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좌우명이 없다. 아니면 너무 많을지도.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내가 좌우명이란 말을 잘 알고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과나 비행기 같은 말을 잘 알고 용도에 맞게 잘 쓰고 있다는 말과 같다. 며칠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떤 퀴즈프로에서 그 뜻을 정확히 알려주기 전까지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좌우명의 뜻은 대충 이랬었다. 한자로 왼 좌(左), 오른 우(右). 그러니까 우왕좌왕하지 않게 만드는 인생의 지침이나 방향으로 삼을 어떤 글귀 같은 것들…그런 새김 글들을 좌우명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의 글을 지금까지 읽었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을 여러분들에게는 죄송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본뜻에는 미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한가.) 뻔뻔한가? 사과드린다.
이쯤에서 그 수다스러운 퀴즈 진행자의 뜻풀이를 적어보면 이렇다. ‘좌우명(座右銘) : 늘 자리 옆에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 왜 자리 오른쪽인지는 포털 사이트만 쳐봐도 금방 나오는데 대부분의 고사성어들이 그렇듯이 재미있고 유익하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들 중에 오용과 남용이 어디 이뿐이랴. 특히 우리말에는 한자나 고사성어에서 유래한 말이 많은지라 이런 일상사는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사실 어떻게 그 본뜻을 다 알고 쓰랴. 쓰니까 쓰는 거고 쓰다 보니까 쓰는 거지. (학자나 기자나 작가는 예외. 그러니 아무나 글 써선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모르고 쓰는 것보다 나처럼 잘 못 알고 쓰는 사례들이 더 나쁘다. 모르면 물어보고 찾아봐야 할 텐데, 냅다 자기식으로 해석해버리고 그걸 믿음으로 간직하고, 끝내는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 사례들 말이다. 내가 몇 년 전까지 갖고 있던 아주 황당한 사례 또 하나는 고인돌이다. 내가 그때까지 갖고 있던 고인돌은 옛 고(古)에 사람 인(人)을 쓰는 고인돌이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냅둬유’식 해석은 ‘고대 사람들의 돌로 된 무덤’이었다. 그 말이 ‘고이다’ 혹은 ‘괴다’의 순우리말에서 왔다는 것을 우연치 않게 알게 됐을 때의 당혹감 혹은 괜히 뭔가 헛물 켠 것 같은 느낌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만 나온다. 그래도 이 정도면 사실 술자리 우스갯소리쯤으로 봐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런 정도의 자의적 오인지(誤認知)는 그냥저냥 애교로 웃어줄 수도 있고… 실제로도 잘못 알고 있을 따름이지 잘못 쓰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사회적 해악이 될 정도도 아니고.)
어쨌든 나의 뇌는 왜 한번도 그것들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자의적 오인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단어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떤 정보에 대해, 사람에 대해, 현상 혹은 기억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의적 오인지를 감행하고 그것들로 둘러싸여 있을까. (생각해보면 섬찟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에겐 사실을 믿는 것 같지만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성이 있음에 틀림없다. 진실이 아니라 진실스러움(Truthiness)이 세상을 호도하는 이유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다. 우리의 뇌는 과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내가 대신 대답을 해도 좋다면… 뇌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편집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검열도 하고, 삭제도 하고, 일면 톱으로 올리기도 하고, 사회면 구석 기사로 취급해 버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짜맞추기도 한다. 사람에 대해, 현상에 대해 그리고 모든 기억에 대해 자의적 가위질을 해댄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내 생각’이라고 부른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비극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제일 어려운 건 생각으로부터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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