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8 : 내겐 너무 야한 브라질 월드컵이여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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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야한 브라질 월드컵이여

 

정 현 진 | 브랜드액티베이션2팀 대리 | cristalzzang@hsad.co.kr

 

전반전 - 2014년 6월, 달콤 살벌한 13일 밤의 금요일
Ola Brazil! 정열의 나라 브라질,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 3일이 다 지나간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대망의 월드컵이 제니퍼 로페즈의 반쯤 파인 반짝이 의상과 함께 개막했다. 네이마르와 니시무라 심판의 기막힌 연출로 개막전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곳 브라질은 그 열기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못지않다.  소싯적 내 기억 속 몽타주를 형성하고 있는 ‘브라질’은 간신히 달라 붙어있는 반짝이는 브라와, 열성적으로 흔들어대는 브라질 여성들의 히프와 허리의 도발적 향연, 이것이 삼바라는 축제로 승화돼 어린 시절 내 눈을 휘둥그레 사로잡으며 생생하게 내 마음을 점령한, 남미 최고의 나라로 기억된다.굉장히 겁나는 6월의 13일의 밤을 무수히 흘려보내고 나니, 어느덧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의 일원이 되어 브라질 출장을 명받고, 인천에서 나성을 지나 상파울루를 거치고 지금 아마존의 중심, 마나우스라는 도시에서 시차적응에 실패한 채 무시무시한 13일의 금요일 밤을 호텔 방에서 혼자 뒤척이고 있다.  이곳 브라질은 현재 축제와 시위가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마나우스에서만큼은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힘든 일이 있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거나, 감사한 일이 있으면, 그저 엄지손가락을 하늘로 올리면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다. 90년대 한국의 브라운관을 지배했던 ‘따봉’은 여전히 진짜다.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에어컨이 없는 버스,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들어앉은 사람들의 모습은 애처롭지만, 노인을 배려하는 미덕을 만나거나 거의 쓰러져 가는 유채색 건물에 손자와 할머니, 개와 동네 주민이 어우러져 정답게 노니는 모습이 보일 때는, 양보와 다정함은 멸종한 채 아파트라는 고급 닭장 속에서 치열하고 독하게만 살아야 하는 서울 시민의 모습이 무섭게 오버랩되어 서글프게 느껴진다. 나 어릴 적, 평상 위에서 할머니와 아버지는 동네 사람 모아 놓고 즐겁게 술 한잔 하시며 자식 자랑하던 날이 있었는데….
아마존강을 흘겨보는 나, 과거에 품었던 눈물겨운 따뜻한 감정만은 변치 않고 살아간다면 아마존 강물처럼 언젠가는 꿋꿋하고 떳떳하게 더 넓은 대서양으로 내 꿈의 물길을 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을 생각하며,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본다. 왠지 섬뜩하지만, 따봉!

 

후반전 - 2014년 6월, 우리들의 민망한 20일의 밤
아마존의 중심 마나우스에서 브라질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나타우로 이동한 지 이틀. 후텁지근한 날씨와 매우 설티(Salty)한 음식 때문인지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배가 으르렁 으르렁~ 그렇게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나타우 적응기는 시작됐다.
그런데 참 슬픈 건, 성가신 출장이나 혼자만의 고독한 여행이나 연인과의 달콤한 여행이나 모두 되돌아보면,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이 귀국 후 단 1주일만에 어느새 신기루가 되어 내 기억 속에서 깨끗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확실히, 기억은 시간이라는 덫에 약한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비디오는 용량이 너무 많이 나온다) 이 순간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나의 참된 욕구는 지속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비록 그것이 온 힘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해내야 하는 출장일지라도….
지난 7일간의 시간은 말 그대로 꿈같이 지나갔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도 그렇거니와, 함께 지낸 키 2미터, 몸무게 150킬로그램의 거구 진행요원 수레쉬부터 시작해,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나의 포르투갈 선생님이 된 버스 드라이버 아저씨, 일사불란하던 영국 손님들과 자유분방하던 이탈리아 손님들, 그리고 리우에서 다시 만나게 될 협력업체 전무님…. 모두가 그 꿈의 주연들이었다. 결국 남는 건 사진과 사람뿐이구나!

 

 

 

연장전 - 2014년 6월, 가질 수 없는 24일의 밤
리우 데 자네이루는 대도시다. “서울은 말이야,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 조심해라”고 아직도 내게 조언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여기서는 쉬이 거역할 수가 없다. 지나친 안심은 방심이 되고, 지나친 방심은 내 낭심을 언제 훑고 지나칠지 모른다. 다행히도 2미터의 경호요원들은 나를 참 좋아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땀 뻘뻘 흘리며 사람들을 인솔하는 내 모습이 그들 눈엔 재미있게 느껴지나 보다. 사실 나의 ‘브라질 생존기’는 간단하다. 계획대로 일이 풀리면 13일의 금요일 밤에 거울보고 연습한 대로 엄지손가락 치켜들며 따봉을 외치면 되고,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나 민망한 20일의 밤 같은 때에는 민망하지 않은 척 으르렁거리다보면 알리바바의 마술처럼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린다. 그렇게 연습했던 나의 미션들이 이제 끝나가고, 내일이면 이곳과 작별이다. 때마침, 브라질의 예선 마지막 경기가 열린다. 경기가 시작되면 브라질은 유령 도시가 된다. 거리엔 차도 사람도 없다. 축구가 종교라는 브라질, 맞다. 한 골 한 골 들어갈 때마다 나는 행복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나를 안아주고 만져주니! 내 기억 속 브라질은 굉장히 야한 곳이었는데, 지금 내가 있는 현실 속의 브라질도 여전히 내겐 미치도록 행복한, 그런 야한 곳이다. (이날 브라질은 카메룬을 4-1로 대파했다).
500여 년 전, 유럽으로 건너온 야만인들은 이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에게 무서운 전염병을 남겨주고, 민망하게도 자기들끼리 토르데시아스 협정을 맺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그 외의 남미 국가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제 브라질 친구들은 과거의 역사를 한켠에 남겨둔 채 서로가 하나 되어 자신의 삶터를 응원하면서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즐기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그들과 일원이 됐다는 사실이 뿌듯하면서도, 앞으로 다시는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지금의 순간이 슬퍼지기도 한다. 자, 이제 모든 기억들을 달콤한 슈가 바위에 묻어두고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향하는 타임머신 속에 내 몸을 싣게 된다. 내가 겪은 모든 것들이 분명 거짓이 아니었으니,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섭지도 민망하지도 않은 날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시간이라는 고약한 덫에 걸려 모든 것이 내 것이 되지 않더라도, 지금 이곳에 내 감정을 기록해 놓는다면 필시 내가 두렵고 민망할 때 든든한 피와 살이 되어 나의 가는 길에 든든한 등대가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맙다, 내겐 야한 브라질이여! Obrigado Braz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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