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8 : 근대의 시간으로 멈추어져 있는 곳, 박노수 미술관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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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시간으로 멈추어져 있는 곳, 박노수 미술관

 

구 선 아 | BTL프로모션팀 대리 | koosuna@hsad.co.kr

 

 

 

 

 

 

 

 

 

 

 

 

 

 

 

 

 

요즘 ‘핫’하다는 서촌에는 알게 모르게 숨어있는 곳이 참 많다.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던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를 한 접시 하고, 수제비누 만드는 집을 지나 수성동 계곡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한옥과 양옥의 중간 지점 어딘가, 동양과 서양 어딘가에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하얀 대문의 가옥 한 채를 발견할 수 있다. 2013년 9월 공개됐지만, 요즘 언론을 타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곳, 바로 ‘박노수 미술관’이다. 한국화가 남정(藍丁) 박노수 화백은 배우 이민정의 외할아버지로도 알려져 관심을 받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과 유품들이 종로구에 기증되면서 만들어진 박노수 미술관은 일제강점기 때 건축가 박길룡이 지은 집으로, 조선 말기의 한옥 양식과 중국식, 그리고 서양 (양옥) 양식이 섞여 있는 절충식 가옥에 꾸며졌다. 여러 양식과 기법이 혼용되어 지어져서인지 고즈넉하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조선 후기 친일파였던 문신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1938년 지은 집으로, 1972년부터 박노수 화백이 소유했는데, 생전 40여 년간 지내며 2층 화장실 등 일부 증축을 제외하면 원형이 잘 남아있다.

 

그냥 이대로 좋을 시간과 공간
미술관 내부로 들어설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건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쓰신 현액 때문일까? ‘여의륜(如意輪)’이라 쓰인 현액은 불자들에게는 익숙한 단어라 하는데, 천수경에 있는 관세음보살의 명호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며 소원을 이루어 주는 관음’을 말하는 것이란다. 아마 추사도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 모두 소원을 이루라는 의미에서 쓰지 않았을까. 나의 소원도 이루어지길 바라며 신발을 벗고 내부에 들어섰다. 살짝 삐걱거리는 목재 바닥과 나무로 만든 창틀과 양문 여닫이문들, 그리고 고가구들과 벽난로까지, 족히 80년은 시간을 거슬러 멈춰진 기분이다. 이 가옥은 벽돌로 지어진 2층 집으로, 1층은 온돌과 마루로 구성돼 있고 2층은 마루방 구조이며 다락방이 있다. 또한 1층 아래 반지하처럼 큰 마루방 같은 실이 별도로 구성돼 있는데, 아쉽게도 출입이 통제돼 있어 외부에서 창을 통해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숨어 있던 장소들이 공개되고 언론과 대중에게 알려지면 그 부근은 처음엔 작고 예쁜 커피집들과 아기자기한 음식점과 소품집들이 들어서다가 결국엔 대형 커피전문점과 프랜차이즈 음식점들로 뒤덮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곳이 인사동이나 삼청동·북촌처럼 ‘문화’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지 않길 바라며 삐걱거리는 다락방에 다시 들어가 몰래 앉아 작은 창틈으로 인왕산 아래 자락을 훔쳐보았다. 이 빡빡한 자본사회의 톱니바퀴 속 한두 군데쯤은 이 미술관처럼 시간이 멈추어진 곳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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