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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물건의 ‘필요’는 이제 포화상태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에 설득하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들이 인성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 아니라 어떤 ‘사람’, 어떤 ‘존재’가 되려고 합니다.
광고는 당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필요’를 알려주는 일입니다. 없어도 살았지만, 더 값비싼 화장품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더 많이 할인되는 신용카드를 가지라고 권하고, 걸을 때는 최적의 운동화를 신으라고 합니다. 화법은 훨씬 더 다양해지고 기발해졌지만, 광고는 갓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필요’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물건의 ‘필요’는 이제 포화상태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에 설득하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들이 인성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 아니라 어떤 ‘사람’, 어떤 ‘존재’가 되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겐 당신 마음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손으로 쓴 편지는커녕 메모조차 보기 힘듭니다. 컴퓨터로 치거나 휴대폰으로 입력해 보내는 일이 훨씬 더 편하고 읽기도 쉽습니다. 당연히 가방 안에 다양한 컬러의 펜을 갖고 다니는 일도 드물어졌지요. 볼펜 브랜드 유니볼(Uniball)은 그래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볼펜이 아니라 당신이 직접 쓴 글씨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3가지 시리즈로 온에어된 광고. 첫 번째는 ‘Swapped at birth’편입니다. 10대로 보이는 소녀가 침대에 앉아 자신에게 온 편지를 읽습니다. 그 편지는 컴퓨터 폰트 브로드웨이(Broadway) 서체로 씌어졌기에 브로드웨이에 알맞은 뮤지컬 톤으로 낭독됩니다.
결과는 끔찍합니다. 편지는 부모가 보내는 것으로, ‘병원의 실수로 태어나는 순간 아기가 바뀌었고 너는 내 딸이 아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진짜 부모가 내일 전화할 거고, 차마 얼굴을 보고 얘기할 수가 없어서 편지로 썼다고 말합니다.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낭독되는 톤은 흥겹고 신나는 뮤지컬 조의 리듬입니다. 내용에 어울리지 않게 신이 나는 거죠. 유니볼은 말합니다. 오직 자신만의 목소리로 말하라고. 당신 자신이 직접 쓴 글씨체만이 당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두 번째는 ‘Pappy is dead’입니다. 긴장감과 공포가 엄습하는 전쟁터. 젊은이는 가슴속에 간직해 둔 편지를 꺼냅니다. 익숙한 장면입니다. 품 속 편지를 읽으며 청년은 가족을 그리워하고 힘을 얻겠지요. 하지만 이 편지는 코믹샌즈(Comic Sans) 서체로 씌어졌습니다. 서체에 알맞게 매우 익살스런 코미디언의 말투로 낭독됩니다. 시종일관 목소리는 장난스럽고 경박하며, 진지한 데라곤 없습니다.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 유감이지만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편하게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다.’ 마치, 재미있는 일이 있다는 투의 코믹샌즈는 전쟁터 군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 번째는 ‘Bust you out’편입니다. 이 광고는 아이디어는 둘째 치고, 뜨거운 논란을 낳고 있는 광고입니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편견을 그대로 이용했기에 흑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흑인이 편지를 받습니다. 다만 에드워디언 스크립트(Edwardian Script)로 씌어 있기에 영국 엘리트의 거만한 억양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내용은 조롱과 은어로 가득합니다. 흑인 갱스터 문화와 반대되는 영국 귀족의 거만한 억양의 영어를 써 부조화를 시도했지만, 유니볼 페이스북 타임라인엔 앞으로 해당 제품은 절대로 사지 않겠다는 항의가 빗발칩니다.
세 번째 시리즈만 아니었다면 절묘한 광고입니다. 유니볼이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렇습니다. ‘쉽게 고를 수 있는 컴퓨터 폰트는 내용에 어울리지 않으면 당신 마음이 왜곡될 수 있으니, 볼펜을 들고 당신만의 글씨체로 쓰라’는 거죠.
아이에겐 같은 눈높이가 필요합니다
스페인의 아동보호단체 아나 파운데이션(Anar Foundation)은 정말로 아이를 위한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아동학대를 받고 있는 아이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라는 메시지. 포스터엔 멍들고 부은 얼굴의 아이가 보입니다. 그 옆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있고요. 하지만 어른 눈에는 전화번호가 보이지 않는 신기한 포스터입니다.
