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View -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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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있는 기업의 좋은 광고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광고에서 '기업의 현재의 경쟁력’이 보일 경우 분명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한때 일본의 전자제품은 세계를 석권했다’라는 과거형 표현이 역설적으로 현재 일본의 전자제품 업계의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사실 그러했다. 일본의 전자제품은 기능·디자인·가격의 세 가지 요소를 완벽하리만큼 구현해 낸 것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파나소닉(Panasonic)·샤프(Sharp)·소니(Sony)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주요 매체는 그들이 몰락하고 있다는 기사를 토해내기 바쁘다. 저마다의 분석자료와 전문가들의 견해로 그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두 가지 요인으로 그런 거대 기업들이 흔들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그 여러 가지 실패요인 중에는 반드시 커뮤니케이션 전략 부재와 잘못된 방향성이 존재하리라고 보인다.
이에 ‘광고는 현재 그 기업의 경쟁력이 보이는 척도’라는 관점으로, 그들의 광고 캠페인 사례와 함께 일본 전자제품업계의 현재를 살펴본다.
파나소닉의 망상 속에 존재한 타깃, ‘ARASA’
얼마 전, 파나소닉 아라사(Panasonic ARASA)라는 신제품 에어컨이 출시되고 광고 캠페인이 전개되자마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과도 같은 일이 있었다. 스마트폰과 연계해 집밖에서도 조절할 수 있다는 최첨단 기술을 소구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하는 기법이 너무 전근대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30대 가정주부들을 타깃으로 한다는 취지에 ‘ARASA(서른 즈음에라는 뜻의 Around Thirty의 일본식 표현)’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다. 광고에서 그려진 가족상이 30〜40년 전의 것이라 현재의 30대 여성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언뜻 보면 단란한 가정을 그리며 에어컨의 첨단기능이 그 가정에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광고정보 발신자, 광고주들의 망상과 편견이라고 불릴 정도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설정이 걸림돌이었다. 시대상을 대변하지 못하고, 타깃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지도 받지 못한 것이다. 오늘의 소비자들은 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살고 있으며, 퍼스널 미디어의 발달로 매우 섬세하고 치밀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익숙해져 있다. 타깃에 대한 어설픈 정형화는 위험하며,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기법은 소비자의 외면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 같은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한 불신은 SNS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됐고, 자연스럽게 판매부진으로 이어졌다. 신제품이 런칭되자마자 시련과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가격 또한 300만 원 대로 30대 주부의 가정에서는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라는 것이 또 다른 이질감과 반발감을 갖게 했다.
정면 돌파에 나섰지만 단명한 ‘갈라파고스’
본 코너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일본제 휴대폰이 세계화를 무시하면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갈라파고스(Galapagos) 휴대폰’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자신들의 휴대폰 업계의 현실을 빗대어 생긴 자조적인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2010년 샤프는 이를 새로운 휴대폰의 브랜드 네임으로 정하면서 세계적인 오명을 정면 돌파하려고 했다.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며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다. 물론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전개했는데, 그 브랜드 네임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해 찬반양론이 거세게 일면서 일약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소비자에게는 역시 그러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은 일본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단어였을 뿐이었다.
그 단어가 지니는 본질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애국심이나 일본 제품에의 자존심에 의존하고 호소하는 듯한 어리광을 받아들이기에는 일본 소비자들의 성향이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이성적이었다는 것이다.
시장의 반응은 당연히 냉담했다. 화제성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첫 도입 1개월 동안 5,000대라는 믿기 어려운 판매숫자를 남기면서 시장에서 사라졌다. 최신 기종의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머릿속에는 기능적 편익도 있지만, 시대에의 동참의식과 시대를 앞서 간다는 도전의식 등의 감성적 편익도 존재한다. 또한 세계 시장에서 냉대 받는 자국 제품에 대한 동정보다는 오히려 더욱 혁신적인 제품과 세련되며 섬세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하는 마음도 깔려 있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데 대한 질책과 질타가 조기퇴출로 이어진 것이다.
소니 또한 제작자와 정보 발신자의 시대착오적 아집이 심각했다. 파나소닉과 마찬가지로 무리한 타깃 설정은 기존 유저들의 반발을 샀고, 편협하고 편향적인 표현기법은 거부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소니의 Life with Play Station Vita 광고는 13년 전인 1999년에 발표된 ‘게임과 현실의 이중생활’을 그린 광고의 후속편이다.
이 광고가 예전과 다른 건, 현재는 게임과 일상생활의 경계선이 애매하게 되어 ‘일상과 게임의 공존’을 테마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의 내용은 다양한 사회계층에서 여러 종류의 게임을 소니 제품으로 즐기고 있을 만큼 소니가 여전히 게임기의 대명사라는 자부심 섞인 것이다.
엘리트 디자이너가 등장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게임이 어떤 기능을 하며, 동료들과 게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때의 느낌 등을 진지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메이드 (Maid) 복장을 한 이벤트 아이돌이 등장해 이벤트에서 게임에 대한 얘기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게임을 자신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어필하고 있다. 얼핏 보면 늘 호평을 받는 소니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계보를 잇는 광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게임을 하는 유저는 이제 없어’, ‘게임을 하는 유저가 모두 아키하바라의 오타쿠는 아니야’ 라는 치명적인 반발을 사고 있다. 비현실적인 타깃 층 이미지 설정도 그렇지만, 일반인을 가장한 이들의 연기가 너무 연기자처럼 보였다는 것이 반발의 근원이었다.
즉 광고에서 일상생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사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아니거니와 그것조차도 소니 측의 의도를 대변하는 연기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1999년 광고에서 일상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게 할 정도로 리얼하게 그려진, 그때의 그것이 아니라는 비판이었다.
광고가 기업의 경쟁력을 말해준다
광고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제작자와 정보 발신자의 주관적 판단, 그리고 그들의 개인적 감성과 개성을 완벽하게 배제하기란 사실 어렵다. 그것을 능력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철저한 리서치와 면밀한 자료분석을 바탕으로 한 객관성 확보가 결여된다면 정보 발신자의 주관적 판단과 감성은 소비자들에게 편견과 오만으로 비춰지고,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직면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위에서 살펴본 커뮤니케이션 사례는 ‘그 기업에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존재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구심과 함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현저히 떨어뜨릴 소지가 있다. 나아가 그러한 불신은 제품의 품질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광고에서‘ 기업의 현재의 경쟁력’이 보이거나 ‘경쟁력 있는 기업의 좋은 광고 커뮤니케이션’은 소비자들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광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성패가 우수 인재 확보에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얼마나 신선한가이다. 그 신선도 승부에서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의 현재가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1987년 소니의 원숭이를 기용한 광고가 워크맨보다 훨씬 더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사실이 그래서 더 되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