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fference Art
미술은 어째서 눈으로 감상해야 하는가?
동상을 안테나로 활용해 라디오를 설치하고, 주파수 설정장치를 제거한다. 그러면 동상과 인연이 있는 무작위의 전파가 라디오에 잡히고, 지구 정반대편의 언어와 알 수 없는 음악이 잡힌다고 한다. 역사적 위인의 동상이 새롭게 해석되는 순간이다.
새로운 것, 다른 것에 대한 찬양
2012년 베이징 최고의 전시장인 ‘페이스 베이징’은 작품 하나만 중앙에 펼쳐놓으면서 한 해의 전시를 마감했다.
바로 리송송(李松松) 작가의 광대한 금속 터널 설치작품이었다. 이 터널은 사람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시지각(視知覺)적 경험을 하게끔 되어있다. 리송송은 애초에 두꺼운 물감으로 추상적 리얼리즘을 선보인 페인터였다. 완전히 자기 세계를 처음부터 재검토한 것이다. 터널을 가르면서 만나는 두꺼운 물감 층은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속도감 있는 붓질은 그 물감이 주는 무게감과 정반대의 경쾌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금속 터널 안의 약강약(弱强弱), 강약강(强弱强) 격의 운율감(Undulating Cadence)은 조각과 설치, 회화와 건축 사이에서 날 선 파동의 충격을 전한다. 그는 이 작품 하나로 전 세계의 주목을 얻었다. 새로운 감각의 승리였다.
일본에도 이러한 작가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요즘 대세인 코헤이 나와(Kohei Nawa)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세계는 지난해 아라리오 갤러리 청담에서 한국 최초로 소개됐는데, '구슬 달린 사슴’이라는 키워드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작가이다. 구슬과 사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이 연약함과 한없이 투명한 빛깔에서 그는 궁극의 미를 찾는다. 교토 출신답게 현대적 첨단과 우리가 장기간 지속적으로 체화하고 있는 전승적 아름다움을 하나로 조화시킨다.
지금 세계 미술계의 톱 3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도 태생의 영국 작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이 젊은 일본 작가에게 반해 당장 서구에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안테나'가 된 위인 동상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작가들이 어떤 새로운 트렌드를 발산하고 있는가? 그러면 동상과 인연이 있는 무작위의 전파가 라디오에 잡히고, 지구 정반대편의 언어와 알 수 없는 음악이 잡힌다고 한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위인의 동상이 새롭게 해석되는 광경을 보고 서구인들은 작가에게 경이감을 표했다.
‘흔해 빠진 것’의 ‘세련된’ 발견 ‘미술은 어째서 눈으로 감상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손종준이라는 젊은 작가는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듯하다.
국내외를 오가며 놀라운 발상을 속속들이 연출하고 있는 백정기가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2010년 인사미술공간 전시장에 모터와 노즐을 이용해 ‘단비’가 쏟아 내려지도록 연출한 적이 있다. '스위트 레인(Sweet Rain)’이라는 이 작품은 관객에게 달디 단 ‘사카린 비’를 경험하게 했다. 이것은 단지 ‘본다’는 의미의 미술경험을 초월해 손으로 느끼며 온 몸으로 추위를 경험하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인류 문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작업이었다.
그는 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산재해있는 역사적 동상을 자기 작업으로 이용한다. 동상은 최고의, 최대의 ‘안테나’이다. 동상을 안테나로 활용해 라디오를 설치한다. 그리고 주파수 설정장치를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이원호라는 작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공부했다. 독일은 원래 ‘개념미술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셉 보이스·안젤름 키퍼·백남준·존 케이지·기욤 바일 등이 독일 문명권에서 태동하고 성장했다.
그는 테니스 코트·축구장·탁구 테이블 등의 선을 해체시켜 인간의 규칙과 암묵적 약속을 뒤바꾸고 뒤트는 개념을 보여준다. 혼자서 테니스 코트나 축구장의 규칙 라인을 삽과 호미로 파내 정중앙에 모으거나, 탁구 테이블의 선을 톱으로 도려내 정중앙에 사각형으로 모은다. 이래서는 경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경기장이 무용해진다.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삶은 규칙과 제한으로 이루어진 게임인 것이다.
이 상징적 라인이 붕괴되면 혼란이 생기고 질서가 파괴된다. 문명은 말하자면 선 긋기와 제한, 한계 내에서 일부분의 용인인 셈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문명과 법·질서를 일탈하고 파괴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조건(Human Condition)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사고하고 자기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다.
영어의 ‘아트(Art)’는 ‘미적 선례(Aesthetic Precedence)를 비판적으로 전회(Critical Shift)시키는 비주얼적 사고체계(Visual Thinking System)’라고 정의할 수 있다.
19세기에 들어온 서구의 아트라는 개념이 메이지 시대에 미술(美術)로 번역돼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인식’하고 ‘사고’하고 ‘혁명’하는 의미가 누락된 채 ‘아름다움의 창조’라는 면으로 곡해돼 버렸다. 따라서 아트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른바 ‘눈으로 즐거운 대상’처럼 의미가 고정돼 버렸다.
손종준 작가는 ‘몸으로 생각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괴기스러운 알루미늄 금속성을 이용해 휠체어를 만든다. 이 휠체어는 눈으로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다. 인간이 사회 및 타자와 인연을 맺고 연관되면서 자기 보호기제로 활용하는 많은 무기들, 가령 학벌·언어·출신·직장·현금 보유 정도·권력 이용 여부 등의 추상개념을 시각화시키는 작업이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이 시각화된 대상을 입히고 씌우며 태워서 사진작업으로 재생산하기도 한다.
조범석. 그는 아직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이다. 이 어린 작가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미술계, 창작계의 앞날이 밝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다. 그는 어릴 때부터 현대미술이 좋았다고 한다. 부모님은 이런 아들의 뜻을 백 번이고 들어주면서 어린 나이에 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영국·독일 등지의 미술관과 비엔날레에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는 색테이프·헝겊·나무·꽃나무·마른 풀·합판·전선·각목 등 우리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흔한 것들로 자기 조형세계를 연출한다. 어떤 특정한 의미와 사회적 맥락을 버리고 순수하게 조형의 글로벌한 감각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너무 흔해빠진 소재를 이용해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지금 20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대안공간과 갤러리, 큐레이터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미래 자원임에 틀림없다.
“그저 네 자신을 개선시켜라”
“그저 네 자신을 개선시켜라. 그것이 네가 세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의 말이다. 우리나라 미술사조도 드디어 위대한 철학자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60, 70년대에는 서구사조를 전적으로 무리하게 수입하다 소화불량의 외발화(外發化)에 그쳤다. 80년대에는 첨예한 이데올로기, 사회참여적 예술만을 진정성 있는 예술로 보려는 풍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90년대와 21세기 초반에는 또 다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홍역을 앓았다. 2005년 무렵부터 새로운 반성이 고조됐고, 드디어 서구의 미술현상에 상관없이 자기 길을 가려는 작가들이 미술계 전면에 등장했다.
사실 비단 우리나라의 현상만이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는 것이라서 지켜보는 것이 사뭇 재미있다.
이진명 ㅣ 대안공간 루프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
홍익대 예술학과와 동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2012년 함부르크 문화국 초청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현재 대안공간 루프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로 활약하면서 2013년 한중일 교류전시 ‘New Image of Asia’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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