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2 : The Difference - Travel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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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fference   Travel

예상하지 않은 여행 기록의 시작, 그리고 현재진행형

8개월 전, 제 여행기록은 시작됐습니다.사실 전 포토그래퍼이자 리모델링 하우스 마스터였습니다.
무리한 일로 목과 팔 부분이 마비돼 움직일 수 없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을 때, 제 수입을 책임지던 리모델링업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마침 친구가 실크로드 여행을 제안했고, 막연히 마르코 폴로에 대한 동경을 옆구리에 끼고 21kg의 배낭과 18kg의 카메라 가방을 짊어지게 됐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딸의 건강 문제로 함께하지 못했고, 전 혼자 단출하게 실크로드의 서막을 열게 됐죠.
처음엔 낯선 세상을 제 카메라를 통해서만 바라봤습니다. 실크로드의 출발선이었던 터키 여행 중에도, 그저 사진으로만 남길 뿐 그 어떤 문자적인 기록도 허락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때 막연히 제 여행에 관심이 있던 한 여행자가 블로그로 남기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 우연이었지요.

그때부터 작은 수첩을 가지고 기록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만난 사람,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 저를 스쳐간 장소 들을 작은 수첩에 날리듯 기록했고, 이른 아침과 잠자기 전 노트북에 차분히 저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제 워드 파일은 책으로 그대로 묶어도 될 정도로 채워졌네요.
매 순간을 함께한 사람에 대한 기록은 ‘저장 강박’이 있을 정도입니다. 상대에 관한 기록을 엑셀 파일로 저장하거든요. 이메일 주소를 비롯해 이름과 출신, 만난 장소는 물론, 상대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까지 씁니다.
장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 느낀 제 사적인 감정에 관한 것을 오롯이 풀지요. 이 모든 것이 제가 지내온 삶에 대한 역사이자, 잊고 싶지 않다는 집착입니다.
글의 기록은 사실 사진과 같아요. 남겨야 남겨지지,
남기지 않으면 먼지가 되어 버립니다. 기억이란 건 유한하니까요. 물론 모든 사람을 기록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같이 만나 공유한 감정이 있을 때 이를 기억하려고 기록합니다. 저는 시간이 참 많거든요! 언제 갈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삶의 연속이니까요. 좋으면 더 머물고, 아니라면 미련 없이 떠납니다. 물론 비자 문제만 없다면요. 참,
두서없이 묻고 싶은 질문 하나, 중앙아시아는 왜 이렇게 비자를 원해요?

내 사람, 가족보다 더 데일 정도의 감정들

수많은 사람을 거치고, 스쳤고, 다시 또 다른 만남을 거듭합니다.
실크로드의 줄기를 통해 이란·키르기스스탄 등을 거치면서 그들은 늘 이야기합니다. “난 다시 널 보고 싶어. 넌 언제나 내 친구야!”

제 절체절명의 규칙이 있다면, 카메라 가방과 백팩의 무게를 일정하게 하는 것, 그리고 한 달에 1000달러 이상 돈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교통비 포함입니다. 돈은 현실이고, 이상을 따라갔을 때 이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면 꿈꿀 수 없습니다. 가끔은 한방에 탕진하는 밤도 있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인생인 걸요. 이 최소 800달러~최대1000달러라는 자금이 가능한 까닭은, 그만큼 각지에서 절 도와주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적다면 적은 이 금액을 제가 일종의 규칙으로 정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자산 덕분이지요. 전 늘 부족하지만, 참 부자예요. 하하~
그러기에 전 혼자 여행했지만 외로웠던 적은 결코 없습니다. 상대에 대한 기록은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이야기, 즉 인연을 이어가겠다는 이야기니까요. 그저 막연히 다시 보자는 공수표를 날린 뒤 거짓말처럼 다른 여행자를 만나기도 했고, 전혀 여행지 코스가 달랐던 이와 제가 간 그 길에서 만난 적도 있습니다. 이런 행운이 저를 계속 여행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겠죠.
그 중 나의 ‘아들’인 파스칼과의 인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터키의 에라직(Elazig)-타트반(Tatvan)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그를 보았고, 우연히 말을 섞는 과정에서 그가 불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았죠. 물론이죠. 그는 스위스 제네바 출신인 걸요. 그는 저널리스트이고, 이직하는 과정에서 얻은 휴가를 실크로드 횡단에 바치기로 한 멋진 청년입니다. 지금은 그저 청년이 아니라 제 아들이지요. 어디를 가서도 “네 아버지니? 네 아들이니?”라는 질문을 줄곧 받았습니다. 그때 둘은 마음으로 말하죠. “그럼요, 제 아들이죠. 그럼요, 제 아버지입니다.”
다른 환경 속에서도 제 마음의 아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랑이라는 감정 이상의‘ 같은 호흡’입니다. 그는 거의 5개월에 걸친 저와의 여행을 베이징에서 마치고 다시 일을 위해 제네바로 떠났고, 지금도 매일 이메일을 통해 서로의 현재를 공유합니다.
키르키즈스탄 보콘바예보(Bokonbayevo)의 지역장 알마스 역시 제 가슴에 문신처럼 새겨진 인물입니다. 좀 더 머물라는 만류에도 비자 때문에 곤란하다는 상황을 이야기하자 단 한 마디를 외쳤죠. “10일간 더 있으라!” 비자 허용권을 친히 내어준 경우였습니다. 어떤 법이 무너지는 것, 그건 바로 사람의 인심인 셈이죠. 저는 그가 참석한
한 행사의 메인 포토그래퍼로 활약했고, 그에게 사진을 전달하는 감사의 표시를 했습니다. ‘기브앤테이크’ 법칙은 어디에나 공존하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와 불이해의 경중들

