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2 : 여행자의 길, 창을 순례하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여행자의 길, 창을 순례하다


구 선 아

BTL프로모션팀 차장 / koosuna@hsad.co.kr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비행기 티켓? 이국적인 거리? 로컬 푸드? 나는 이 책을 접한 후로는 여행지를 고를 때도, 여행지에 가서도 꼭 이것을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바로, 건물의 표정을 드러내어 보이는 ‘창문’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몇 달 전 온에어됐던 팟 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통해서였다. 진행자인 이동진 평론가가 직접 산 책을 소개하는 코너 ‘내가 산 책’에서 이 책, <창을 순례하다>에 대한 내용을 듣게 됐다. 책의 소개 내용을 듣는 순간, 달리는 지하철을 이끌고 서점으로 가 책을 당장 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끌렸다.

<창을 순례하다>는 ‘건축을 넘어 문화와 도시를 잇는 창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일본· 중국·한국·슬로베니아·독일·터키·멕시코·스페인 등 전 세계 28개 나라, 76개 도시, 139개 장소에서 발견한 창문의 문화적 가치를 소개한다. 저자는 학생들과 함께 기후에 따라 달라지는 창문을 조사·연구한 자료를 정리해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조사한 도시의 기후와 종교를 표시한 세계지도가 삽입돼 있고, 각 창문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는 창문이 있는 건축물의 용도와 도시·나라를 명기했으며, 기후를 표기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창을 순례하다>는 연구를 위한 조사에서 시작되긴 했으나 결코 건축조사서나 보고서로 보이지 않는다.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은 인문학서이자 여행서이며 사진집이다.


주인도 모습도 색깔도 쓰임도 다른 세계의 창문

세계의 모든 창문을 <창을 순례하다>를 통해 만나보자.

아마 창문만으로도 세계 도시를 여행한 기분이 들 것이다. 28개 나라, 76개 도시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르꼬르뷔지에의 ‘어머니의 집’부터,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바우하우스’,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자택 서재, 이름 모를 어느 농부의 집 창문까지 창문의 주인도, 창문의 모습도, 창문의 색깔도, 창문의 크기도, 창문의 재질도, 창문의 쓰임도 모두 다른 창문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모든 창문을 <창을 순례하다>에서는 창문과 빛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회화적인 관계에 따라 세 파트로 나누고, 그 안에서 창의 형태·기능에 따라 또 한 번 분류해 소개하고 있다.



1. 빛과 바람 Light and Wind

빛이 모이는 창 Pooling Windows / 빛이 흩어지는 창 Dissolving Windows / 조각하는 창 Sculpting Windows / 빛이 가득한 방 Light Room / 그늘 속의 창 Windows in the Shadow / 바람 속의 창 Windows in the Breeze / 정원 안의 창 Windows in the Garden

2. 사람과 함께 Besides People

일하는 창 Workaholic Windows / 드나드는 창 Threshold Windows / 앉는 창 Seating Windows / 잠자는 창 Sleeping Windows / 구경하는 창 Observing Windows

3. 교향시 Symphonic Poem

이어지는 창 Aligning Windows / 중첩하는 창 Layering Windows / 창 속의 창 Within Windows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면서 연결하기도 하는 창문.

공간 경계의 매개인 창문은 환기를 시키기도 하고, 바람을 안으로 들이기도 하며, 빛을 통과 혹은 차단시키는 건축물의 기능적 역할도 하거니와 건축물의 용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기도 하고, 종교적 규범을 보여주기도 하며, 그 나라와 도시의 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앞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창문이 건물의 표정을 드러내는 가장 큰 요소로 느껴진다. 눈·코·입 같이 직관적인 표정 요소가 아니라 경건·명랑·숙연·강압·유쾌·시원·희망 같은 표정 말이다.


창은 기후와 풍토, 사회적·종교적 규범, 건물의 용도 등 그 장소가 요구하는 조건에 대해 매우 실천적으로 응답하는 동시에, 그곳에 한데 어울려 있는 다양한 요소의 섭리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상상력을 부여한다. 우리는 그 상상력 안에서 자신의 경계를 초월해 세계와 일체화되는 듯한 시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한 창의 본질은 이렇게 실천적인 동시에 시적인 상상력을 안겨주는 곳에 존재한다.

쓰카모토 요시하루 외 <창을 순례하다>


아마 책을 보면 여러 번 창문 하나에 감탄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특히나 나는 책의 뒤표지로도 쓰인, 마을 전체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스위스의 ‘과르다의 민가’ 사진에서 정말 눈을 뗄 수 없었다. 투박한 회반죽 마감의 두꺼운 벽에 비스듬하게 잘려있고, 빛이 밖에서 안으로 모여 드는 아주 작은 창이다. 이 아주 작은 창에 손뜨개질을 한 작은 원형 소품이 걸려있고, 원 둘레의 안쪽은 실이 얼기설기 짜여 만들어 낸 무늬가 그대로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다. 이 창문 사진 한 장 때문에 나는 수십 번은 다시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아름다운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낸 퍼포먼스의 한 순간을 찍은 사진처럼 보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비스듬히 잘린 창 안쪽에 모였다가 실내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곳에 놓인 소품들 관점에서 보면 빛은 나름의 작은 방이다. 어두운 방 안에 존재하는 빛의 방.

<창을 순례하다> ‘과르다의 민가’ 중


또한 창문들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시선을 멈추게 하는 건 짧은 글과 사진 한두 장에 창문의 스케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치수가 표기된 드로잉이다. 이는 도면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하다.

그리고 창문의 중간 중간에 인터로그처럼 네 개의 칼럼이 실려 있는데, 짧지만 통찰력 있는 글들이니 사진에만 심취하지 마시고 꼭 읽어보길 권한다.


• 스리랑카 기후와 풍토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건물을 짓는다는 것

- 건축가 제프리 바와가 설계한 루누강가 별장

• 앤티크를 통해 전통과 공명하는 건축 - 건축가 루돌프 올지아티가 설계한 플림스의 주택

• 인류의 오랜 경험이 녹아 있는 패턴 랭귀지 -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설계한 히가시노 고등학교

• 일상의 총체성과 건축적 파라다이스 - 건축가 버나드 루도프스키가 설계한 프로치다의 주택


이제 <창을 순례하다>를 읽고는 창문의 매력에 빠져 당분간은 창문만 바라보며 다닐지도 모른다. 기존에 사진을 찍을 때는 건축물의 입면을 많이 찍는 나였지만, 요즘은 창문을 더욱 중점적으로 보고 구조를 잡고 셔터를 누르게 된다. 벽면과 창문의 균형, 창문의 형태, 창문의 색깔, 재질을 담는다. 그리고는 뿜어져 나오는 그 건물의 공기와 빛까지는 담을 수 없음에 아쉬워하곤 한다. 먼 나라, 먼 도시로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곧 여행이니, 커튼월 건물로 뒤덮인 도시라 아쉬워말고 도시 곳곳에 숨은 특별한 창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아마 그 창문을 가진 건축물 역시, 그 건축물에 사는 사람들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니, 일단 창문에서 시작해보자는 말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