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fference Monster
괴물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프로이트는 “우리의 마음에 안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일과 사랑”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과 사랑 앞에 ‘대체 가능하지 않은, 나만의’라는 문장이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깔끔한 디자인 솜씨로 아슬아슬하게 가렸지만 두 꼬리 사이에 무엇이 있을지 금세 알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상상력을 통해 여성의 그곳을 신화 속 괴물로 탈바꿈시켰다. 섹스를 그저 진땀나는 사정에서 그치지 않고 기묘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일이나 같이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욕망은 끝이 없고 집요하다. 그래서 성행위는 마르지 않은 샘처럼 해도 해도 지겹지 않은 이야기가 솟아난다.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여물통인 셈이다. 말나온 김에 인어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인어는 그 매력에도 불구하고 처녀로 남아야 하며 결코 닿아서는 안 된다. 인어의 보물은 그리하여 순결성이라는 이미지와 결합된다. 유혹적인 세이렌과 인어는 하반신, 즉 성기관이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 -최정은, <동물, 괴물지, 엠블럼>-
완벽하거나, 아예 헷갈리게 하거나
몇 년 전까지 머릿결이 풍성한 인어를 줄곧 그렸다. 내가 그린 인어는 바우보 세이렌과 달리 치렁치렁한 머릿결 아래 작은 가슴을 감추고 성행위를 할 수 없는 몸으로 바다를 날아다녔다. 인어를 보고 있으면 대학시절 마광수 교수로부터 배운 말이 떠오른다.
‘접이불루(接而不漏), 성행위를 하되 사정은 하지말아라.’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삽입보다는 애무를, 절정보다는 절정에 다다르는 과정을 즐기라는 뜻이었다.
그의 강의를 들은 지 이십 년이 지났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접이불루는 변강쇠가 되는 비법이라든가 성행위의 기술이 아닌, 자신만이 터득한 미학적인 태도였다. 그는 학문적이고 어려운 개념을 성행위에 비유해 설명했다.
그 때부터 개고생이 시작됐고, 아직까지 음란하고 변태적인 교수로 오해받고 있다. 누구나 성행위에 대해 안다고 하지만 그게 정말인지 모르겠다. 백 명의 사람에게는 백 가지 사랑이 있듯이 백 가지 성행위가 있다. 내게 경제학을 가르쳐준 교수는 “훌륭한 교수는 완벽하게 가르치거나 아예 헷갈리게 만든다”고 말했다.
나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어는 이미지이자 상징이다. 그냥 인어일 수도 있고 접이불루의 화신일 수도 있다. 나는 직접 부딪치기보다는 비껴가거나 헷갈리게 만드는 게 더 좋다.
<유혹의 기술>에는 역사적으로 매력적인 사람들이 소개된다.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유혹 당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유혹하고 있다고 여기게끔 만든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유형의 인물들이 소개돼 있는데, 특히 앤디 워홀이 마음에 든다. 그는 결코 먼저 나서는 법이 없었다. 늘 방구석에 은백색의 가발을 뒤집어쓰고 무심한 듯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는 누구를 만지거나 얼싸안으며 섞이지 않았다. 오히려 결코 닿아서는 안 되는 존재로 남아 얼음 같은 매력을 발산했다. 때로는 거리감 자체가 매력이 된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매력이 뭔지 알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린 작품을 보면 뜨거운 심장보다는 영리한 전두엽이 먼저 느껴진다.
새롭다는 건 괴물을 찾아 나서는 것
‘괴물이 그로테스크하다는 것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병립을 의미한다. 괴물이 괴물인 것은 상반된 것들을 그대로 공존시키고 어느 한 영역으로 다른 것을 흡수해 넣지 않기 때문이다.’
-최정은, <동물, 괴물지, 엠블럼>-
서로 관계가 먼 요소를 연결할수록 더욱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진다. 벽돌과 집을 연결하고, 오리와 호수를 연결하는 건 초등학생이라도 다 한다. 하지만 오리와 벽돌을 연결하는 일은 조금 어렵다. 이렇게 멀어 보이는 것끼리 연결하면 ‘번쩍’ 하는 황홀한순간이 스쳐간다.
켄타우루스는 사람의 상체에 말의 몸과 다리가 붙어 있다. 엠피스배나는 뱀처럼 생겼는데 꼬리에도 머리가 달려 있다. 세이렌은 여인의 몸에 물고기의 꼬리가 붙어 있다. 상상 속의 괴물들은 도저히 함께 있을 수 없는 것들을 아우른다. 괴물은 선택의 자유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로테스크하다는 건 달리 말하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쉽사리 버리지 않고 하나의 몸속에 지닐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면 명쾌할 수는 있어도 색다를 수는 없다.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은 안개 속을 헤집으며 괴물을 찾아 나서는 일과 같다. 창조는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되며 말도 안 되는 것끼리 관계를 맺는 일이다. 키마이라는 사자 머리에 염소의 몸, 여인의 가슴을 하고 용이나 뱀의 꼬리가 달려있다. 그렇다고 사자나 염소라고 부를 수 없다. 사자의 특징과 염소의 특징이 섞이지 않고 고스란히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키마이라는 키마이라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슬픈 건, 괴물이 되지 못해서이다
괴물이란 그 전에 알고 있던 상식으로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괴물이 되지 못하고 직책이나 업무로만 불리며 사는 건 불행하다. 김 과장이나 유 과장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직장인은 입사하는 순간부터 서글픈 아우라를 지니게 된다. 처음에는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서늘한 음료수, 지칠 만하면 통장에 찍히는 달콤한 보너스, 언제나 접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업체들 덕분에 즐겁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을 감싸고 있는 운명적인 슬픔이나 숙명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괴물이 되지 못해 슬픈 것이다.
장 과장인 나는 정 과장이나 유 과장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과장들을 물리치는 길만이 살 길이다. 이때부터 살벌한 경주는 시작된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마음에 안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일과 사랑”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과 사랑 앞에 ‘대체 가능하지 않은, 나만의’라는 문장이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대체 가능하다’는 말 속에는 안심과 불안이 뒤섞여 있다. 남들도 하니까 검증된 일처럼 보이지만, 나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늘 불편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다. 불안은 바지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나온다.
마케팅에서는 블루오션을 강조한다. 남이 가지 않은 길,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야 성공한다고 말한다. 머리는 알지만 다리 사이에 어설프게 걸려있는 바지가 늘 발목을 붙잡는다. 보랏빛 소는 달리 말하면 괴물이다.
어릴 적 보았던 <그랜다이저>라는 만화영화가 떠오른다. 달의 뒷면에서 출격한 괴물은 불을 뿜거나 거대한 채찍을 휘두르는 등 한 동작 한 동작 정성스럽게 움직이며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물 사이로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은 똑같은 그림이 무한 반복된다.
그랜다이저의 칼날에 목이 떨어져 나가는 괴물의 운명이 비극처럼 보이지만, 아무런 개성 없이 괴물의 발에 반복해서 밟혀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더 비극적인 법이다
밥 장 ㅣ 일러스트레이터·작가
blog.naver.com/jbob70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1996년 대기업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했고 2005년부터 그림으로 먹고살기 시작하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비정규아티스트의 홀로그림> <내가 즐거우면 세상도 즐겁다>를 썼고, 오는 5월 <밤의 인문학>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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