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08 : The Difference - Trend : 밴드 음악의 부활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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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fference  Trend

밴드 음악의 부활

 

밴드 음악, 록페스티벌의 팽창은 시각효과 위주의 ‘TV형 음악’이 아닌, 공연에 최적화된‘ 현장의 음악’으로 세상의 관심이 이동한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2006년만 해도 여름의 대규모 록페스티벌은 펜타포트 하나였다. 그런데 서서히 늘기 시작해 올해는 지산월드 록페스티벌·펜타포트 록페스티벌·안산 밸리 록페스티벌·슈퍼소닉·시티 브레이크까지 다섯 개의 페스티벌이 각자의 화려한 라인업으로 경쟁하고 있다.
이렇게 밴드 위주의 시장이 팽창한 이유는 뭘까. 그걸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이돌 쇼 vs 현장의 음악
몸을 불리고 수를 늘려 갑작스레 절정을 맞이한 올해의 록페스티벌은 몇 해 전의 아이돌 시장을 상기시키는 구석이 있다. 빅뱅의 <거짓말 (2007. 08)>과 원더걸스의 <`Tell Me (2007. 09)>가 가요시장에 태풍을 일으킨 이후, 소녀시대와 2PM, 그리고 2NE1도 함께 물결을 탔다. SM·YG·JYP 등 검증된 주요 엔터테인먼트사의 독점 시장을 파고들 목적으로 계열사 혹은 신생회사가 진입해 본격적인 아이돌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여전히 아이돌은 주류 음악시장을 선점하고 있지만, 2000년대 후반 정점에 도달한 아이돌 대부분은 긴 충전의 시간을 갖거나 해외활동을 병행하는 것으로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변함없이 가요시장은 순위제로 돌아가기에 1위와 함께 10위권 가수도 존재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순위란 논란 많은 노출과 고난이도 퍼포먼스 같은 힘겨운 육탄전을 벌여서 겨우 얻어내는 공허한 숫자에 불과하다. 아이돌 히트곡 전문 작곡가 또한 비슷한 멜로디와 편곡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복제를 반복 중이다.
어둡게 전망하자면 페스티벌 시장 역시 침잠의 아이돌과 비슷한 미래가 찾아올 것만 같다. 양적 확장은 이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힘겹게 이동해야 겨우 공연을 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인산인해를 만나는가 하면, 과연 몇 년이나 유지될까 의문스러운 텅 빈 객석도 보인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페스티벌의 미래가 아닌 현재와 과거다. 2000년대 중반 이전에도 록페스티벌은 간헐적으로 있어왔지만 지금과 같은 지속과 확장의 힘을 갖던 시기는 없었다. 이건 단지 페스티벌의 ‘성공적 개최’만으로 이룬 성과가 아니다. 국내 음악시장이 서서히 재편되면서 맞이하게 된 결과에 가깝다. 이는 시각효과 위주의 ‘TV형 음악’이 아닌, 공연에 최적화된 ‘현장의 음악’으로 세상의 관심이 이동한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홍대 인디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
1990년대 중후반 부상하기 시작한 홍대 인디 음악은 처절한 예술적 투혼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1996)>와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1997)> 같은 히트곡이 나왔고, 앨범 및 공연활동을 지속하면서 인지도와 함께 명예를 획득하는 가수군이 있긴 했지만, 실상은 가난한 무명의 뮤지션들이 거기 다 모여 있었다.
그들이 작품을 들고 청중을 만나러 가는 지하의 음습한 클럽은 홍대 인디신의 상징적 이미지로 고착됐다.
그런데 요즘은 페퍼톤스의 신재평, 메이트의 정준일과 임헌일, 선우정아 같은 공연 기반의 아티스트가 아이돌 앨범의 작곡가로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교두보가 있다.
2002년 발표된 이소라의 5집은 델리 스파이스 김민규가 프로듀스한 작품이다. 유희열의 소속사 안테나뮤직은 ‘루시드 폴·페퍼톤스’ 같은 홍대 기반의 뮤지션을 단계적으로 끌어들였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는 롤러코스터 출신의 지누가 작곡한 노래다. 주류 가요시장이 ‘홍대 앞 뮤지션’의 재능과 감각을 필요로 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감수성과 여유로 무장한 뮤지션들이 인디 밴드에 대한 인상을 바꿔놓았다. 싱어송라이터 차세정의 <에피톤 프로젝트>는 1990년대 윤상과 토이를 환기하는 감성적인 노래로 심야 라디오와 친근한 관계를 맺고 지지자들을 모았다. <아메리카노>로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오른 포크 듀오 10cm는 개인의 기호와 취향을 논하거나 한밤의 야릇한 남녀관계를 소재로 한 노골적인 노래로 색다른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다.
<싸구려 커피>로 데뷔한 장기하와 얼굴들도 빼놓을 수 없다. 안무와 함께 댄스팀을 동반한 기발한 무대연출이 전파를 탄 후 각종 온라인 사이트를 강타했고, 구수한 입담까지 뽐내면서 라이브 전문 프로그램의 단골 게스트가 됐다. 이들 대다수는 공연에 주력하지만, 폭발하는 에너지 대신 곡 자체로 혹은 아이디어로 승부했던 신예 뮤지션이다. 노 리플라이·데이 브레이크·옥상달빛·제이래빗 등도 비슷한 유형에 속한다.

