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8 : ‘어떻게 쓸 것인가’가 ‘어떻게 살 것인가’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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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쓸 것인가’가  어떻게 살 것인가’다

 

김 진 원 | ACD | jwkim@hsad.co.kr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비슷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라는 에세이집에서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글을 쓴다는 게 ‘여자에게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 어떻게 싸움을 할 것인가’와 같은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과 같더라는…. 그런데 내가 처음 이 구절을 어디선가(아마도 어떤 블로그였을 듯) 봤을 때 해석한 것은 ‘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다’로 읽혔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래, 자본주의사회는 어떻게 쓰는가가 그 사람의 삶을 규정하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실 꽤 많은 곳에 이미 영감을 주고 있는 듯하다.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책은 정신이라는 작가(카피라이터이기도 하다)가 무언가를 산 그날의 영수증에 마치 일기처럼 그날의 감상을 써놓는 걸 엮은 것이다. 또 얼마 전 팀 전체가 관람한 서울시립미술관의 <오작동 라이브러리>라는 전시에서 비슷한 걸 발견했다. SASA[44]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이런 식이다. <연례보고 2006(Annual Report 2006)> ‘2006년 한 해 동안 SASA[44]는 설렁탕을 52그릇, 짜장면을 84그릇 먹었고, 교통카드를 235회 사용했고, 서울 시내 극장에서 영화를 220편 보았고, 교보문고에서 책을 258권 구입했고, 휴대전화로 1,061건의 전화를 걸었고, 각종 공공기관에서 총 196명이 먼저 용무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볼일을 보았고, 출퇴근 기록기로 1,083건의 작업실 출입기록을 얻어냈다.’ 그러고는 각종 신용카드 내역·영수증·티켓·대기번호 접수표 등을 첨부한다. 이 모든 데이터는 통계그래프화되어 그의 삶을 ‘연례보고’한다.

 

25일, ‘프로젝트 희로애락 명세서’를 받을 수는 없을까

하지만 굳이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우린 우리 삶을 매달 읽을 수 있다. 달마다 25일이 되면 월급이 입금됨과 동시에 신용카드회사가 출금해간다. 내가 비록 셜록은 아니지만, 그 내역서를 들여다보면 이달의 나의 희로애락이 읽힌다. 똑같이 술값으로 카드를 긁어도 그 술값이 우울함의 값이었는지, PT 승리 후의 달콤함의 값이었는지에 따라 달리 읽힌다. 그래서 영리한 한 카드회사는 실컷 데이트 비용을 나열한 다음, 사랑하는 그녀의 미소 ‘프라이스리스(Priceless)’라는 식으로 소비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돈의 쓰임새를 보면 삶의 모양새가 보인다. 같은 돈을 가지고 누군가는 차를 꾸미는 데 쓰고 누군가는 술을 먹는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저축을 한다. 누군가는 멋진 옷을 사고 누군가는 멋진 공연을 본다. 돈을 쓰는 곳을 보면 취미가 보이고 가치관이 보이고 삶이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니, 단돈 한푼도 왠지 쓰기 조심스러워진다. 담뱃값으로 나가는 돈을 보니 건강이 걱정스러워지고, 고기 일색의 식당들에 지불된 내역을 보니 내 뱃살이 당연해 보인다. 아… 돈을 잘 써야겠다. 그래야 잘 살아갈 테니. 그런데 월급 명세서에서는 왜 우리가 일한 땀과 고단함과 보람은 읽히지 않을까? 월급에 프로젝트의 희로애락이 적힌다면, 그리고 그 가치가 온전하게 매겨져 지급된다면 우린 틀림없이 좀 더 행복해질 텐데. 그래서 내용이 없는 숫자는 재미없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