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2 : The Difference - History : 오늘도 우리는 역사를 마시고 있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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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fference  History

오늘도 우리는 역사를 마시고 있다

지금 당신 손에는 어떤 음료가 들려있는가? 무심코, 혹은 입맛에 따라 고른 음료이겠지만, 당신의 손에 들린 음료 한 잔은 거대한 역사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먹고 마시는 것 없이 어찌 인생이 즐거울 수 있을까? 먹는 행위‘가식 욕’이라는 본능을 기본으로 한다면, 마시는 행위는 좀 더 복잡한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회의시간에 빠지지 않는 커피 한 잔, 우아한 만찬의 필수인 와인 한 잔에도 색다른 의미가 있다. 알고 마시면 더 즐거운 한 잔의 역사, 한 잔의 문화 이야기

 

신의 선물
퇴근 후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치맥만한 것이 없고, 로맨틱한 데이트에는 와인, 격조 있는 비즈니스 파티에서는 위스키가 빠지지 않는다. 인류는 기원전부터 술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즐기는 술 종류에 따른 문화가 기원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맥주는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즐겨온 음료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원전 4000년경부터 맥주와 비슷한 형태의 음료를 즐긴 기록이 남아있는데,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생활 패턴이 바뀌며 곡물을 이용한 음료를 마시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땅에서 얻은 곡물을 물과 섞어 수프 형태로 즐기던 인류는 그 물에서 단 맛이 나며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일어난다는 특성을 알게 됐고, 그렇게 곡주인 맥주가 탄생했다. 처음엔 자연적인 발효 상태의 맥주를 마시던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점차 꿀·향신료·허브 등을 첨가해 맥주 맛을 다양화했다.
요즘 유행하는 수제 맥줏집에서는 이들 재료를 첨가해 다양한 맥주 맛을 내는 것을 보면 인류의 입맛은 수천 년 동안 그리 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맥주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 맥주를 발견한 이들이 최초의 문명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에도 맥주는 사교용 음료의 역할을 했는데, 큰 통에 담긴 맥주를 나눠 마심으로써 우정과 신뢰를 나누었다. 물론 이 신뢰의 바탕에는 음료를 함께 마심으로써 독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었다. 재미있는 건 잔을 부딪치는 '건배' 행위가 고대부터 유래했다는 점이다. 와인이나 위스키는 건배의 과정을 생략하기도 하지만,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맥주는 서로 잔을 부딪치지 않으면 흥이 나지 않으니 이 정도면 전 인류의 유전자에 박힌 습성 아닐까도 싶다. 곡물이 신비한 변형 과정을 거쳐 기분 좋은 취기를 만드는 맥주를 고대인들은 '신의 선물’이라 여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문명의 상징 역할을 하게 됐다.

 

신의 음료, 연금술사의 과학
와인은 어떨까? 와인은 세련되고 우아한 술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이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진 관념이라 할 수 있다. 국가가 발달하고 국왕의 힘이 세지면서 국왕은 연회에서 맥주가 아닌 술을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와인이었다.
와인은 산악지역에서 생산해 옮겨야 하기 때문에 부와 권력을 가진 자만이 마실 수 있었다. 이런 희소성과 높은 가격 때문에 ‘신들이 즐기는 음료’로 불렸다. 현재의 아르메니아와 북부 이란 지역에 해당하는 자그로스 산맥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와인은 무역이 발달하며 아래 지방으로도 퍼지게 됐는데, 비싼 와인은 권력층이, 쉽게 만들 수 있는 맥주는 대중이 마시는 관습이 그때부터 생겨났다.
엘리트의 상징인 와인을 마시기 위해 무역이 점점 발달했고, 아예 와인 생산이 가능한 지역을 소유하고자 하는 다툼마저 있었다. 이렇기에 와인은 고대로부터 ‘문명’과 ‘세련’의 동의어로 인정받았다. 종교적으로도 와인의 역할은 상당해 당시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와인에 대해 전혀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와인은 단순한 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듯하다.
서양 문화를 중심으로 발달한 맥주와 와인과 달리 브랜디·럼과 같은 증류주는 현재의 아랍 지역, 즉 아시아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원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증류 기술로 와인을 증류시켰고, 이는 알코올 성분이 더 강한 액체를 만들어냈다. 맥주가 신의 선물이고, 와인이 신의 음료였다면, 증류주는 연금술사의 과학이라 할 만하다. 증류주는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했고, 작은 병에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배를 통한 이동이 가능한 꽤 경제적인 물품이었다. 이 순도 높은 알코올은 음료로 이용되고, 신체 감염 부위에 약품으로도 사용됐으며, 통증을 완화시키는 진통제로도 쓰였다. 이동이 간편한 만큼 노예무역의 핵심 요소로 활용되고, 유럽의 식민지 확장의 중요한 도구로 쓰였으니 말 그대로 역사를 바꾼 주범이라 하겠다. 이후 현대에까지도 증류주를 둘러싼 세금은 언제나 중요한 이슈였으며, 현재까지 주세는 국가의 살림을 책임지는 중요한 밥그릇이니 화폐로 통용된 술의 특징이 고스란히 남았다고 하겠다.

