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이 읽어주는 클래식 음악: 제 소리가 너무 크지 않나요? HS애드 공식 블로그 HS 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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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제가 일본의 광고 회사 덴츠(Dentsu, 電通)로 신입 사원 연수를 떠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덴츠는 광고 산업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명실상부 글로벌 최대 광고 기업이었습니다. 갓 업계에 입문한 새내기 광고인이었던 저에게 덴츠는 저만치 앞서 있는 동경의 대상이었죠. 그곳에서 근무하는 덴츠인(電通人)들은 또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연수 강의 중에 은근히 또는 대놓고 드러내는 그들의 자부심 - 우리는 세계 최고의 광고회사에서 일한다 - 앞에 왠지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하늘을 찌를 듯한 자부심의 원천은 단순히 기업의 규모와 높은 연봉의 차원이 아니었는데요. 당시 광고계에 갓 발을 담근 저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였습니다.

연수 강의가 이어지던 어느 날, 일본의 전통 가극 가부키(かぶき)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가부키에는 ‘쿠로코(黑子)’라는 독특한 역할이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 말로는 ‘그림자역(役)’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무대 위 배경을 움직이거나 인형 등을 조종하는 역할입니다. 쿠로코라는 이름 그대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이 얼굴 없는 역할은 극 진행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데요. 덴츠인 자신들은 에이전시로서 덴츠의 사명(使命)이 바로 쿠로코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가부키 무대에서의 쿠로코처럼 클라이언트의 비즈니스 성공을 위해 헌신하되 자신들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죠. 동시에 클라이언트를 더욱 빛내 주는 완벽한 조력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후에도 이보다 더 멋진 광고인의 사명에 대한 은유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음악계에도 이런 쿠로코와 같은 역할이 있어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그는 바로 반주자입니다.


빛나는 독주자를 위한 외로운 그림자

반주자는 말 그대로 독주자의 노래나 기악 연주를 도와 함께 연주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대개 피아니스트가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한자어 ‘반주(伴奏)’에서 ‘반(伴)’은 짝 혹은 반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주자는 독주자의 짝꿍, 혹은 반려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본래 한자어 의미의 이상(理想)과 달리 현실에서의 반주자는 독주자보다 절대로 주목받아서는 안 되는, 철저한 그림자 역할에 만족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음악회장의 쿠로코 역할인 것입니다.

반주자의 연주는 독주자보다 소리가 크거나 튀어서는 안 됩니다. 독주자가 턱시도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할 때, 언제나 튀지 않는 검은색 계열의 심플한 의상을 입습니다. 연주가 끝난 후 박수갈채를 받을 때도 독주자보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대 위, 반주자 위상의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무대 위에서 반주자의 존재감마저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반주가 필요 없는 피아노 연주회나 일부 무반주 독주회를 제외하고 리사이틀(독주) 무대엔 반드시 반주자가 필요합니다. 전체 연주의 절반은 반주자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반주(伴奏)는 반주(半奏)이기도 한 셈입니다.


▲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그의 반주자 줄러어스 드레이크의 슈베르트 가곡 <겨울 나그네> 중 <우편 마차(Die Post)> 연주 영상. 드레이크는 세계적 반열에 오른 피아니스트이지만 반주에 매력을 느껴 전문 반주자로 전향한 대표적 인물이다. | Die Post from Schubert’s Winterreise – Ian Bostridge & Julius Drake (출처: Sarah Willis 유튜브)

특히 성악가들에게 반주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반주 없이 노래를 부를 수도 없거니와, 반주 자체가 노래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반주는 성악가의 연주가 빛을 발하게 만드는 ‘배경’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반주가 형편없으면 성악가의 연주도 빛을 잃게 되죠. 따라서 반주자의 실력과 성악가의 연주력은 바늘과 실 같은 관계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프로 성악가들은 개인 전담 반주자들을 두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본인의 음악적 성향, 호흡을 잘 알고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반주자는 성악가의 둘도 없는 든든한 파트너이자 재산입니다.