오늘 아침 저는 놀라운 사실에 입을 쩍 벌렸습니다. 제 노트북의 기록에 적힌, 제가 거쳐온 거리를 본 이후였죠. 1차로 실크로드의 76개의 지역에 머물렀고, 그 거리는 약 2만 9000km가 됩니다. 실크로드의 끝인 중국 시안에서 다시 제2의 여행으로 아시아를 횡단할 계획을 했고, 그곳에서 서울과 제주·부산 등을 거친 뒤 제가 안착한 거리는 바로 4만km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로 대변됩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쇼크리스트(Shock List)'입니다. 제가 살아온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사상과 문화의 차이에 관한 것이죠. 그 과정에서 제 생각은 마모되고 동시에 채워져 가죠. 이란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 시 남녀가 구분해 앉아야 하기에, 같은 공간 안의 먼발치에서 저를 힐끗 쳐다보는 현지 여성의 눈빛이 꽤 인상적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언어는 절대 통용되지 않습니다. 그저 보디랭귀지가 최고의 언어죠.

중국은 또 어떤가요? 중국에서 10일째 되던 날 알고 말았습니다. 큰 도시든 작은 도시든(작은 도시라도 25만hr의 면적)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 건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란 걸. 경찰은 어디에서나 우릴 지켜보고 있고, 한 마을당 최소 4개의 군부대는 봤던 것 같아요.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기적입니다

각 나라에서 그 나라의 속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나라에 대한 이해력의 폭을 넓혀갑니다. 환경에 대한 관찰, 사람에 대한 집착을 거듭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 나아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바리게이트는 사라지는 것이죠. 아마도 평화라는 건 이런 소박한 관심과 이해관계에서 비롯될 테죠. 제 여행의 시작은 외롭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처절한 고독을 맛봤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고작 3주 후 제 삶은 매우 달라져 있었어요. 단순한 낯섦은 새로움으로 빠르게 탈바꿈해갔고, 환경과 사람에 부딪히며 내 안의 강한 환희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합니다.
그거 아나요? 모든 여행자의 공통적인 물음을요. 5년째 여행하는 그녀도, 실크로드를 자전거로 일주중인 그들도 모두 입을 모은 이야기죠.
"왜 내가 이전에 하지 않았을까?"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기적입니다. 당신의 삶에 응원을 아끼지 않을게요. 이만 제 기록을 접고, 맥주 한 잔 부딪힙니다.
“위하여!”

 

 

 

강미승 ㅣ <빌리언달러컴퍼니> 편집장

rideameetssomeone@gmail.com

천성적인 방랑벽을 핑계로 여행을 밥 먹듯 다녔다. 대학생 시절부터 펼쳐진 텍스트와의 씨름은 두 권의 책과 셀 수 없는 웹진, 블로그와 광고 비주얼 등 패션과 피처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뿌려진 상황.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여타하면 디자인까지 하는 그녀는 늘 '새로움'에 목말라하고 있다.

 

사진 Rvé Around

hg57tdm.e-monsite.com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