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으로 무심코 뉴스를 검색하다가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했었는데요. 오랜기간 SNS에 쌓아 놓은 수많은 사진과 글을 한꺼번에 모아서 다른 SNS로 옮겨주는 서비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디지털 콘텐츠 포장이사’ 서비스라고 할 수 있었는데, 사업적 성공은 차치하고라도 그 개념만큼은 아마도 저뿐
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브스쿨이나 프리챌 같은 1세대 SNS가 저물어간 지도 벌써 오래됐습니다. 작년 2월 공식적으로 프리챌 커뮤니티 서비스가 종료되기 전, 관련 기사를 읽고 프리챌을 찾은 대다수 네티즌들의 목적은 ‘잊고 지내던 추억을 수습하기 위해 서’였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프리챌 접속은 마치 오래 비워둔 집을 찾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겠죠.
‘또 다른 집짓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IT산업에 영원한 강자는 없는 듯합니다. 야후코리아가 문을 닫았던 충격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고, 싸이월드 또한 예전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시기에 와 있습니다. 지금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는 인터넷 서비스라고 할지라도 시장의 변화에 뒤쳐지면 한 순간에 시대의 저편으로 몰락해버릴 수 있습니다. 기술발달과 시장의 변화야 그렇다 하더라도,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 개인의 기록을 축적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서비스 종료가 두려워 모든 자료는 개인 컴퓨터에만 저장한 채 살아야 할까요? 일기 같은 글조차도 다른 사람의 ‘좋아요’를 받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현대인인데 말입니다. 결국 디지털 포장이사를 생각해야 할 만큼 나의 인터넷 세상 속 집은 너무나 다양해지고 보편화됐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아니라 기업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문제는 조금 달라집니다. 기업의 인터넷 집짓기 목적은 대부분 ‘소비자와의 만남’입니다. 소비자와 만날 수 없는, 종료된 서비스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없습니다. 자사의 전용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를 가공하고 게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콘텐츠 제작 관행 상 데이터 소멸의 우려도 거의 없습니다. 기업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과연 이곳이 집을 지을 만한 가치가 있는 터냐’ 하는 것입니다. 즉 대중이 모인 인터넷 플랫폼이냐 하는 판단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1990년대 말 PC통신에서 진화한 인터넷이 폭발하던 시대, 느닷없이 사이버 공간에 처음 집을 지어야 하는 처지에 봉착한 사람과 기업들은 너도나도 홈페이지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 헤맸습니다. 덕분에 무료로 홈페이지를 제작해 주는 사이트가 유행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청춘스타 중 한 명이었던 채림이 광고했던 하이홈 광고가 기억나네요. 채림이 얼굴에 점을 찍고 나와(어떤 드라마가 생각나는군요)“ 채림쩜 하이 홈 쩜컴!” 하던 광고 말입니다. 90년대 말 대부분의 해외 사이트는 다 Geocities라는 url을 가지고 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검색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터넷 상에 집을 짓지 않는 기업은 없지만, 당시엔 과연 굴뚝산업 기업에게 홈페이지가 필요할까 라는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끝난 후 홈페이지 제작업체에게는 다시없을 호황이 찾아왔습니다. 인터넷에 대한 대중 플랫폼으로서의 검증이 완료된 것이지요.
그후 10년이 흐르고, 인터넷 상에서도 단순 홈페이지를 넘어선 다양한 플랫폼들이 새로이 등장하고 또 사라져 갔습니다. 그리고 2010년을 전후해 다시 SNS가 대중 플랫폼으로서의 검증을 끝낸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폭발적 증가에 맞물려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사용은 인터넷 사용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켰습니다. 대세가 되어버린 SNS는 기업들에게 홈페이지가 아닌 ‘또 다른 집짓기’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늘어나는 SNS, 기업에게는 골칫거리일까요?
