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4 : Interviews : 창(創) - 변태(變態)하는 소설가, 이기호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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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變態)하는 소설가, 이기호





2014년 3월,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한국어와 영어로 함께 수록한 시리즈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소설’의 4차분 15권이 출간됐다. 여기 에는‘ 디아스포라’·‘ 가족’·‘ 유머’ 등 3가지 주제로 5명씩의 작품이 수록됐는데, 이 중 ‘유머’에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이라는 이기호의 단편이 실렸다. 한국 단편소설에서 유머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름 ‘이기호’. 지난해 <김박사는 누구인가>로, 단편집으로는 7년 만에 독자를 만난 이기호를 광주대학교에서 만났다.


‘`내가 썼지만 이건 다시 봐도 정말 재미있다’ 하는 본인의 소설이 있으신가요?


“(크게 웃음) 제 소설 다시 안 봐요. 수업시간에도 제 작품으로는 해본 적 없고요(그는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책이 나오기 전에 출판사와 5`~`6번을 꼼꼼히 읽기 때문에출판이 되고 나면 사실 다시 펼쳐보고 싶지 않아지죠.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나온 지 10년이 됐는데 이제 보면 제가 쓴 거 같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오버했지 싶기도 하고요.”


작가님의 소설은 형식이 기발하고 다양합니다. (성경 의고체·랩·요리방송과도 같은 어투 등) 이것이 ‘이기호스러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작품에서 ‘맞는, 당하는’ 인물들이 때리는 사람에 비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캐릭터를 자주 등장시키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소설이 ‘이야기로서의 역할’을 지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봐요. 문장의 범위에 얽매이거나,‘ 문학’이라는 권위에서 비롯되는 형식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리고 사디스트와 매저키스트 두 가지가 있다고 할 때, 저는 매저키스트에서 ‘유머’가 생길 수 있다고 봐요. 매저키스트들의 우직함이 사람들의 판단 기준을 흔들어 버리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매저키스트들은 도망을 가면 되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직면하고 아픔을 견뎌 내거든요. 이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저 바보 같은 짓을 왜 하지’라는 물음을 갖게 만들면서 잊고 있던가치를 생각나게 하고, 때리는 사람에 대한 시선과 맞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시선을 전복시키기도 해요. 제가 생각하는 유머의 법칙이기도 한데, 그걸 마조히즘을 통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근래 들어 마조히즘적 증상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예전에는 부당함에 대해 싸워 나갔던 것에 반해, 요즘엔 불합리에 대해 자기가 죄송하다고 하는 걸 많이 보게 돼요. 이것이 바람직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대적 정서가 그런 것 같아요. 영문도 모른 채 미안해하는 <사과는 잘해요> 속 인물들은 이런 시대적 정서에서 착안해 그려진 캐릭터예요.”


작가님 소설에 대해 여러 가지 결로 읽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로 정의되어 언급된다고 느낀 적은 없으신가요?


“읽는 사람 마음인 거죠. 어떤 사람은 한번 쓱 읽고 이야기를 하고, 어떤 사람은 두 번 세 번 읽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해요. 대개 책이 나오면 문예지나 블로그에 서평이 쏟아지는데, 저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어떤 블로그하시는 분이 제 소설 안에 특정 단어가 몇 번 반복돼 나오는지 그 숫자를 세어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분석하셨더라고요. 그 글을 보고 매우 놀란 적이 있어요. 아마 대부분이 한 번 정도 읽을 텐데, 그럴 경우 스토리가 가장 먼저 보이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반복적으로 읽어보는 것이 중요한데, 문장이나 인물 행동의 결, 틈을 보아주지 않는다고해도 그건 독자의 몫이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것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작품을 반복적으로 읽어 보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이게 되거든요. 저의 경우,‘ 읽고 싶다’에서‘ 쓰고 싶다’로 넘어 가는 순간이 한 작품을 여러 번 읽었을 때였어요.”


요즘 주목하는 작가가 있다면요?


“황정은 작가가 감각도 좋고 센 거 같아요. 그리고 손보미라는 작가의 작품도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정용준 작가도 좋아하고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계속 많이 써서 다양성의 범주를 넓혔으면 좋겠어요. ”


현재 작가로서 활동하시면서 교수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 역할은 병행 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담당하고 계신 전공이 문예창작입니다. ‘창작’이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시는지요?


“글쓰기라는 것은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감각은 타고나기보다 훈련되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여기서는 이렇게 써야지’보다는 스스로 감각을 일깨우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저 역시도 문예창작학과 출신인데, 제가 선생님들로부터 배운 것도 문장을 고쳐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끔 하는 것’,‘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 고독과 응대하는 것’이었거든요. 다만 소설은 시대의식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시대 감성을 반영하는 것들도 많기때문에 제가 배울 때와 지금은 감각·감성의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세나 정신 같은 것은 예나 지금이 같지만, 학생들과 다루는 텍스트들은 차이가 있지요. 사실 강단에 서고 보니 가르치는 것과 쓰는 것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기를 쓰며 쓰려고 하는 이유는 선생님이 ‘계속 쓴다’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텍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아무래도 선생 방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요.”


