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 선달 편
심 의 섭
CR센터 Chief copy / adel@hsad.co.kr
‘이 사람, 광고 했으면 딱! 이다’를 시작하며…
우리가 아는 사람 중 광고인은 아니지만 광고를 했다면 좋았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 인물이어도 좋고, 역사 속 또는 이야기 속 인물을 가리지 않고 주인공으로 하겠습니다. 이번 편은‘ 가상의 대한민국’으로 출근을 시켜버리지요.
선달 군, 광고회사에 가다
3017년 1월의 대한민국. 김 선달은 피 말리는 입사경쟁도 거치치 않고 광고점(店)에 입사한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이며, 왕이 다스리는 왕정제 국가이다. 왕은 있지만 귀족과 평민·노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한다.
선달은 어린 시절부터 말발이 세기로 유명했다. 초중고등학교를 말발로 평정한 선달은 말발로 왕립대학교에 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다. 졸업 후 수도인 서울의 광고店에 말발로 당당히 합격해 첫 출근 날이다.
그렇다. 오늘의 주인공은 봉이 김 선달이다. 실존 인물인지 설화 속 허구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광고를 했으면 성공했을 사람으로 가장 먼저 떠올랐다. 대동강 물을 판 인물이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듯.
선달은 출근 1주일 만에‘ 봉이’라는 애칭을 선사 받는 영광을 누린다. 말발은 기본이요, 입사 동기와 상사, 심지어 사장님까지 다루는 기술이 20년 다닌 완벽한 직장인이다. 광고店의‘ 글쓰는 이’로 들어왔으면서 쓰라는 광고 글은 안 쓰고 여기저기 다니며 참견하기 바쁘다.
하루는‘ 튀긴 닭’ 담당 팀에 쫄래쫄래 가더니 기웃기웃. 선배들이 쓴 광고 글을 보며 혼자 중얼중얼한다. 그때, 선달은 한 선배와 눈이 딱 마주쳤다.
득달같이 선배에게 달려간 그는 뜬금없이 물었다.“ 선배님, 이게 그 전설의 판매량을 기록한‘ 봉’인가요?” 아니, 이게 무슨 봉창? 순간 선배는 황당함 속에서 놀릴거리를 찾았다.‘ 아니, 닭을 봉이라니~ 한 번 놀려 볼까. 흐흐흐~’ 자상함을 가장한 귀신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한다.
“그래요, 선달 씨. 봉이에요, 전설 같은 판매량을 기록한 제품이니 봉이지요.” 선달은 닭인 줄 알면서도 모른 척,“ 그렇군요 봉이군요” 했다.
며칠 후, 사장님이 잠깐 순시를 나왔고 선달 군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장님 앞으로 달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오~ 장래가 반짝반짝 우리 회사의 빌링을 높여줄 말발 끝내 주는 선달 군, 많이 잘 지내나. 오늘 점심은 입사 기념으로 내가 사겠네. 뭘 먹고 싶은가?“선달은 사무실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대답했다.“ 사장님, 저는 봉이 먹고 싶습니다!!”
‘아니, 이 친구가 일이 과했나. 아니, 정 팀장 신입들 야근 좀 시키지 말랬지. 얘마저 힘들다고 나가버리면 더 뽑을 사람도 없다고.’ 사장님은 속으로 절규했다. 그렇다. 선달이 치열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단박에 광고店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월화수목금금금… 이 계속되는 이곳은 밤중에 일하다 가방 놔두고 휙 도망가는 직원들이 많다.
사장은 선달마저 도망가는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선달의 능력을 봐서 그럴 것이란 생각은 오해다. 단지, 새로운 사람을 뽑기 위해 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접을 보는 일이 귀찮을 뿐이다.
‘일단 먹이면서 달래봐야겠군~.’ 달아나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은 사장은 다시 물었다.“ 뭘 좋아하는가?”“ 봉이요!”‘ 봉이라니, 봉이라니, 미쳤나’라는 말을 속으로 꼭꼭 씹어 삼킨 후 다시 물었다.“ 뭘 먹고…”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들려온“ 봉이요!” 사무실 천정에 달라붙을 듯한 정신을 다시 붙잡아 내렸다.‘ 사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포커페이스! 포커페이스! 그래 봉을 사주지.’“ 그런데 봉은 어디서 파나?” 또 물었다.