2014년 현재, 국내 100대 기업 중 페이스북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70%가 넘습니다. 트위터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기업도 절반을 넘어갑니다. 글로벌 100대 기업을 살펴보면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채널을 모두 보유한 업체가 70%를 상회합니다. 플리커·인스타그램·링크드인·구글플러스·핀터레스트·텀블러 등의 SNS 채널을 개설한 업체들도 눈에 띕니다. 다수의 고객이 존재하는 곳에 기업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대중이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 활성화가 돼야만 해당 SNS가 대중적 채널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일까요? SNS 채널 하나를 운영하는 데에는 매달 적게는 몇백 만 원, 많게는 몇 억 원의 비용이 듭니다. 이윤의 추구가 존재 이유인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만한 비용에 응당한 이득이 얻어져야 합니다.
인터넷이 비즈니스 자체인 기업에게는 홈페이지 회원이 곧 수익이며, 페이스북 팬(Fan) 수가 곧 수익입니다. 이커머스(eCommerce)를 주 판매 툴로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유형의 물건을 팔아야 하는 대부분의 일반기업에게 있어서 회원 수나 팬 수는 매출로 연계되는 고리가 입증되지 못한 애매한 지표일 뿐입니다.
이들에게 있어 회원이나 팬의 모집은 이제 겨우 다음 이야기를 하기 위한 청중을 모으는 단계까지 온 것입니다. 인터넷 초창기, 홈페이지 방문자 수나 회원 수 확보를 목표로 한 수많은 기업들이 봉착한 예상치 못했던 문제는 ‘모아 놓은 회원을 가지고 무엇을 하지?’ 하는 문제였습니다. 특히 시장규모가 작고 공중파 광고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국의 경우에는 CRM 개념이 거의 발달돼 있지 않았습니다. 모인 회원들을 분류하고 타깃팅된 홍보를 하자니 기대 매출보다 제작비가 상회하는 결과가 벌어졌습니다. 결국 당시의 온라인 프로모션은 이벤트를 위한 이벤트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아놓은 회원정보를 버리고 새로운 회원모집 이벤트를 하는 웃지못할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이런 기업들에게 있어 늘어가는 SNS는 어떻게 보면 마케팅 비용을 추가로 소진시키는 골칫거리가 돼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대응은 해야겠고, 전문인력을 뽑자니 비용이 걱정되고, 저렴한 외주 운영사에 맡기자니 소비자와의 깊이 있는 대화는 불가능하고….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고객과의 소통, 특히 SNS를 통해 성공한 마케팅 사례는 대부분 기업 구성원들이 직접 고객과 만난 경우입니다. 멀게는 세스코의 게시판 커뮤니케이션 성공사례에서부터 트위터를 이용한 판매방식을 개발한 고기(Kogi) BBQ나 네이키드피자(Naked Pizza), 페이스북 전담팀을 확충해 기사회생한 스타벅스의 사례까지 모두 운영대행사를 통하지 않고 기업 스스로 고객과의 스킨십을 진행한 케이스입니다.
실제 세상에서도 우리는 제품에 대해 잘 아는 제조사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때 더욱 신뢰감이 생기지 않나요? 동네 카페에서도 아르바이트생이나 예쁜 도우미의 홍보 멘트보다 커피에 대해 잘 아는 주인이 직접 내려준 커피를 더 좋아하는 것이 현대의 소비자들입니다. 더구나 소비자와의 거리가 호흡이 닿을 듯 가까워져 있는 SNS 상에서 똑똑한 네티즌들은 금방 화자의 정체를 알아냅니다.
마음가짐 나름, 활용하기 나름입니다
기존의 광고·홍보 방법으로는 고객을 만나는 기회가 적었던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자의 경우에는 SNS는 분명 적은 비용으로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본인이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만 한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소비자를 인터넷 안의 내 집으로 초대할 수 있고, 내 집에 온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면 충분히 사업의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이들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소비자와의 진정한 대화를 하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기업에게는 SNS는 또 다른 매스미디어일 뿐입니다. 대규모 비용을 들여 대규모 소비자에게 대규모 홍보 메시지를 전달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특정 SNS 채널이 누구나 인정하는 대세가 될 때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개발돼 많은 사람들이 살게됐을 때 집을 지어도 늦지 않은 겁니다. SNS가 아무리 고객과의 직접 소통에 적합한 툴이라고 해도 기업이 진정성을 가지고 직접 집안에 살지 않는데 소비자가 진심으로 기업과 스킨십을 해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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