남다른 실험을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나요?


“주로 문창과 수업이라고 하면 학생들 개개인이 단편소설을 완성하고 나서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이 정석인데, 연재식으로 일주일에 한 장씩 발표하게 해서, 한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의 과정들을 같이 겪어 나가도록 해보기도 했고, 모두 모여 수업하는 것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 명씩 불러서 수업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모여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자기 객관화를 시키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기 작품을 대하는 것은 거울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거울을 보다가 거울 앞에서 떠나는 순간은, 자신이 가장 그럴 듯하게 보일 때거든요. 자기 자신에 대해 날카로울 수 있어야 해요. 거울을 보면 자기의 모습이 아주 자세히 보이죠. 그렇게 자기 작품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들이댈 수 있을 때, 그래서 거울을 떠날 수 있을 때 비로소 습작이 끝나고 전문적인 작가가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취향이 있고, 취향이라는 것은 상당히 보수적인 부분이라 쉽게 변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수업을 할 때는 저와 아주 다른 작가님을 모셔서 수업을 번갈아 가며 진행하기도 해요. 지금은 그런 차원에서 정용준 소설가를 모셔서 같이 수업하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광고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리고 소설의 글쓰기와 광고를 위한 글쓰기가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도 종종 이야기하는 기억에 남는 광고가 있는데, 최근에 학생들과도 이야기 했었고요. 김정은이 모델로 나왔던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의 BC카드 광고입니다. 날것 그대로의 ‘부자’라는 단어가 광고 속에 툭 튀어나와 그 전의 우리사회에서 ‘부자’라는 단어가 줬던 부정적인 느낌을 상쇄시켰다고 봅니다. 그 광고 카피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어느 쪽으로 자연스럽게 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죠. 광고 카피 역시 언어를 다루기 때문에 언어에 대해, 문학에 대해 섭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광고 카피는 가장 응축된, 줄이고 줄인 결정체 같은 핵심 메시지 상태인 것 같고, 그를 위한 훈련은 비슷할 듯합니다.”


작가님이 ‘남과 다르기’ 위해 무게를 두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삐딱한 사람이어야 삐딱하게 남과 다를 수 있어요. 평소 행동이 규율에 익숙해 있으면서 글 쓸 때만 삐딱해질 수는 없거든요. 똑같이 살다 보면 그 생각만 할 수밖에 없어요. 생활에 변화를 주고,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최근 5년여는 집에 양해를 구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그렇게 보낸 시간을 통해 소설 구상이나 소재를 얻죠. 그리고 물리학 서적이나 월간 <수사연구> 같은 잡지를 챙겨보기도 해요. <수사연구> 잡지에는 실제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이 촬영한 현장사진 등이 실리는데, 이렇게 저랑은 상관없는 것들을 접하려고 해요. 사유와 시선의 범위를 넓힐 수 있어서 좋아요.”


신인들이 쏟아지고, 인문학의 위기다 하는 그런 엇갈림 속에서 문단을 어떻게 전망하는지요?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작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창과를 온다고 글쟁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문학을 하는 데에는 자기 스스로 입법을 하는 사람들처럼, 자기 원리 원칙으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지금 문단에 대해 이야기하긴 곤란하고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문단에 데뷔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계속 쓰는 거예요. 데뷔 이후 작품이 없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2013년 출판된 <김박사는 누구인가>와 앞으로 출간될 책, 그리고 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단편집으로는 두 번째인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후로 <김박사는 누구인가>를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첫 번째, 두 번째 단편집을 내고 나니 ‘이 작가는 뭐다’라고 굳어지는 것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그 색깔이라는 것이 ‘유머’였어요. 저는 이걸 깨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작가로서의 진정성이라는 것은 ‘자기 갱신’에 있다고 봅니다. 지금 위치 지어진 길로 갈 때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나를 갱신해서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저 쪽으로 가보는 것이 작가가 갖는 진정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존에 갖고 있는, 혹은 굳어진 것들을 갱신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음 달쯤 장편이 새로 나오는데, 4년이 걸렸어요. 장편은 쓰는 기간도 오래 걸리고 체력을 필요로 하는데, 쓰고 나니 매우 매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주간지에 연재를 하다가 중간에 그만 두고 쭉 쓴 작품이에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대한 내용이 2장 정도 나오는데, 취재가 필요해서 연재를 그만두었죠. 요즘 나이 때문인지 조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의 계획은 딴 거 없고 ‘계속 쓸’ 예정입니다.”


작가가 독자로부터 어떤 단어를 부여 받는 것은 사실 흔한 것은 아니다. ‘유머’라는 키워드를 부여 받은 작가 이기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뛰어 오르기 위한 도움닫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매저키스트를 긍정하며, 스스로 ‘변태’라고 칭하는 그는 끊임없는 변태(變態)를 겪어내며, 가보지 않은 곳으로 도약하고 있다. 그 너머에서 보여줄 다채로운 색이 기대된다.



Interviewer: 이 한 나 | 프로모션PR팀 대리 | hanna@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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