선달은 옆 팀으로 쪼르르 달려가 광고시안을 가져왔다.“ 이 봉을 먹고 싶습니다. 회사 앞에도 있습니다.” 그건 튀긴 닭 광고.“ 아니 그게 어찌 봉인가, 튀긴 닭 아닌가.”“ 아닙니다. 선배님이 봉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봉입니다. 저는 이 봉을 꼭 먹고 싶습니다.” 사장은 선달에게 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튀긴 닭을 거하게 냈다.
분위기 상 선달이 알면서 일부러 그랬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튀긴 닭 팀의 선배는 팀장에게 호되게 혼이 났고, 그 이후 선달은 봉이라는 애칭을 얻게 됐다. 속칭‘ 봉이 김 선달.’ 이때는 아무도 몰랐다. 선달의 이런 사기적인 능력은 일취월장하여 광고주 앞에서 큰 빛을 발하며 앞으로 광고계의 전설이 될 줄을….
글은 내 적성이 아니다
글발과 말발은 엄연히 다른 법.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광고 글을 쓰는 것은 고문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을 넘어 한 달 내내 글만 쓰니 힘들다. 정확히 말하면 책상에 얌전히 앉아 있는 일이 힘들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즐기며, 수다로 스트레스도 풀고 싶다.
비가 오면 정자에 앉아 한 잔 술로 누리는 고즈넉함이 절실하다. 그러나‘음주 글 쓰기’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옛 선배들은 음주 글쓰기에 능했다지만 요즘은 아니올시오다. 그러다가 오자라도 나면 뒷감당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선달인가. 잠깐 검은 콩차를 사러 간다고 나가 실컷 놀다 오는 일이 다반사. 선달의 팀장은 기강을 잡아야겠다고 벼르지만, 누군가. 사장님을 들었다 놨다 한 김 선달이다.
봉이 김 선달에게 첫 번째 봉은 팀장이요, 두 번째 봉은 튀긴 닭 팀 선배다. 살살 웃으며…. 아니 다 큰 남정네가 살살 웃으며 다가오면 무섭다. 보통 사람도 그러한데 선달이 그러면 어떻겠는가.
“팀장님, 오늘 점심은 저기 저 한강변의 맛집으로 소문난 을미냉면이 어떨까요~.” 고개를 바로 앞에 들이밀며 코맹맹이 소리로 달라붙는 선달.
그래 가자, 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떨어지질 않는다. 처음엔 귀여워서, 다음엔 이러다 말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화를 불렀다. 마음 여린 팀장은 선달의 공세에 늘 봉이 되고 만다.
두 번째 봉은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케이스다. 튀긴 닭을 봉이라고 했으니…. 선달이“ 선배님, 오늘은 봉이 땡기는 데요” 하면 자동이다.
선달, 한 번 물면 놓치지 않는다. 끈질기게 물로 늘어지는 dog님이다.
봉이 둘이나 있는 곳은 좋지만, 광고 글쓰기는 영 적성이 아닌 김 선달. 외근도 술자리도 많은 기획부를 노린다. 팀장에게 농담처럼 술 실컷 마시는 기획부로 보내달라고 말도 한다. 팀장님은‘ 아니 저 녀석이 또 뭔 일을 저지르려고 그러나’ 노심초사. 한편으로는 마음 편하게 기획부로 던져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상상을 하며….
광고店을 내다
본인의 사기적인 능력을 십분 발휘해 깔끔하게 기획부로 옮긴 지 어언 10년. 선달은 기획부 2팀의 팀장이 됐다. 위대한 말발과 사기적인 잔머리,찬란한 음주가무 실력은 일취월장. 지금 다니는 광고店이 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각종 형식적인 회의는 숨이 턱턱 막힌다. 그저 그런 애들이 쭉쭉 잘나가는 것도 꼴 보기 싫다. 마포나룻가 맛집에서 육개장 칼국수를 먹다 뛰쳐나온 그는 사표를 던졌다. 아주 쿨하게~.
