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요조’의 청춘 에세이: 단어들은 너를 위한 거란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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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예술을 접할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프랑스만의 매력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래서 프랑스 아티스트들에게 그게 도대체 뭐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다 ‘quelque chose(껠끄 쇼즈)’라고 대답할 뿐이에요. 카를라 부르니, 당신은 심지어 <quelque chose>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냈지요. 그러고 보면 당신은 프랑스 특유의, 소위 ‘quelque chose '의 상징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를라, quelque chose 라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나요?”

프랑스의 목소리라 불리기도 하는 뮤지션(이자, 전 프랑스 영부인이기도 한) 카를라 부르니와 조승연 씨의 인터뷰를 유튜브로 우연히 보았다. 꼭 물어보고 싶었다는 말로 시작하는 조승연 씨의 마지막 질문 속에 등장한 quelque chose는 ‘something’, ‘무언가' 정도로 해석되는 단어이다. 그러나 quelque chose는 ‘무언가’라는 뜻 이상의 더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는 말임이 틀림없다. 프랑스에서 몇 년간 유학하고 충분히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조승연씨가 그 질문을 한 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quelque chose’의 본질적인 정수에 온전하게 가닿지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자신의 한계가 답답해서였을 거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짐작한다.


▲프랑스 가수, 전 영부인이 말하는 프랑스 문화의 매력 (ft.카를라 브루니) (출처: 조승연의 탐구생활 유튜브)

포르투갈어 중에서도 quelque chose처럼 영 잡히지 않는 단어가 있다. 나는 그것을 보사노바를 듣다가 알았다. 보사노바를 무척 좋아한다. 아마도 내가 기타를 무척 잘 치는 음악가였다면 지금쯤 보사노바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포르투갈어를 조금도 모르는데도 하도 보사노바를 물 마시듯 들었더니 그 음악 속에 등장하는 몇 가지 단골 단어들이 자연스레 귀에 붙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saudade였다. 발음을 한국어로 옮기면 ‘사우다지'. 어느 날 포르투갈어에 유창한 사람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사우다지'의 뜻을 가볍게 물어본 적이 있다. 보사노바를 듣다 보면 유독 이 단어가 많이 들리던데 이게 무슨 뜻이냐고. 그때 그 사람도 예의 답답하고 난처한 외국인의 표정으로 사실은 자신도 그 단어의 뜻을 여전히 알아가고 있다고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그리움'이라는 뜻을 품고 있기는 한데 그 뉘앙스가 참 복잡해요. 슬프지만 동시에 행복하고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립지만 그렇다고 그 때로 정말 돌아가고 싶은 건 또 아니고... 영원히 감을 못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브라질 사람이 아니니까.”

‘quelque chose’나 ‘saudade’를 생각하면 ‘한'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정서라고 소개하는 단어 말이다. ‘거시기' 라는 말도 빼놓을 수 없겠다. 아마도 모든 나라의 언어에는 그런 단어들이 존재할 것이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는 언어. 그래서 모국어의 감각으로, 머리보다 몸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 그러나 그런 단어는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접하는 대부분의 모르는 단어들을 대체로 사전의 도움을 통해 충분히 납득하고 끄덕이면서 무난히 살아갈 수 있다.

초등학생 때 묵직한 국어사전을 받아들고 맨 처음 어떤 단어를 찾아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건 무척 바보 같은 단어를 찾아보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어른들에게 도저히 물어볼 수 없는 부끄럽고 야한 단어였을 지도 모른다. 나는 실제로 그런 더럽고 음탕한 단어들의 뜻을 사전을 통해 얼추 이해할 때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찾아보는 일도 잦았다. ‘마음', ‘사랑' 같은 말들.

그렇게 사전을 펼칠 때마다 한 단어의 뜻이 다른 단어들로 설명이 되어있다는 게 좀 아득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단어를 알기 위해서 또 다른 단어가 필요하고 그 단어를 모르는 경우에는 다시 다른 단어를 동원해야 한다는 게 어쩐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쳇바퀴를 도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바로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좋아하다' 같은 경우가 그랬다. 사전 속에서 ‘좋아하다'는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지다.’로 풀이되어 있다. ‘좋아한다’는 것을 ‘좋은 느낌’이라는 동어로 정의하다니. ‘누굴 좋아한다는데 이유가, 그런 이유가 어디 있어. 그저 어느 누가 맘에 들면 그냥 맘에 드는 거지.’라는 가수 김현철의 노랫말은 정말 사전적 정의에 충실한 것이었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 꼼꼼히 정의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닌 것 같다. 잠자리 날개처럼 얇디 얇은 종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이 많은 단어들을 대체 어느 세월에 정리한 것일까. 사전은 애초에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그 과정을 한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상상해볼 수 있었다.

