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fference History
브랜드로 환생한 역사적 인물들
‘약용 와인’은 어떨까(정약용)? ‘선덕 향수’는(선덕여왕)? ‘순신 운동화’는(이순신)?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해 브랜드도 키우고 그 인물도 빛낼 수 있는 브랜드 네이밍 전략도 고민해 볼 때이다.
아인슈타인 우유·매치니코프 요구르트·나폴레옹 꼬냑·에디슨 전구·키플링 백팩(backpacks).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모두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름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유명인의 이름은 제품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유명인의 이름을 딴 공항은 생각보다 많다. 존 F. 케네·디샤를 드골·레오나르도 다빈치·요한 슈트라우스 등이 대표적인 인명 공항이다.
역사적 인물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할 경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기대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효과는 무엇일까? 먼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Dear Jackie!
구찌의 재키 백(Jackie Bag). 구찌의 호보백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1929~1994)의 애칭인 '재키’를 응용해 ‘재키 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영부인이었고, 선박 재벌 오나시스와 결혼해 패션계를 주름잡던 그는 “제대로 차려입지 않고는 집 밖에 나간 적이 없다고” 자부했을 만큼 완벽한 패션 스타일을 추구했다. 구찌 호보백은 ‘재키 백’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출시되고 있으며, 일부 품목은 재클린의 처음 성(姓)인 ‘부비에’를 따 ‘부비에 백’으로 불리기도 한다.
재키 백은 2009년 프리다 지아니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지휘 아래 ‘뉴 재키 백’이란 이름으로 다시 출시됐다. 이 제품도 재키 백의 원형을 유지해, 가방 아래쪽을 둥글게 마감했고 어깨에 멨을 때 삼각형이 되도록 했으며, 가운데 부분을 고리로 걸어 잠그게 했다. 재클린은 떠났어도 그에 대한 집단적 기억과 패션 감각은 재키백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
루이 14세(Louis XIV) XO 양주. 프랑스의 국왕 루이 14세(1638~1715)는 양주로 환생해 오늘도 주당들 곁에 있다. 최고의 절대군주였던 그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만들어 태양왕(太陽王)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양주 브랜드 루이 13세의 실제 모델이었던 루이 13세(Louis XIII, 1601~1643)는 결혼 후 23년 만에 루이 14세를 얻었는데, 왕은 그자가기 자식인지에 대해 의심했다고 한다. 어쨌든 루이 14세는 프랑스를 오늘날과 같은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아 '눈에 보이는 신(Visible Divinity)’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77세로 생을 마감한 루이 14세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가족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고 남겨진 상속자는 다섯 살 어린 고아인 증손자뿐이었다고 한다. 루이 14세(Louis XIV) XO 양주는 루이14세에 대한 오마쥬의 의미를 지니는 브랜드다. 또한 솔로 로에베 압솔뤼토(Solo Loewe Absolut향o)수 역시 루이 14세로부터 영감을 얻어 개발된 향수이다.
오늘밤엔 처칠과 와인을
‘폴 로저 꾸베 써 윈스턴 처칠(Pol Roger Cuvee Sir Winston Churchil l와)’인. 영국의 처칠(1874~1965) 수상은 1928년산 ‘폴 로저’ 와인을 특히 좋아했다. 처칠은 1945년 프랑스 주재 영국대사관이 주최한 점심식사에서 폴 로저 샴페인하우스의 대모인 오뎃 폴 로저를 만난 이후 친밀한 유대관계를 가졌고, 그 후 거의 이 와인만 마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폴 로저는 처칠에 대한 보답으로 처칠만을 위해 특별한 샴페인 용기를 만들었고, 사후에 그의 이름이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와인을 만들었다. 폴 로저 꾸베 써 윈스턴 처칠 와인은 생전에 처칠이 즐겼던 그대로의 맛과 향을 충분히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처칠이 사망한 1965년에는 영국으로 수출하는, 그해 생산된 모든 폴 로저 샴페인의 은색 상표(White Foil) 라벨을 검은 색으로 처리 해 애도의 의미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1975년부터 처칠의 이름을 딴 특급 샴페인을 생산하기 시작해 1983년 처칠의 생가인 영국의 블렌하임궁에서 출시했다.