렌티큘러를 사용해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다르게 보이도록 한 겁니다. 평균 어른 키의 각도에서 광고를 보면 단순한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포스터이지만, 열 살 이하의 아이 각도에서 광고를 올려 보면 전화번호가 보이고 모델 얼굴에도 멍이 생기는 거죠.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어른과 같이 있어도 아이에게만 메시지를 노출시켜, 돕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고 합니다. 이 광고로 효과가 얼마나 더 커질지는 모르지만, 아이를 위한 광고임엔 틀림없습니다. 영국의 주스 브랜드, 로빈스(Robinsons) 또한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합니다.
광고는 또래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둘도 없는 친구인 두 아이는 하루 종일 붙어 다닙니다. 같이 축구를 하고, 칼싸움을 하고, 동네 여자아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저녁엔 집에 들어와 함께 주스를 나눠 마시고, TV를 봅니다. 하루 종일 노느라 피곤했던 한 아이는 소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듭니다. 친구는 그런 아이의 신발을 벗겨주고 번쩍 안아 이층 침실로 올라갑니다. 또래인데 친구를 안고 갈 만큼 힘이 셀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듭니다.
하지만 아이는 거뜬하게 친구를 침대에 눕히고 불을 끕니다. 그 때 침대에 누운 아이가 말합니다. “Good night, Dad.”
친구를 침실까지 안고 온 또래 아이는 아빠로 변합니다. 그리고 역시 다정하게 굿나잇 인사를 건네고 나갑니다.
“It’s good to be a dad. It’s better to be a friend.” 로빈슨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루 종일 아빠가 아닌 친구가 돼 주었기에, 아이의 눈에는 또래 친구처럼 보인 거죠.
치즈가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변신했습니다
핀란디아 치즈는 당신이 재미있어 할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광고는 클래식한 연극 한 편의 장면 같습니다.‘ 치즈 왕국’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치즈 맛을 개발하는 사람은 ‘Cheesehearted Ma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조어긴 하지만, 왠지 치즈를 매우 사랑하며 치즈처럼 진한 마음씨를 가진 거 같은 얼굴입니다. 괴로워하는 얼굴의 ‘치즈 마조히스트’는 자연의 영양이 가득한 핀란디아 치즈를 거절하는 괴로움을 즐긴다고 합니다.
좋은 자연 성분으로 만들어진 핀란디아 치즈를 거절하는 일은 너무 괴로워서, 자신을 학대하는 마조히스트에겐 좋은(?) 방법이 되는 거죠. ‘Cheese Dunce’는 머리가 나빠 대담하고 섬세한 맛을 내는 핀란디아 치즈를 가공 못하기에 Cheese Dunce(바보·얼간이)로 불린다고 합니다.
‘Flavor Philosopher’는 핀란디아 치즈를 연구하고 관찰하면서 치즈 맛이 인생과 샌드위치에 미치는 의미를 알아내는 중이라고 합니다. ‘Cheese Watchman’은 파수꾼답게 용맹하게 핀란디아 치즈를 지키는 모습입니다.
치즈가 아니라 위트 있는 사람이 연상됩니다. 치즈 왕국이라는 테마를 설정하고, 그에 맞게 클래식한 캐릭터들을 만들어 스토리를 풀어내는 핀란디아 치즈. 광고를 모아서 묶으면 한 권의이야기책이 될 듯합니다.
결국 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람입니다
광고는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물건으로서의 필요는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입니다.
볼펜은 당신만의 서체, 당신 마음 자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아동보호단체는 아이의 비밀스런 고민을 몰래 지켜주는 친구, 로빈슨 주스는 또래 친구가 돼주려고 합니다. 핀란디아 치즈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입니다.
“당신에겐 이 물건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겐 나같이 이런 사람이 필요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날을 맞은 트위터도 얘기합니다. 트위터로 당신은 유명인을 만나고, 뉴스를 접하고, 세계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고…. 시종 일관 트위터의 장점을 얘기하다, 어머니날 어머니에게 트위터로 인사를 하려는 남자에게 버럭 화를 냅니다.
‘당장 트위터를 닫고 전화하라’고. 어머니날만큼은 트위터리안보다는 아들이 되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신숙자
CD l sjshina@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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