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메트로폴리스 서울총회 집행위원회 회의 전경 |
|
|
|
삼청각에서의 다도교육(동반자 프로그램) |
|
|
|
메트로폴리스 서울총회 개회식 |
|
|
|
환영리셉션 중 '난타'의 축하공연 |
|
|
환영리셉션 식젼공연 |
|
|
서울시장 주최 만찬에서의 강강술래 공연 |
| |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 창조를 통해 아시아의 큰 별로 우뚝 서면서 대한민국은 월드컵 성공 개최라는 큰 꿈을 이루었다. 이러한 성과는 비단 월드컵이라는 축구 행사에만 국한된 성과는 아니리라.
세계 60여 개국의 대도시 시장 등 300여 명의 인사들이 세계 대도시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메트로폴리스 서울 총회. 월드컵 직전인 5월 27~31일 에 열린 서울 총회는 월드컵과는 또다른 측면에서 세계의 관심을 서울에 집중시키면서 월드컵 붐업(bo om-up)을 위한 명예홍보대사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총회와 연회 행사, 현장 방문, 동반자 투어, 시티 투어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국제회의 행사 중 최다인 총 42개의 행사로 진행된 이번 서울 총회는 비록 5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300여 해외 참가자에게 서울을 세계 대도시의 중심도시로 각인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는 한편 월드컵 개최 직전 세계의 이목을 한국으로 집중시키는 데에도 적잖은 역할을 한 행 사였음을, 이제 자부한다. |
|
영업? 王道는 없어도 正道는 있다! |
신규 프로젝트의 소스(source)를 접하게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메트로폴리스 총회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정석(定石)’의 의의를 새삼 일 깨우며 많은 것을 배우게 한 프로젝트였다.
2001년 새해가 밝은 후, 필자와 팀장은 서울시의 각 부서를 찾아 다니며 지인들과 새해 덕담을 나누던 중 뜻하지 않은 정보(?)를 하나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서울 시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메트로폴리스 서울 총회 소식이었다.
‘아, 영업에는 왕도가 없구나!!’ 열심히 발로 뛰고 끊임없이 유대관계를 맺는 정도(正道)만이 최상이라는 영업맨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그후로 경쟁 P/T가 진행된 11월까지 1년 여를 준비한 끝에 드디어 맞이한 사업 설명회 현장. 광고대행사와 전문 PCO(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 등으로 양분된 국제회의 분야의 경쟁 구도를 말해주듯, 현장에는 내로라 하는 광고대행사와 PCO들의 북적거림 속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맴 돌았다. 첫 관문인 1차 서류심사는 30여 개 경쟁사와의 치열한 격전. 그 과정에서 우리회사를 제외한 다른 광고대행사는 모조리 탈락하는 이변(?)이 속출하고, 5개사로 압축된 2차 프리젠테이션에서 결국 우리의 손이 높게 올라갔다.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하며 온 열정을 쏟아 부은 프로젝트만이 우리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진리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서울시에서도 역시 통하는 것임을 재차 확인하였다. |
|
|
<표1> 세계대도시협의회(Metropolis)개요 |
|
|
<표2> 메트로폴리스 2002 서울총회 개요 |
|
|
월드컵이라는 특수 상황, 호재이자 악재(?) |
이번 메트로폴리스 서울 총회는 총회 자체의 의미와 더불어 월드컵 바로 직전에 개최된다 는 또 하나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즉,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활용하여 세계인의 관심을 서울로 집중시킨다는 붐업 차원의 의의와 서울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데 월드컵을 활용하겠다는 큰 목적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실무적 입장에서 보자면 이 행사를 진행하는 데 월드컵이 꼭 긍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행사에 필요한 음향·영상·조명 등의 시스템에서 수송차량, 전문인력 수급 등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겨준 것이다. 특히 해외 참가자 환대 차원에서 27인승 버스를 운행하겠다는 서울시의 요청에 따라 국내에서 신규로 제작중인 27인승 버스를 급히 준비해야 하는 비상상황이 걸리기도 했다. 또한 FIFA가 서울시내 전 호텔의 70%를 예약해 놓은 터라 호텔 수급 문제가 대두되었고, 행사 기간중의 교통 혼잡도 우려되었다.