그리고 한동안 건달의 길로 들어섰다. 하루하루를 할 일없이 돌아다니는 건달처럼 보내던 그가 명동에 광고店을 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광고를 잘 만드는 광고店’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창업비용이 어디서 났을까 심히 궁금해진다. 음주가무 좋아하는 그가 돈을 모았을 리는 없을 것. 회사 사장 자리 서랍을 몰래 들여다보니, 아하~ 알겠다. 선달의 잔머리에 넘어간 투자자와 말발에 혹한 은행이 뒷배였다.
천하의 선달도 광고는 어렵다
간판만 내건다고 일이 들어오진 않는다. 인맥과 말발로 소소한 일은 꽤 되지만, 돈이 되는 큰 건은 영 인연이 안 닿는다. 선달의 말발과 잔머리의 한계이다. 딱 그 수준에서 일이 된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선달도 아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닌 끝에 연간 100억 광고주를 하나 물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100억 광고주의 경쟁PT에 들어가게 됐다. 품목은 대동강 물을 담은 병물이다. 좋은 일이 들어올 리가 없다. 선달은 한숨이 길어진다. 이유는 대한민국의 물 사정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의 유명한 청정국가다. 사계절 자연의 풍광이 아름다고 수려하기로 유명해 항상 관광객이 넘쳐난다. 들어오길 원하는 관광객이 많아 순번표를 인터넷으로 나누어줄 정도다. 물은 어떤가. 전국의 강물은 맑디맑아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강에서는 지나가던 행인이 손으로 물을 떠 갈증을 푼다.
마을 곳곳을 흐르는 시냇물도 그렇다. 게다가 물이 풍족해 농사는 늘 풍년이다. 술맛도 좋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강물을 담아 판다니, 말도 안된다. 아무리 사기적인 능력이 출중한 선달도 병물 광고는 어려웠다.
그는 경쟁 PT날, 태어나 처음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했다.“ 이 제품은 안 팔립니다. 그러니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쫓겨났다. 오호 통재라,처음으로 진실을 말했건만 돌아온 건 낭패 뿐이다.
물은 이렇게 파는 거다
대동강 병물은 런칭은 됐지만 선달의 말대로 망했다.
그 후 올바른 말을 한 선달의 소문을 들은 광고주들이 하나둘 광고를 맡기기 시작하며 회사는 안정되게 커졌다. 하지만 선달은 만족할 수 없었다. 대동강 병물은 그에게 흑역사이다. 그는‘ 광고는 마케팅이고, 마케팅은 장사다, 고로 광고는 장사다’라는 자기만의 삼단논법을 만들었다. 바로 대동강으로 차를 몰아갔다. 대동강 가에서 차에 물을 싣고 가는‘ 물 장사’들을 보았다. 물을 직접 길러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물을 갔다주고 운반비를 받는 치들이다. 선달은 물 장사들에게“ 돈을 나눠줄 테니 물을 길어갈 때마다 내게 돈을 내라”고 했다. 물론 수고비와 선달에게 줄 돈을 다 챙겨주었다. 물 장사들은 선달의 말대로 물을 길어갈 때마다 돈을 주었고, 대동강의 주인이 김 선달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굴지의 맥주공장을 운영하던 한주량 사장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대동강으로 출동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믿기지 않지만 물장사들은 선달에게 돈을 내고 있었다. 한주량 사장은 선달에게 비싼 값을 치르고 대동강을 샀다. 어허, 강이 개인 것인가. 강이 얼마나 큰가. 선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잔머리로 대동강을 팔았다. 그리고 대동강 병물을 팔았던 회사를 생각하며 웃음을 날렸다.
‘자네들, 마케팅은 이렇게 하는 걸세!’
김 선달은 결국 영원한 광고인으로 남지 못했지만 광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광고는 4대 매체만이 아니다. 광고는 마케팅이고, 마케팅은 장사다. 고로 광고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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