무렵엔 중국 혹은 중국계 연주자들의 수상 실적이 두드러졌습니다. 오늘날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랑랑과 유자 왕이 대표적입니다. 최근에는 여러 구설에 휘말리며 나락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한때 음악계를 좌지우지하던 차이니즈 파워를 대표했던 윤디 리 역시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입니다. 중국은 1960-70년대 불어닥친 문화 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서양 음악의 씨가 거의 마르다시피 했지만,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 특유의 높은 교육열과 혹독한 스파르타식 육성 시스템이 결합해 걸출한 슈퍼스타를 여럿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트렌드가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한국으로 방향을 튼 모양새입니다. 2006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한 김선욱을 시작으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준우승한 손열음과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기악부문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지면에 다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만큼 많은 한국인 연주자들이 세계 정상급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 소식을 전하는 모습은 최근 10년 새 전 세계 영화계에 불어닥친 한국 영화 열풍과도 궤를 같이 하기에 더욱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원고를 한창 작성 중이던 지난 6월 18일엔 세계적인 명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의 임윤찬 군이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는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예술도 경쟁해야 하나요?
오늘 이 시간에도 세계 무대에 서기 위한 가장 확실한 등용문인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밤을 잊은 채 연습에 매진하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콩쿠르라는 경쟁 체제 자체를 고깝게 보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예술도 경쟁이 가능한가?’라는 본원적 물음 즉, ‘예술에 정답이 없을 진데 이를 계량화해 순위를 매긴다는 가능한 일인가’라는 콩쿠르 체제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몇몇 연주자들은 콩쿠르라는 체제 자체를 건너뛰고 무대에서 오직 관객과 평단의 평가만으로 세계 무대에 진출하기도 합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대표적입니다. 역대 최연소인 16세의 나이로 세계 최고의 명문 음악원인 파리국립고등음악원(CNSMDP)에 입학해, 졸업 역시 역대 최연소로 해치운 천재 연주자임에도 그 흔한 국제 콩쿠르 입상 경력 하나 없는 것 역시 그녀 만의 독특한 이력입니다.
콩쿠르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실력 하나만으로 인정받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것인데요. 심사위원들이 매긴 등수에 포함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연주 철학으로 승부하길 원하는 연주자들에게 콩쿠르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통과의례일 뿐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콩쿠르 자체가 지닌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평가 기준이 객관적일 수 없는 예술 영역의 경연이다 보니 당연히 심사위원들의 성향과 주관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한때 엄연히 존재했던 콩쿠르 내 학연, 인종, 국적 문제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3등을 수상한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심사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수상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1, 2등을 수상한 연주자가 독일 출신의 심사위원이 가르쳤던 제자였기에 공정성에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만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역시 편파 판정으로 자주 구설에 오르는 대회입니다. 이 경연은 출발부터가 구 소련 시절 러시아 출신 작곡가들과 소비에트 예술가들의 우월성을 서방에 선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자국 연주자에 대한 편향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경연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때문에 음악계에서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특히 피아노 부문은 웬만하면 러시아(구 소련) 국적 연주자들에게 1등을 준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경연은 예선 통과자 절반 이상이 러시아 국적자들이니 외국 연주자들에겐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입니다.
이런저런 논쟁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콩쿠르는 연주자가 그동안 갈고닦은 연주 테크닉과 음악적 해석 능력을 가장 철저하게 검증받는 자리이고, 그래서 전 세계 수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꼭 한번 서보고 싶은 꿈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된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는 출전하는 것부터가 난관입니다.
예를 들어, 쇼팽 콩쿠르의 경우 전 세계에 산재한 피아니스트 중 고작 160여 명에게만 예선 참가의 기회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결선 무대에 올라 전설적인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받을 수 있는 파이널리스트의 영예는 단 12명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러니 비록 결선 무대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것만으로도 그 기량을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마도 1등과 12등의 실력 차이는 악보 몇 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쇼팽 콩쿠르 같은 소위 메이저 콩쿠르에서는 비록 2등이나, 3등을 차지한다 해도 크나큰 성취로 인정받습니다. 1등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명예와 부가 뒤따르는 커리어 패스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치열함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2등이란 순위가 무의미한 우리들의 경쟁 PT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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