남자의 음료, 여자의 음료
고대를 지배한 것이 술이었다면, 현대를 지배한 것은 차와 커피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과 논리·사유가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면서 사람들은 커피와 차를 마시며 두뇌를 자극해 정확하게 사고하고 날쌔게 행동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커피는 17세기에 유럽에 소개됐는데, 당시는 아침식사에도 알코올 성분이 약한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문화가 퍼져 있었다. 알코올과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은 각성된 상태로 또렷한 사고를 하고 그 가치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각성제인 커피는 고대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진보성의 상징이었으며 이성의 음료로 받아들여졌다.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커피는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무슬림들에게 허락된 훌륭한 음료였다. 커피를 파는 카페는 사람들이 모이고 토론을 하고 게임을 하는 사교 장소가 됐다. 무슬림들의 음료라 하여 유럽에서는 커피를 금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17세기 상업의 중심지였던 런던에는 하루가 다르게 카페가 들어섰고, 그 동안 와인과 맥주로 큰 수입을 얻었던 술집 주인들은 커피에 대한 음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커피는 특히 카페라는 공간과 함께 널리 퍼졌는데, 당시 지식인라면 카페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커피와 함께 대표적인 뜨거운 음료인 차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음료였으나 언젠가부터 영국인의 문화가 됐고, 유럽 제국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차 문화는 동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와인처럼 화폐이자 종교였고 문화였다. 유럽인들에게 차는 신기하고 고급스러운 문화였으며, 나침반·인쇄술·화약 등과 함께 일종의 선진문물로 일컬어졌다. 잎이 푸른 상태인 녹차에서 검붉은 홍차로, 거기에 우유를 타는 것으로 차의 종류나 문화도 점차 유럽식으로 바뀌었다.
커피가 카페를 통해 전파된 데 비해 차는 일본의 다도와 비슷한 티 파티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귀부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차를 내리고 점차 이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빵과 과자 등을 곁들여 식사 대용으로 즐길 수 있는 애프터눈 티 문화도 생겨났다. 커피가 남자의 문화였다면, 차는 여자의 문화였다. 이후 차는 대중화 과정을 거쳐 노동자 계층에까지 차 문화가 퍼져나갔다. 지금도 티타임은 중요한 노동조건의 하나인데, 영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인들은 오전 오후 한 번씩 있는 티타임 때문에 고충을 호소하기도 한다. 차가 뭐 대수냐 싶지만, 보스턴 차 사건이 미국 독립의 시발점이 된 걸 보면 차가 음료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음료
점차 세계 경제의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던 시기, 20세기의 음료 콜라가 탄생했다. 말 그대로 미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콜라는 처음에는 지금과는 다른 맛의 의약품으로 발명됐다. 의학적 효과가 입증된 광천수를 화학적 방법으로 만들어낸 것이 소다수인데, 1700년대에 만들어진 탄산수가 바로 현재의 소프트드링크라 칭해지는 음료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이 소다수의 맛을 부드럽게 하고 과일시럽을 첨가하면서 음료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당시 유행하던 코카나무와 콜라나무 추출물, 거기에 단맛을 첨가한 것이 코카콜라(처음엔 시럽만 따로 판매)다. 콜라는 2차 세계대전때 전 세계에 파병된 미군들에게 실어 나르게 되면서 확산됐다.
냉전시대에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전통적으로 사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럽 국가들은 콜라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시원해 보이는 콜라의 거품, 그 안에 현대사의 단면이 담겨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 손에는 어떤 음료가 들려있는가? 무심코, 혹은 입맛에 따라 고른 음료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의 손에 들린 음료 한 잔은 거대한 역사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술로 인해 전쟁도 나고, 차는 한 국가가 독립하는 계기가 되고, 콜라 때문에 냉전이 토론되는 현장, 언제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를 일이니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그 음료를 좀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김 보 영 ㅣ <블링> 편집장

interviewboy@naver.com

영화와 여행 전문 기자를 거쳐 2009년부터 패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블링>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역서로 <어린 왕자>(e-book), <힙스터 다이어트>, 저서로 <스위스의 낮과 밤, 당신이 모르는 101 핫 스팟>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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