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2 : 추억팔이, 너와 나의 연결고리

추억팔이, 너와 나의 연결고리

- 우리를 추억하게 하는 공간들

서창호

Project xT팀 차장 / windowseo@hsad.co.kr

두 달 전 싸이월드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올랐다. 트위터·카카오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에 차례로 밀려 최근 방문일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서비스가 됐지만, 한때는 나와 내 일촌들과 일상의 단면을 공유한 플랫폼.

싸이월드에는 추억이 남아 있었기에 리뉴얼과 동시에 방명록·일촌평·쪽지 데이터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선 가물가물하던 옛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백업하면서 ‘사람들과 이런 대화도 나눴구나’라는 회상에 젖은 것도 잠시, 정작 싸이월드 리뉴얼 후에는 발길을 끊고선 추억은 추억일 뿐이라 되뇌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오늘’을 매일 상기시켜주는 페이스북 기능을 통해 몇 해 지나지도 않은 또 다른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추억이 뭐길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돌 몇 개(비석치기·오징어게임), 정구공 하나 (주먹야구, 일명 찜뽕), 구슬 몇 개(구슬치기), 폐종이(딱지치기)만 있으면 놀이를 하는 공간을 만들고 또래의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우리만의 플랫폼 구축을 방해하는 건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아이들을 부르기 위해 찾아 나선 어머니들뿐.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방영될 때마다 잠깐의 유행에 그칠 것으로 생각했던 추억팔이 열풍이 또 한 번 휘몰아치고 있다. 음원 시장에서는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쓰인 노래가 차트 상위에 자리 잡고 있고, 20여 년 전에 단종된 맥주가 한정판으로 출시됐다. 올해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뿐만 아니라 과거 인기를 얻었던 가수와 히트곡을 재조명하는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히든싱어4>도 ‘추억’을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무형의 플랫폼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도대체 ‘추억’이 뭐길래 이토록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추억’을 매개로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이들에 대한 정찰을 했다. 연말이기도 하고,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연남동 동진시장: 옛 시장 터에 새로운 시장이 싹트다!

마포구 연남동이 딱 10년 전 홍대의 모습이라고 했지만, 그것도 옛말. 연남동이 핫플레이스가 된 지는 이미 몇 년이 지났다. 연남동 동쪽 끝에 위치한 동진시장은 오래 전에 시장의 기능을 잃은 후 제멋대로 방치돼 한동안 인근 가게들의 창고처럼 쓰였다. 그러다 인근에 카페·음식점·공방 등이 들어서고 시장의 뒷골목이 입소문을 타면서 옛 재래시장의 흔적만 남아 있던 동진시장에 변화가 생겼다. 허름한 시장 터에 모자란협동조합을 비롯한 3개 팀이 내부를 개조해 워크숍과 행사를 여는 공간으로 바꾸면서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것. 이후 금요야시장·7일장·일요장이라는 장터 시스템을 도입해 젊은 셀러들의 벼룩시장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분주해졌다.

‘귀빈 의상실’·‘양품점’이라 쓰인 옛 간판 흔적, ‘불불불불조심’이라는 표어, 예전 시장의 낡은 골격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추억이라는 감성을 판매하고 있다. 시장 내부가 크지 않아 셀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로 장이 열리는데, 구제의류부터 캔들·향초·주얼리·액세서리 ·천연비누·초상화·엽서·캘리그라피·드라이플라워·천연가죽 봉투·수채화·캐리커처·팔찌·에코백·수제잼 등의 직접 만든 수제품을 팔고 있다. 동진시장을 낀 뒷골목에는 작은 음식점과 카페·찻집·

천 가게·빈티지숍·공방·서점 그리고 전시회장이 자리 잡고 있어 하나의 작은 문화공동체의 모습을 갖췄다. 동진시장은 옛 시장 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추억을 떠올리는 공간은 대게 재건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시장 플랫폼으로 그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동진시장 운영 일시>

금요야시장: 오후 5시-9시 / 7일장: 매주 토요일 오후 1시~7시 / 일요장: 매주 일요일

오후 1시~7시 (계절에 따라 일부 시장은 열지 않을 수 있음)

‘바이닐(Bainil)’: LP판·카세트테이프·CD로 디지털 음원을 듣는다?

