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04 : 광고세상 보기 - LG애드 카피라이터 출신 '싸부'와의 종횡무진 교류기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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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애드 카피라이터 출신 '싸부'와의 종횡무진 교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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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호 석 | 굿데이 경제부 기자
hosu@hot.co.kr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1991년,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만난 광고인이 자주 하던 말이다. 나의 생각을 상식선에 놓고, “이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으면 영락없이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의미였다.
고등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하고 싶다’보다 ‘해야 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말하며 지냈다. 마인드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에 익숙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생각 따로 몸 따로’였다. 그래서 그를 만날 때면 늘 알 수 없는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맨날 ‘찍’ 소리도 못하다가 가끔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위상 변화도 시도해봤다(그때는 그걸 ‘개긴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언제나 똑같았다. “까불지 마.” 사장이라는 직급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사실 ‘내공’의 차이가 컸던 까닭이다.
그와 함께 일을 하려면 발상의 전환도 요구됐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 본다고 생각해라”, “A를 올리기 위해서는 A를 직접 올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 옆을 파서 A를 높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등등.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의 변형도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데?”였다. 코어 컨셉트(core-concept)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중요도 순으로 ‘원·투·쓰리’를 잡아서 커뮤니케이션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어떤 때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보라는 요구도 해왔다. 키워드를 잡아보라는 의미였다. 그건, 마케팅(영어로 MKTG라고 썼다)이었다.
그는 바로 시장과 교류하는 것, 즉 마케팅에 관해 일관되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책상에는 늘 두꺼운 마케팅 책자도 펼쳐져 있었다.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의 <마케팅관리론-개정 6판>. 나도 그의 권유로 그 책을 사서 봤다. 그런데 그는 영어로 된 원서를 읽었다.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영어로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밑줄 쳐가며 한글판을 읽었다.
나는 그 광고인을 만나며 마케팅이라는 것을 접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집중할 때는 나를 포함한 몇몇 젊은 후배들을 남산에 있는 모 호텔방에 1주일씩 가두기도 했다. 심지어 ‘마인드맵(mind map)’이라는, 미국 사람이 만들어낸 툴까지 동원해가며 내 생각을 표현하게 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안에 내 생각을 청중에게 발표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돈도 걸게 했다. 그 자리는 상품을 팔고 사는 시장이라는 의미였다.
그 시장에서 나는 청중들이 내 생각을 ‘넘버 원’이라고 여기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그 돈을 내가 다시 찾고, 다른 후배들의 돈까지 모조리!!! 하지만 ‘살 만한 상품이 없다’며 1등을 뽑지 않고 판돈을 모두 가져갈 때면 다들 뒤돌아 서서 머쓱해하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회사 사장이란 사람이 참! 월급도 적게 주면서 그나마 준 돈도 별의 별 방법으로 뺏어가네. 기가 막혀!” 다들 그러면서도 남몰래 두 주먹 불끈 쥐며 다음 결전을 준비했다. ‘다음 번엔 반드시!!(부르르~)’
즉 내가 만든 게 ‘작품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팔리냐 못 팔리냐’가 중요했다. 광고업계에서 자주 접하는 ‘프리젠테이션’이란 것이었는데,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기억은 수년 후에도 이어진다. 1990년대 후반 부동산컨설팅시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프리젠테이션이 있을 때면 내가 프리젠터를 맡는 일이 많았다. 주로 건설업체나 부동산 관련 업체들의 최고경영진 앞에서였다. 나는 그때마다 남산 그 호텔에서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건 바로 ‘열정(passion)!’ 적어도 내가 나섰던 프리젠테이션에서 패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참, 자랑하다보니 샛길로 빠졌다. 자랑은 맨날 이런 결과를 불러온다.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엄밀히 말하면 그는 광고인이 아니었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여러 인쇄물을 만들어내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전직 LG애드 카피라이터’ 또는 ‘LG애드 카피라이터 출신’이라고 불렀다. 76학번이니까 나이는 가늠해보시길.
그러나 그에게는 광고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사용하는 펜도 달랐고, 종이도 달랐다. 그것도 어느 한가지를 고집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제품’은 아니었다. 반면에 죽어라 하나만 고집하는 면도 있었다. 그는 1988년에 구입한 차량인 ‘서울 XX 1753’의 프라이드 3도어 승용차를 지금까지도 끌고 다닌다. 그는 ‘포르셰가 아니면 그랜저나 프라이드가 뭐가 다르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다르던데….
특히 브랜드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했다. 물컵조차도 무슨 우유회사에서 주는 판촉물 같은 것은 사용하기를 거부했다. 친정(?)이 LG애드이다 보니 한때 맥주를 마셔도 꼭 LG애드에서 광고대행을 맡은 회사의 맥주만 마셨다.
술 이야기가 드디어 나왔다. 광고인들에게도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알고 있다. LG애드식으로 표현하면, 그는 ‘LG애드가 서울역 앞에 있던 시절’, 회사 앞 조그만 선술집을 곧잘 떠올렸다. 일하다가 나와서 라면 먹으며 소주 한잔하고 다시 들어가서 일하고….
조금 나이가 든 광고인들은 그런 추억으로 가득찬 술집들이 있는 듯하다. C광고회사의 윗사람들은 옛 사옥이 있던 시청 부근, D광고회사의 사람들은 관훈동 시절 자주 가던, 그런 술집을 그린다.
나와의 만남에서도 그는 점심 때나 저녁 때나 술을 즐겼다. 시장 골목의 허름한 선술집을 특히 좋아했다. 메뉴도 정확하지 않고 값도 정확하지 않은 술집, 그냥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며 해달라고 하면 곧바로 장을 봐와서 해주는 집. 당연히 값도 적당히 부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호텔의 바에서도 자주 술을 마셨다. 위스키와 버번을 즐기더니, 몇년 전부터는 와인이 그의 주종목이 되었다. 그는 이처럼 모든 선택에서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였다. 지식세계를 꿈꾼다고 하면서도, 안경집 아저씨가 자신을 ‘무대뽀’라고 부르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모습이 단적인 예다. 그는 안경을 새로 맞출 때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안경을 무조건 만들어달라고 밀어붙였다.
그는 지금 광고회사에 다니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광고에 대한 많은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회사의 광고를 직접 만들고, 매체에 광고를 집행하는 광고주니까. 그는, 지식공작소·커뮤니케이션북스·박영률출판사 등 3개의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박영률 사장이다.

 
LG애드는 이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기업
나는 광고인들이 저마다 하는 일은 달라도 대부분 그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의 힘으로 가득찬 크리에이티브의 세계에 있으니 말이다. 특히 LG애드 사람들은(단순한 생각같지만) 같은 사풍(社風) 속에서 살아왔으니까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지금 LG애드 사람들은 어떨까.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것이 상상력이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든. WPP 마틴 소렐 회장은 최근 열렸던 기자간담회 때 분명 그렇게 말했다.
지금 LG애드 사람들은 새로운 월드와이드기업(WPP의 일원)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바쁘다. 모든 직원들이 모든 일상생활에서도 영어로 말하는 기업이 될 것 같다. 이제는 사내에서 그들만의 용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아니라 ‘월드와이드’하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할 테니까. 또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기자로서 여러 기업들을 상대해 본 경험적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그랬으니까.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