그런데도 무대 위에서 조연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반주자라는 존재의 아이러니이면서 매력이기도 합니다. 빛나는 독주자를 위해 외로운 그림자를 자처하는 겸손의 미덕, 자신에게 주어진 조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소명 의식 같은 것 말이죠. 이와 같은 반주자의 숙명을 짊어지고 ‘전문 반주자’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이 앞다투어 작업하길 원했던 영국의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Gerald Moore, 1899~1987)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반주자(The Unashamed Accompanist)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좌)와 제럴드 무어(우) _ 출처: PRISTINE CLASSICAL

제럴드 무어는 1899년 영국 왓포드(Watford)서 태어났습니다. 여느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처럼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던 그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20대에 일찌감치 독주자가 아닌 반주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사실 피아노는 다른 어느 악기보다 독주곡 레퍼토리가 많은 악기입니다. 그래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대부분의 학생은 무대 위에서 빛나는 화려한 독주 피아니스트를 꿈꿉니다. 더구나 무어의 젊은 시절만 해도 반주자는 독주 무대에 나설 역량이 되지 않는 반쪽짜리 피아니스트라는 인식이 강했고 음악회 포스터나 프로그램 북에도 반주자의 이름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전도유망한 젊은 피아니스트였던 무어의 선택은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그의 선택에는 여러 계기가 있었겠습니다만, 그의 생을 돌이켜보면 그의 인품과 성격이 천상 ‘반주자’였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의 첫 반주 상대는 스승, 마이클 햄버그(Michael Hamburg)의 아들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자신에게 무료로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던 스승의 아들이 첼리스트로 성장하자 그의 반주 상대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처음 보은의 차원에서 시작했던 반주자 역할은 이후 4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동안 무어는 반주만 하는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지며 세계 최고의 독주자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됩니다. 성악가로는 티토 고비(T. Gobbi),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D. Fischer-Disekau), 헤르만 프라이(H. Prey),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V. De Los Angeles), 크리스타 루드비히(C. Ludwig), 자넷 베이커(J. Baker) 등 전설적인 남녀 성악가들이 있으며, 기악 연주자로는 파들로 카잘스(P. Casals), 프리츠 크라이슬러(F. Kreisler), 피에르 푸르니에(P. Fournier)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야말로 20세기 클래식 거장 중의 거장 대부분이 그와 함께 무대에 선 셈입니다.


▲20세기 가곡 연주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테너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제럴드 무어. 두 사람은 수많은 앨범 작업을 함께하며 독일 가곡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린 환상의 콤비였다. | Beethoven, An die ferne Geliebte – Dietrich Fischer-Dieskau; Gerald Moore (출처: Analogon Edizioni 유튜브)

무어는 언제나 함께 무대에 서는 상대 독주자의 음악적 성향과 감정 상태를 세심하게 살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연주곡에 대해 독주자 이상의 연구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그는 독주자들이 가장 편하게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앙상블을 이룰 수 있는 반주자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음악가들이 그와 함께하길 바랐고, 반대로 무어가 누군가 새로운 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서면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최고의 연주자들과만 작업해온 무어가 함께 호흡을 맞출 정도라면 곧 세계적인 스타가 되리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무어라는 걸출한 반주자가 등장하면서 반주의 위상은 더 이상 반쪽짜리 부수적 연주가 아닌, 독주자의 반려이자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위대한 예술이 됩니다. 레코드 앨범 재킷이나 연주회 포스터에 반주자의 이름이 당당히 등장하게 된 것도 무어가 개척한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거장들과 완벽한 호흡을 보이며 어느덧 어지간한 독주 피아니스트 이상의 명성을 얻게 된 무어는 그럼에도 혹여 자신의 반주가 독주자의 연주 이상의 소리를 낼까 경계하며, 언제나 주역을 위한 조역 역할에 충실하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후배 반주자들에게 반주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하는 의미에서 한 권의 책을 집필합니다. 반주의 기술과 반주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담은 『부끄럽지 않은 반주자(The Unashamed Accompanist)』입니다. 자랑스럽거나 위대한 반주자가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반주자라니, 정말 무어다운 타이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럴드 무어의 반주 지침서 『부끄럽지 않은 반주자』를 무어의 육성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무어의 가르침은 아직도 반주자들 사이에서는 바이블로 회자되고 있다. | Gerald Moore, 1955: The Unashamed Accompanist – Complete (출처: davidhertzberg 유튜브)

