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엄밀히 말하면 그는 광고인이 아니었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여러 인쇄물을 만들어내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전직 LG애드 카피라이터’ 또는 ‘LG애드 카피라이터 출신’이라고 불렀다. 76학번이니까 나이는 가늠해보시길.
그러나 그에게는 광고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사용하는 펜도 달랐고, 종이도 달랐다. 그것도 어느 한가지를 고집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제품’은 아니었다. 반면에 죽어라 하나만 고집하는 면도 있었다. 그는 1988년에 구입한 차량인 ‘서울 XX 1753’의 프라이드 3도어 승용차를 지금까지도 끌고 다닌다. 그는 ‘포르셰가 아니면 그랜저나 프라이드가 뭐가 다르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다르던데….
특히 브랜드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했다. 물컵조차도 무슨 우유회사에서 주는 판촉물 같은 것은 사용하기를 거부했다. 친정(?)이 LG애드이다 보니 한때 맥주를 마셔도 꼭 LG애드에서 광고대행을 맡은 회사의 맥주만 마셨다.
술 이야기가 드디어 나왔다. 광고인들에게도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알고 있다. LG애드식으로 표현하면, 그는 ‘LG애드가 서울역 앞에 있던 시절’, 회사 앞 조그만 선술집을 곧잘 떠올렸다. 일하다가 나와서 라면 먹으며 소주 한잔하고 다시 들어가서 일하고….
조금 나이가 든 광고인들은 그런 추억으로 가득찬 술집들이 있는 듯하다. C광고회사의 윗사람들은 옛 사옥이 있던 시청 부근, D광고회사의 사람들은 관훈동 시절 자주 가던, 그런 술집을 그린다.
나와의 만남에서도 그는 점심 때나 저녁 때나 술을 즐겼다. 시장 골목의 허름한 선술집을 특히 좋아했다. 메뉴도 정확하지 않고 값도 정확하지 않은 술집, 그냥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며 해달라고 하면 곧바로 장을 봐와서 해주는 집. 당연히 값도 적당히 부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호텔의 바에서도 자주 술을 마셨다. 위스키와 버번을 즐기더니, 몇년 전부터는 와인이 그의 주종목이 되었다. 그는 이처럼 모든 선택에서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였다. 지식세계를 꿈꾼다고 하면서도, 안경집 아저씨가 자신을 ‘무대뽀’라고 부르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모습이 단적인 예다. 그는 안경을 새로 맞출 때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안경을 무조건 만들어달라고 밀어붙였다.
그는 지금 광고회사에 다니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광고에 대한 많은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회사의 광고를 직접 만들고, 매체에 광고를 집행하는 광고주니까. 그는, 지식공작소·커뮤니케이션북스·박영률출판사 등 3개의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박영률 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