사람은 죽어서 브랜드를 남긴다
국내의 사례를 보자. '에디슨(Edison) LED 조명’. GE라이팅은 1879년에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 이 설립한 GE의 모체이다. 에디슨이 세계 최초로 램프를 발명한 이후 GE라이팅은 백열램프·형광램프·할로겐램프·고압 방전램프·LED 같은 다양한 조명제품을 개발해왔다.
GE라이팅에서는 직접적으로 에디슨 이름을 브랜드화하지는 않고 있으나, 누가 봐도 에디슨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기업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반면에 국내의 에디슨 솔라이텍은 발명왕 에디슨의 이름을 직접 사용해, LED 조명과 태양광 발전이라는 두 개의 사업축을 활성화하고 있다. 국내 LED 조명시장의 파이가 커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에디슨 솔라이텍은 태양광 발전사업에서 거둔 결실을 LED 조명 분야에 투입하고 있고, 세계 최초로 램프를 발명했던 에디슨을 환생시켜 브랜드 자산을 높이고 있다.
사임당 화장품. 이 화장품은 조선 초기의 여류 서화가이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유명한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을 환생시켜 브랜드 자산으로 삼고 있다. 창사 이래 한방 화장품만 생산해온 사임당은 전 세계에 ‘K-뷰티’를 널리 알려왔다. 사임당화장품의 하위 브랜드는 인현진·아토앙·치우천황선·정일품 등이다. '인현진'은 한의학연구원과 공동 개발한 고기능성 한방화장품 브랜드이다.
‘아토앙’은 바디워시 로션 크림으로 구성된 유아용 아토피 제품, ‘치우천황’·‘선’·‘정일품’은 남성 화장품 브랜드이다. 한류 바람이 불면서 ‘K-뷰티’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중국에서 한국산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나라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알려진 신사임당을 하나의 브랜드로 승격시킨 이 화장품의 브랜드 전략은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를 패러디하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브랜드로 환생한다”가 된다. 역사적 인물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하면 어떤 역사적 인물에게 오마쥬(Hommage; 존경과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지만 잇속에 밝은 기업들이 단지 존경과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만 거장의 이름을 브랜드 이름으로 쓰겠는가? 이미 대중에게 친숙한 거인들의 이름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하는 경우라, 굳이 브랜드 인지도나 브랜드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쓸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어떤 거인이 평생 동안 쌓아온 개인의 이미지가 저절로 브랜드 이미지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바로 이 점이 역사적 인물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할 경우에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효과이다.
‘Brand You’의 시대가 왔다”
여기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앞으로의 스타 마케팅 전개에 의미 있는 팁을 줄 것이다. 이제 유명인이 광고 모델로만 등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명인의 이름을 딴 브랜드나 쇼핑몰도 등장하고, 유명인이 직접 창업해 적극적으로 스타 마케팅을 전개하기도 한다.
경영학자 톰 피터스(Tom Peters)는 “모두가 브랜드가 되는 ‘브랜드유(Brand You)’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얼마 전 유행했던 이경규의 꼬꼬면 같은 ‘셀럽 브랜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대중스타나 유명인을 뜻하는 셀러브리티(Celebrity)의 줄임말인 셀럽. 아예 셀럽의 이름을 딴 브랜드가 주목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셀럽 브랜드들은 지금 살아있는 인물을 브랜드로 전이한 경우이니, 역사적 인물들을 브랜드로 환생시키는 경우와는 달리 인물에 대한 대중적 호응도에 따라 일시적 유행으로 그칠 가능성도 높다.
그렇지만 역사적 인물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는 사례는 없었다. 어떤 인물의 한 평생 만큼 장구한 세월동안 그 브랜드의 자산이 관리됐고, 결과적으로 브랜드의 명성에 걸맞게 역사적 실제 인물도 빛났다.
여기에 이르러 왜 우리에게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신사임당 외에는 없었는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약용 와인’은 어떨까(정약용)? ‘선덕 향수’는(선덕여왕)? ‘순신 운동화’는(이순신)?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브랜드 이름으로 활용해 브랜드도 키우고 그 인물도 빛낼 수 있는 브랜드 네이밍 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김병희 ㅣ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광고학박사. 광고 창의성 평가척도 및 이론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갤럽학술상 대상(2011)과 제1회 제일기획학술상 저술부문 대상(2012)을 수상했으며, 세계3대 인명사전(Marquis Who’s Who, IBC, ABI, 2011~2013)에 모두 등재됐다. <창의성을 키우는 통섭 광고학>(시리즈 5권) 외 2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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