결국 숙박시설 및 수송차량 등은 발빠른 조치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숙박시설의 블록 해제가 행사 시작 1개월 전에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그후에는 1박에 대한 예치가 있어야 하는 등 월드컵이라는 ‘특수환경’에 따른 ‘우리만의 악조건’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우리에게 월드컵은 엄청난 호재이자 매우 큰 악재인 셈이었다. |
[] |
서울의 모든 것을 보여주자! |
서울 총회의 프로그램은 크게 8개의 프로그램과 42개의 개별 행사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에는 9건의 현장 방문과 6건의 동반자 투어, 그리고 5월 31일의 시티투어 등 서울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외부 행사가 마련되어 있어 해외 참가자에게 서울의 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다만, 동대문시장·인사동·선유도·판문점·민속촌·이태원·경희궁·그랜드힐튼호텔, 그리고 월드컵 경기장까지 무려 32개 장소를 넘나들어야하는 ‘행사장의 멀티화’는 많은 준비 인원과 현장투입 인원을 필요로 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어서 기간 내내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가 없었다.
이렇듯 다채로운 외부 행사장을 오가야 하는 이번 총회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수송 문제 또한 행사 성공의 중요한 열쇠였다. 이에 3월부터 전 스태프가 투입된 가운데 전체 행사장 수송 코스 리허설이 펼쳐졌다. 최단기 코스 개발, 주차공간 확보, 참가자 이동 동선 및 방문 장소 리허설 등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른 이 리허설은 행사 전일까지 이루어졌는데, 특히 행사 전 최종 리허설에는 자원봉사자 및 전문 인력 모두가 참여하여 철저한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성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서울시장 주최 만찬이 문제였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만찬 장소를 찾는 것은 우리에겐 큰 어려움이었다. 3개월간 20여 곳의 장소 헌팅 끝에 마침내 덕수궁으로 결정했는데 아뿔사, 여러 가지 문제로 행사 3주 전 돌연 취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 부랴부랴 수소문 한 끝에 행사 2주 전에 간신히 경희궁으로 확정되었다. 장소 확정 뒤의 시스템 확보 문제 또한 역경. 그러나 경희궁의 화려한 외관에 감탄하던 해외 참가자들이 흥을 감추지 못해 무용단과 어우러져 강강술래를 하며 한국의 문화를 만끽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고난은 금세 행복의 추억으로 바뀌었다.
5월 25일 참가자 영접에서부터 27일 등록과 환영리셉션, 현장 방문 투어 시작, 28일 공식 개회식 및 워크숍 시작, 현장 방문과 동반자 투어, 그리고 31일 월드컵공원에서 펼쳐진 ‘메트로폴리스의 길’ 제막식과 월드컵 개막식 참관등 숨돌릴 틈도 없이 진행 된 총 42개의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작은 허탈감보다는 커다란 무언가를 해냈다는 자긍심에 젖어 들 었다.
행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과연 이번 메트로폴리스 서울 총회를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또 과연 무엇이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잣대인지가 항상 의문점으로 떠오른다. 다른 어느 행사보다 힘든 역경의 순간들로 점철된 행사였기에 기억 속에 오래 자리잡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확실하다.
행사가 끝나면 항상 행사를 무사히 마치게 해준 스태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 개인 가슴 가슴에 이번 행사의 성공 여부의 잣대가 있지는 않을까. 내 가슴에 있는 잣대처럼 말이다. 어렵고 힘든 순간 몸과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준 모든 스태프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행사 성공의 큰 공을 그들에게 돌리고자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