요즘은 음악을 디지털 싱글 단위로 스트리밍하여 소비하는 것이 일반화됐는데, 바이닐(Bainil)은 앨범 단위 감상을 중요하게 여기던 아날로그 소비 행태를 모바일에 담아낸 애플리케이션이다. 우선 바이닐은 스마트폰 안의 음악파일을 턴테이블·카세트테이프·CD 플레이어 등 아날로그 시대의 음악 플레이어 스킨으로 재생할 수 있다. 각 앨범을 CD 플레이어에 집어넣는 것부터 시작해 트랙을 바꿔가는 것조차 CD를 옆으로 터치를 하는 등 기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의 버튼 방식과는 다른 아날로그적 재미를 부여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서 비닐 포장지를 뜯고 앨범 속지를 조심스럽게 넘기던 느낌을 기억하는가? 바이닐은 앨범 재킷 역할을 하는 디지털 북클릿(Digital Booklet: 가사·이미지·크레딧)도 앨범 시대의 디자인을 모바일에 최적화했다. 또한 ‘바이닐 포맷(BF)’이라는 고유한 음악 포맷을 지원하는데, 이 포맷은 오리지널 MR로 따라 부르거나 녹음까지 가능해 음원 감상을 넘어 음원 활용 측면에서도 다용도로 쓰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바이닐 담당자를 만나게 된다면 여러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활용해 나만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녹음하거나, 카세트테이프 스킨에서 음원을 많이 듣게 되면 마치 테이프가 늘어난 듯한 사운드가 나오게 하여 재구입을 유도하는 기능을 제안하고 싶다.

바이닐은 유통단계를 줄여 창작자들에게 공정한 수익을 나누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아직은 유통 전쟁에서 승리,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하지만 ‘추억’이라는 정서가 콘텐츠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이니만큼 아티스트의 창작물을 소장하고, 아날로그적인 형태로 음악을 소비하는 정서를 가진 음악 플랫폼의 행보를 주목해도 좋을 것이다.

‘몽롱문방구’: 문방구에서 맥주를 마신다?

‘어릴 적 추억이 묻어 있는 문방구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복고감성 주점, ‘몽롱문방구’. 서울 가맥(가게맥주)집을 표방한 이 문방구 안에는 추억을 불러오는 매개체들이 다수 존재한다. 가게 앞에 놓인 오락기를 비롯해 옛날 놀이거리인 공기·다마고치·보드게임과 쫀드기·아폴로·꾀돌이·페인트사탕·쥐포·달고나 세트 등 추억의 불량식품이 잔뜩 전시돼 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그 출처까지 궁금해지는 요요·딱지·장난감 전화기·종이인형도 만날 수 있다. 쫀드기나 쥐포는 구워먹어야 더 맛있으므로 셀프 코너에서 직접 구워 안주로 먹을 수 있다. 사장님을 부르는 ‘벨’은 탬버린으로 만들어졌고, 휴지는 미술시간에 갖고 다니던 물통에 담겨 있다.

몽롱문방구는 음주와 더불어 추억의 놀이로 손님들의 흥을 돋운다. 술기운에 상대방의 얼굴을 그리며 우정에 금이 가게 하는(?) ‘몽롱초상화’, 추억의 스피드게임, 보물찾기 그리고 솔로 리스트에 본인을 어필하는 문구를 적게 하는 사회공헌서비스(?) ‘몽롱중매소’까지. 음주 중 쉴새 없이 깨알 같은 놀이가 진행된다. 벽에 붙어 있는 수많은 초상화들은 모두 손님들이 술 한 잔 하고 손수 서로를 그려준 것.

몽롱문방구에는 ‘추억을 찾으러 갔다가 추억을 만들고 왔다’는 손님들의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인테리어 하나하나, 소품 하나하나 추억을 담고 있지만 단순히 문방구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을 넘어 추억을 매개로 사람간의 관계를 이어주고 있는 몽롱문방구 역시 추억팔이 시대에 주목할 플랫폼이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더 많았고, 그 사람들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 또한 강력했다. 결국 추억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에 사람을 끌어 모으고,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플랫폼을 만드는 매개체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2015년의 추억도 꼼꼼히 기록한다면 훗날 강력한 콘텐츠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한 해 동안 HS애드의 사보 연재라는 추억을 함께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연말이니까 미리 인사드릴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