반주란, 잘해도 독주자 이상의 주목을 받을 수 없는 반면에 못 하면 그날의 연주 전체를 그르치기에 독주자와 관객들에게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갖춘 반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그의 육성 레슨은 후일 동일한 제목의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어눌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반주의 정석을 이야기하는 그의 육성에서 ‘반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제 반주 소리가 너무 크진 않았나요? (Am I too loud?)

무어는 세계 최고의 음악가들과 40여 년을 함께 무대에 섰지만 정작 본인을 위한 리사이틀 무대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었습니다. 은퇴하기까지 평생 누군가를 위해서만 무대에 섰던 무어를 위해 음반사 EMI의 프로듀서였던 월터 레그(Walter Legg)의 주선으로 처음으로 무어를 위한 무대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무대를 위해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E. Schwarzkopf), 데 로스 앙헬레스 그리고 피셔-디스카우 등 당대 최고의 성악가 3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늘 무대 한편에서 자신들을 위해 묵묵히 반주해온 무어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한 고별 무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제럴드 무어의 은퇴 무대에 함께하기 위해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귀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무어가 이들 성악가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_ Homage to Gerald Moore (Live at Royal Festival Hall, 1967) (출처: WARNER CLASSICS)

1967년 2월, 영국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린 고별무대는 무어가 주인공이었지만 그의 무대가 늘 그랬던 것처럼 피아노 독주 프로그램 없이 성악 프로그램들로만 구성되었고 무어 역시 반주자로 피아노 앞에 섰습니다. 관객들은 그의 고별무대에서도 그의 반주만 들을 수 있었던 것이죠. 프로그램이 마무리되자 관객들은 모두 기립해 부끄럽지 않은, 아니, 위대한 반주자 제럴드 무어를 향해 힘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무어는 오히려 관객들의 기립 박수에 황망해 하며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소리를 높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발 모두 자리에 앉아주세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밤 제가 반주자로서 겸손하지 못했을까 두렵습니다. 사실 저는 때때로 ‘내 반주가 너무 크지 않을까? (Am I too loud?)’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집니다. (중략) 오늘 멋진 밤을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작별 인사를 나눌까 합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식입니다.”

고별무대에서조차 혹여 자신의 반주가 누가 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했던 이 겸손한 대가는 조용히 피아노로 돌아가 앙코르곡으로 그의 피아니스트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리사이틀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연주한 곡은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An die Musik)>였습니다.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연주가 불과 1분 30초 남짓의 짧은 가곡 반주 연주였던 것이죠. 연주 인생 마지막 무대이니만큼 한 번쯤은 화려한 독주곡을 연주할 법도 한데 그는 마지막까지도 천상 반주자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음악 역사상 가장 소박한, 그러나 아름답고도 위대한 퇴장이었습니다.


피아노에 앉은 사람이 그날 연주회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광고회사 굿비 실버스타인 앤 파트너스(Goodby, Silverstein & Partners)의 부회장이자 어카운트 플래너였던 존 스틸(Jon steel)은 그의 저서 『진실, 거짓 그리고 광고(Truth, Lies and Advertising)』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늘 플래너란 존재는 미군 특수부대나 영국 SAS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만약 그들이 그들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면 아무도 그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몰라야 한다.”

광고인도 어떤 의미에서는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의 SAS 특수부대원이자 가부키의 쿠로코이며 무대 위의 반주자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조연이자 그림자 같은 존재 말입니다. 성공의 스포트라이트에 광고인(반주자)은 완성하는데 주역, 조역이라는 포지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위대한 반주자 무어의 음악 인생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에 앉은 사람(반주자)이 그날 연주회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음악계의 오랜 통설입니다. 위대한 조역은 때론 주역 이상의 존재감을 갖게 됩니다.

Posted by HS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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