 

오디션이 청중의 수준을 높였다
2009년 케이블 채널 엠넷의 <슈퍼스타 K1>이 시작됐을 당시만 해도 파급력을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두 번째 시즌부터 케이블 역대 시청률을 거듭 갱신하면서 지상파에 긴장을 안겨줄 만큼 무서운 성장을 이뤘다. 그러면서 쇼를 구경하던 평범한 시청자를 예민한 감상자로 바꿔놓았다. TV 앞의 시청자는 윤종신과 이승철, 방시혁과 박진영 못지않게 냉철하고 까다로운 심사위원으로 돌변했다. 도전자들의 가창력은 물론이거니와 가능성을 재단했고, 개인의 재능을 넘어 편곡과 프로듀싱 같은 개념에 다가갔다. 가수의 음색과 멜로디로 자신의 취향을 결정하던 우리가 어느새 음악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갖게 된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대부분이 음악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드라마 효과를 차용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슈퍼스타 K> 시즌2의 장재인과 김지수, 시즌4의 로이킴과 정준영, <K팝스타>의 악동뮤지션 등이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등장했다. 그들의 연주는 여물지 않았다 한들, 그래도 자연스러웠다. ‘국내 가수’로 통한다 해도 무방할 미국 포크 뮤지션 제이슨 므라즈가 일찍부터 라디오와 카페를 장악해왔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영화 <원스>의 OST와 미국 밴드 마룬5가 국내에서 누린 인기 또한 포크와 록에 대한 접근의 문턱을 낮췄다. 그걸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나타났다. 오디션 포맷을 유지하면서 생생한 악기를 대동해 수준을 높인 라이브 환경은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처럼 기성가수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들의 잔치로 전환됐다. 현역 밴드들이 경쟁에 임하는 <탑밴드>와 <밴드의 시대> 또한 같은 선상에 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임재범이나 자우림 같은 검증된 록가수를 새롭게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국카스텐이나 갤럭시 익스프레스처럼 페스티벌 친화적인 홍대 클럽 출신의 밴드들을 발견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젊은 여성의 지갑에서 나온 결과들
최근 재미있는 자료가 하나 돌았다. 모든 상품에 구매자의 성별과 연령대를 공개하는 예매 전문 사이트의 통계를 바탕으로, 올 여름 열리는 다섯 개 페스티벌의 예매율을 정리한 자료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페스티벌은 여자들이 먹여 살린다’. 강성밴드 메탈리카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서는 시티 브레이크를 제외하고, 여성의 구매율은 평균 65%를 기록중이다. 그들은 현장의 공기를 바꿔놓은 주역들이다.
록페스티벌은 뇌를 비우고 온몸이 땀에 젖도록 뛰고 구르는 터프한 시간이 아니다. 아웃도어룩은 기본이고, 돗자리와 도시락, 텐트와 접이식 의자가 필수 품목이다. 더럽고 과격한 축제가 아니라, 소풍이나 캠핑 혹은 여행에 가까운 이벤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자체 행사로 시작한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과 친환경 에코 페스티벌을 표방한 GMF는 여가형 축제의 양대산맥이다. 음악적 취향을 따라 찾아가는 목적지이면서 휴가의 기분까지 안겨주는 복합적인 성격의 축제다. 자라섬의 경우 가족과 커플의 기호를 충족하는 여행지에서 열린다. GMF는 경제력을 가진 20~30대 여성 관객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즉각적인 반응을 얻는 일에 급급해 노래를 놓치는 아이돌 문화에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첫 번째 주인공은 매주 새로운 라이브 과제와 싸워야 하는 오디션 도전자들이었다. 물론 오디션 이전부터 오랜 시간 심야방송과 각종 공연장에서 음악적 주체성과 독립성을 가진 뮤지션들이 경험과 경력을 쌓아왔다. 기획사의 홍보가 아닌 신뢰의 인맥을 통해 신속하게 전달되는 SNS 상의 정보들은 평판의 확산에 가속을 붙였고, 여가에 인색하지 않은 젊은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이 거기에 더해졌다.
결국 밴드의 시대, 그리고 이를 함축하는 페스티벌의 전성시대는 단계적으로 이룬 성과로 이해할 만하다. 문화소비의 주축이 되는 20~30대, 특히 여성들은 유행과 대세에 민감하면서도 개성과 창의가 만발하는 틈새시장을 향한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체험으로 얻을 수 있는 만족과 다양한 옵션에 열광한다. 그들의 소비 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이 새로운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

 

이민희 ㅣ 대중음악평론가

limini@paran.com

듣고 쓰고 말하고 있다. 로큰롤부터 아이돌까지, 음악적 특징을 설명하거나 음악을 둘러싼 문화와 현실을 관찰하는 일이다. 각종 월간지와 웹진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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