2021년 새해의 첫 독서는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이라는 책이었다. 옥스포드 사전의 제작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실제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이제 막 사전의 B 파트를 진행하고 있던 1887년으로부터 시작한다. ‘스크립토리엄' 이라고 부르는 옥스포드 대학에 딸린 한 작은 창고를 개조한 사무실 안에서 제임스 머리 박사 이하 여러 편집자들은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보내오는 쪽지를 받는다. 그 쪽지에는 단어 그리고 그 단어로 만든 예문이 적혀있다. 스크립토리엄에서는 그 단어들을 분류하고 예문을 수정하며 사전에 실릴만한 것인지를 평가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어떤 단어들은 사전에 실리고, 어떤 단어들은 실리지 못한다. 끝도 없이 넘치는 쪽지들과 분류함 그리고 단어를 단어로 완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허름한 사무실 안의 열기를 상상하면 나까지 숨이 조금 막혀오는 듯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에즈미 니콜은 편집자인 아빠를 따라 매일 스크립토리엄으로 출근한다. 아빠와 단어를 무척 좋아하는 어린이라서이기도 하지만 일찍 엄마를 여읜 탓도 있다. 아빠가 일하는 동안 편집 작업 책상 밑에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에즈미는 어느 날, 책상 아래로 떨어진 쪽지 하나를 줍는다. 거기엔 ‘여자 노예(bondmaid)'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에즈미는 이 버려진 단어가 무슨 의미를 뜻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쪽지를 몰래 챙긴다. 그리고 리지라는 자신의 ‘여자 노예'와 이 비밀을 공유한다. 리지의 낡은 여행용 가방 안에 스크립토리엄에서 버려지는 단어들을 하나둘 모으며 시간이 흐르고 에즈미와 리지는 점점 더 가족과도 같은 각별한 사이가 되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 모두에게 ‘여자 노예' 라는 단어는 자꾸만 불편하고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처음 에즈미가 글자를 모르는 리지에게 조심스럽게 그 뜻을 알려주었을 때, 그는 별 생각 없이 “그건 저네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리지는 자신의 처지를 정의하는 ‘여자 노예'라는 단어가 뜻하는 깊고도 무서운 한계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난 노예가 아니에요.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나 자신이 여자 노예라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어요.”라고 말하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여성 참정권 운동에 동참하려는 에즈미를 향해 ‘그건 돈 있는 숙녀들을 위한 운동이며 그들이 선거권을 갖게 돼도 자신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여자 노예일 것'이라는 일침을 놓기도 한다. 그러나 나중에 제임스 머리 박사가 사망한 후 비워지는 스크립토리엄의 구석에서 다시 bondmaid 라는 단어 쪽지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이 말이 불편하지 않냐는 에즈미의 질문에 리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단어는 누가 사용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아가씨가 항상 말했잖아요. 그러니 ‘여자 노예’는 저 쪽지들에 적혀 있는 걸 넘어서는 무언가를 의미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아가씨가 어릴 때부터 아가씨와 연결돼 있는 여자(bondmaid)였어요, 에시메이. 그리고 난 그 매일매일이 기뻤어요.” 

‘여자 노예'라는 사전에서 누락된 단어는 오랜 우정과 신뢰의 시간을 거쳐 리지의 입을 통해 더 위대한 정의를 획득한다. 


다시 맨 처음 조승연씨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quelque chose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냐는 그의 질문에 카를라 부르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오, 제가 정확히 설명해드릴 수 있어요. 그건 바로, ‘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 단어를 그렇게 쓰는 거예요. 그냥 그 주위를 뱅뱅 도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게 뭐냐 하면요, 어떤 상황 또는 감정을 묘사하기 힘들 때에요. 왜냐하면 그것들이 가장 중요한 감정들이거든요.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들은 설명할 수 없어요. 우리는 기쁨도, 사랑도, 욕망도 묘사할 수 없죠. 물론 느끼지만!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진정으로 느끼지만 너무 강하게 느껴서 적절한 단어가 없을 때, 그리고 단어를 찾아봐도 나타나지 않을 때, 거기선 그냥 어떤 ‘감촉’ 같은 것만 느껴져요. 그런 면에서 quelque chose는 우리의 욕망이에요.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고요. 평온함, 탐험, 소통 등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지요. 욕구 없이는 삶도 없어요.”

옥스포드 사전은 완성되기까지 7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한 사람의 평생과 맞먹는 시간이다. 전국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전문가들의 노고를 촘촘하게 거쳐 그토록 정확에 가까운 단어들의 세상이 건축되었지만 어떤 단어는 에즈미와 리지라는 단 두 사람의 세상 속에서 더 생생한 생명을 얻는다. 그런가 하면 어떤 단어는 카를라부르니가 말한 대로 그저 주위를 뱅글뱅글 돌게 하면서 영원히 실패하는 방식으로 반짝이며 실재한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을 읽자마자 2021년의 첫 소비를 감행했다. 묵직한 검정색 국어사전이다. 한 손으로 얼마나 무거운지 무게를 가늠해보고 있는데, 불현듯 책에서 읽었던 에즈미의 아빠 목소리가 다시금 들리는 듯하다. 

“단어들은 너를 위한 거란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