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8 :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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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 승 환 | CD | leegut@hsad.co.kr

 

 


인천에서 칸으로 가는 승객이 많아졌지만 직항은 아직도 생기지 않았고, 독일에서의 트랜스를 포함한 13시간의 비행은 여전히 힘들었다. 비행기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루프탄자의 이코노미 좌석은 여전히 비좁았고 7시간의 시차는 몸과 마음을 녹초로 만들었다. 성인이 된 동성에게 한 방을 나눠 쓰라는 2인 1실의 방 배정은 유럽인들에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왜 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내면서 처음 보는 아저씨와 화장실에 샤워실까지 함께 써야 하는지도 여전히 의문이었다.

메인 행사장은 변함없이 팔레 드 페스티벌 홀(The Palais des Festivals)이었다. 97개 국가에서 17개 부문 총 37,427편을 출품한 61번째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의 명성은 여전했으며, 한국은 300편을 출품하며 칸에서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열리는 세미나와 포럼, 워크숍은 여전히 비영어권 국가 참관인들의 언어에 대한 배려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영어 짧은 아시아인들 대다수가 열정적으로 출석부를 찍었다. 세미나 도중 터지는 서양식 농담에 영어권 참관인들은 즉각 반응했지만, 우리는 2, 3초 정도가 지난 후에야 어색하게 따라 웃는, 웃을 수 없는 과정들도 똑같이 반복됐다.

수상으로 보자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소기의 성과만 챙겼으며 아직도 주요 부문에서의 수상은 요원해 보였다. 아시아 국가 중 탁월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일본은 아시아의 자존심이기보다는 탈아시아를 꿈꾸는 모습이 역력했다. 동의가 안 되는 수상작들도 많았지만 로컬적인 정서를 초월한 몇몇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여전히 4~5개의 카테고리를 망라하며 칸의 트로피를 휩쓸었고, 다양한 국가의 참관인들로부터 아낌없는 호평을 받았다.

하루의 일정이 끝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글로벌 대행사와 유럽의 프로덕션들이 주최하는 파티가 열렸고 대한민국의 대행사가 주최한 오프닝과 갈라파티는 그 중에서도 단연 화려했다. 서양의 참관인들은 글로벌 광고인들과의 인맥 쌓기에 열중했고, 우리는 다 마신 술잔을 쌓아 올리는 데 열중하는 듯했다. 해장국 집은 따로 없었고, 칸의 해산물은 여전히 혀가 쓰릴 정도로 짰다. 내가 경험했던 2008년의 칸과 2014년의 칸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목적은 올해의 칸을 돌아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아이디어 트렌드의 변화를 감지해 다음해의 칸을 준비하고 승리의 공식을 짜 맞추는 척후 보고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디어 테크놀로지’나 ‘광고의 미래’ 같은 주제를 정하고 페스티벌 내내 새로운 매체나 신기한 테크놀로지 같은,


그야말로 ‘변화의 징후’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굴렸다. IT나 SNS, 스마트라는 말조차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그 자체로 광고 아이디어가 되는 현상들을 조명해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광고의 법칙을 훌륭하게 답습한 ‘볼보의 바이럴’과 ‘하비 니콜스의 전방위 캠페인’들이(뒤에 자세히 소개하겠다) 칸의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을 보고는 내가 쓰려는 주제가 다소 지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하자면 ‘테크놀로지’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크리에이터라 자부하는 광고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하루만 지나면 다 옛 것이 되어버리는 시대에 이미 지나간 트렌드를 분석해 다음해의 트렌드를 대비한다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변화와 트렌드가 ‘정곡’이 아닐 수도 있음을, 우리가 찾아야 할 것들은 오히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기본적인 것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도 이 두 캠페인들을 보고 난 후였다.

 

모든 것은 변하는가?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이 변해야만 했다.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광고계는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본질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변화, 새로움, 트렌드라는 단어에 집착해 광고의 본질이나 광고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기초적인 과제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1963년 미국의 마케팅 협회는 ‘광고란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광고주가 하는 일체의 유료형태에 의한 아이디어, 상품 또는 서비스의 비대개인적(非對個人的: Nonpersonal) 정보제공 또는 판촉활동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우리는 여기서 ‘유료’와 ‘판촉활동’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단어들은 ‘선전’과 ‘예술’로부터 광고를 명확하게 구분 짓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광고의 ‘효과’라는 말이다. 우리는 광고 행위를 함에 있어서 이 본질적인 단어들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국제 광고제라는 호화로운 단어에 빠져 ‘선전’과 ‘예술’에 치우치지는 않았을까? 혹시 예술가처럼 그림에 탐닉하거나 그들만의 서양식 농담을 따라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아이디어라는 말을 표현의 차별 정도로 해석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좇다가 인간과 소비자의 손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가? 출품 비디오의 완성도와 수상을 위한 족보들, 심사위원들의 성향 파악은 과연 지속적인 칸의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가? 2014년 칸 라이언즈의 주목할 만한 수상작들은 이 물음에 답하고 있다.        

하나, 제품을 팔았는가
우리가 내는 아이디어(광고제 수상을 위한)들은 대부분 전략에 대한 고민보다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품의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친다. 아니면 요즘 ‘트렌드’인 후진국을 도울 수 있는 아이디어나 기부 같은 공익광고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제품
의 판매에 관한 아이디어를 찾기가 힘들다. 광고로 제품을 파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도 있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 일본의 하쿠호도가 만든 ‘라이스 코드’는 그 경계에 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절히 활용한 광고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광고란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과제를 충실히 이행한 광고로 기억에 남아 있다.

 

 

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여기 작은 패션 브랜드가 있다. 당연히 글로벌 광고를 할 수 있는 비용이 문제일 것이다. WREN이라는 미국의 패션 브랜드는 처음 보는 사람과의 키스라는 획기
적인 바이럴을 통해 최소의 비용으로 전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유튜브에서만 8,6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따져보면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소규모 브랜드다. 소위 글로벌 기업이라는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될까? 비용이 문제라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광고인이 할 일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
할 때 우리는 그저 컨셉트 아티스트나 아이디어 공급자가 아닌 브랜드 파트너로서의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셋, 인사이트인가
‘인사이트’가 단순히 ‘공감’이라고 해석될 때 아이디어는 약해진다. 사실 광고에서의 ‘인사이트’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것, 하지만 듣고 나면 모두가 무릎을 치며 동의하는 공감의 발견을 말한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HARVEY NICHOLS의 ‘Sorry, I spent it on myself’ 캠페인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남을 위한 선물이 아닌 한해 동안 고생한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는 메시지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우리의 정서에서는 다소 과감할 수 있는 이 캠페인은 하지만 필름 부문을 포함해 총 4개 부문의 그랑프리를 휩쓸며 칸 역대 2번째로 많은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SNS와 스마트 IT가 아무리 판을 쳐도 강력한 인사이트 한방을 이길 순 없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사례라고 본다.

 

 

넷, 사람과 닿아있는가
‘핵심은 효율성을 위한 테크놀로지의 활용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감성을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어떤 CD가 말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Thank you mom’이라는 심금을 울리는 캠페인 한방으로 주부들을 열렬한 팬으로 만들어버린 P&G가 2014년 소치 올림픽이 시작되자 다시 한번 ‘Pick them back up’이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엄마들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켰다. P&G는 이 일련의 캠페인들을 통해 브랜드를 가장 강력하게 만들었으며 하나의 컨셉트로 지속적인 칸의 지배자가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성을 창조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수상의 기준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다섯, 강력한가
광고 제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임팩트’다.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심플’이라는 말을 하고,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고도 하고, 때로 더 좋은 효과를 내기 위해 ‘빅모델’을 쓰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표현된 것이 바로 볼보의 바이럴이다. USP 하나만을 전달하고, 다르게 표현했다. 그리고 빅모델은 이렇게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광고는 직관적이다. 이 바이럴은 유튜브에 올라온 즉시 베스트 클릭이 되었고, 수많은 패러디가 만들어졌다. 볼보는 전통적인 광고가 가장 강력하며, 강력한 광고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섯, 행동하게 하는가.

 

 

기부와 공익 아이디어는 요즘 칸에서 (너무)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르다.‘기부하자’에서 그치지 않고 사용자 체험을 통해 직접 기부를 하게 한다. 게다가 현금보다 신용카드를 주로 쓰는 시대에 맞게 기부의 방식을 바꾼 것도 큰 성과다. 독일의 비영리단체 ‘MISEREOR’에서 진행한 ‘The Social Swipe’ 캠페인은 신용카드로 디지털 스크린을 긁으면 식빵이 잘리거나, 손목의 포박이 풀리며 자동적으로 2유로가 기부된다. 독일 국제공항에 설치되었던 이 프로모션은 진행 후 한 달 만에 3,000유로가 기부되었고, 전년대비 23%가 넘는 기부 건수를 기록했다.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연설보다 사람들을 전쟁터로 나아가게 하는 연설이 훨씬 강력하다는 것, 광고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온고지신
인생을 살아보면 뻔한 말들이 진리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변화’와 ‘테크놀로지’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광고산업을 풍요롭게 하고 변화하는 트렌드들은 크리에이티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내가) 너무나 쉽게 건너뛰게 되는 기본들, 더 높은 성을 짓기 위해 꼭 필요한 반석이 빠진 새로움은 공허하고 빈약해 보이기에 이 글을 쓴다. 우리는 계속해서 칸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칸의 수상이 광고 전반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칸 또한 아직은 우리를 주류로 인정해 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칸의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하는 이유는 한국 광고계의 마켓 지형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의 클라이언트들, 즉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국내광고의 내수 시장도 포화상태에 이르러 대행사의 글로벌 진출은 이제 살 길이 되었다. 칸의 수상이 더 이상 광고인 개인의 자부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행사의 지속을 위한 필수요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초조해 보인다. ‘빨리 빨리’로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처럼 칸의 기적을 이루려는 모습에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이래서는 한국축구처럼 시간과 투자가 있었음에도 꿈만 꾸다 점진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했던 과오를 답습할 수 있다. 한발 한발 나아가자. 옛 것을 딛고 변화와 트렌드를 익혀나가자. 그것만이 다가오는 칸의 수상을 위한 유일한 비법이며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끄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 글은 나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과는 다르게 2015년에는 모든 것이 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변화의 선두에는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는 나의 선배님들, 후배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면 좋겠다. 건투를 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