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2 : off the record - 당,신의 물방울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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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ff the record  
당,신의 물방울

와인은 하나같이 쉽지 않다.
우리가 하는 일과도 많이 비슷하다. 끌로 파고파고 파도 단 한 번 쉽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의 일 말이다.
그래도 다들 저마다의 신의 광고, 신의 캠페인을 손에 넣기 위해 불철주야 수많은 고민들을 마셔대고 있겠지?


신의 물방울, 드디어 30권이다. 모두들 한 번은 들어봤을 <신의 물방울>은 아기타다시(Tadashi Agi)의 글과 오키모토 슈(Shu Okimoto)의 그림으로 구성된, 와인에 대한 와인에 의한 와인의 만화다. 한 때‘ 모르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더니 요즘은 꽤 잠잠해졌다. 와인 자체가, 부담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우리술 막걸리에 밀려 잠잠해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여전히 필독도서 1순위에서 빠지지 않는다. 아직 사도의 승패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평론가 칸자키 유타카의 아들이지만 와인을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평범한 맥주회사 영업사원인 칸자키 시즈쿠. 그런 그에게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음이 전해진다. 아버지의 유언장에는 1년 후 12사도라 불리는 12병의 위대한 와인과,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와인이 어떤 것인지를 맞추는 사람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하겠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시즈쿠는 유산을 두고 천재 와인평론가 토미네 잇세와 운명적인 대결을 펼치게 되는 것이 이 만화의 큰 그림이다. 30권째 겨우 제9사도가 끝났다. 승부는 또 원점인 채로.


신의 물방울 30권


당,신의 표현
‘한국 사람에겐 역시 소주지!’라며 소주사랑을 외치던 나에게 와인은 참 먼 나라 음료(?)였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난 순간부터는 와인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친밀감이 발동했다. 왜냐하면 이 책이 와인에 대한 대단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표현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와인은 고독한 러너이다. 그 고독한 러너가 달리기 시작했다. 풍덩 빠질 것 같은 인디고 블루 하늘, 반짝이는 풀잎 같은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 모든 것이 승리의 이미지로 넘실거린다. 그러나 유혹하는 듯한 달콤함은 한 순간이고 그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잔혹하리만큼 완고한‘ 고난’. 다리는 곧바로 무거워져서 질질 끌게 되고, 달리기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조차 한다. 하늘은 흐리고, 그러면서도 작열하는 태양은 몸을 괴롭힌다.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지금, 거대한 환희의 소리가 나를 에워싸고 있다. 다시 활짝 개는 감청색 하늘…(중략) 이 와인을 표현하자면 달콤한 승리의 여운을 가슴에 감추고 자신에게 바치는 월계관이다.”
이것은 제9사도인 <포지오 디 소토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2005년산>에 대한 토미네 잇세의 감정이다. 와인을 단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이런 스토리가 쏟아져 나온다‘. 대체 어떤 맛이기에 저런 표현이 나오는 거야?’라는 마음으로 당장 마시고 싶어진다. 그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와인들이 그렇다. 하지만 너무 고가여서, 아니면 국내에 아예 없어서 이 꿈도 못 꾸는 와인이 대부분이고, 한 주류점에서‘ 신의 물방울에 나온 바로 그 와인’
이라는 거대한 POP가 붙어있어서 날름 집어 들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당황한 와인도 있다.
아직은 아무리 마셔도 저런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맛있네, 오묘하네, 깊네, 두껍네, 달콤 씁쓸하네’ 정도는 나오는데, 만화에서 나오는 신화적인 스토리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단, 모든 와인이‘ 거기서 거기지’라는 생각은 확실히 바뀌었다. 와인 하나하나가 얼마나 개성이 다른지, 어떻게 마시는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까지는 이제 안다.


포지오 디 소토 부르넬로        모스까또 다스티 와인 모음
디 몬탈치노



당,신의 광고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와인은 정말이지 하나같이 건방지다. 절대 굽히는 법도 없고 먼저 말을 거는 법도 없다. 열어줘 열어줘 사정사정을 해야 간신히 진짜 맛을 열어서 보여주고, 좀 떫고 숙성이 덜 됐어도 사과 한 번 하는 적이 없다. 모스까또 다스티 같은 스위트 와인(Sweet Wine)만이 가끔 깔깔대는 달콤한 애교를 보여줄 뿐, 와인은 하나같이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기나 보다‘. 너 같은 것, 다 마셔버려 주겠어〜’
이런 마음으로 자꾸만 손이 가니 말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과도 많이 비슷하다. 끌로 파고파고 파도 단 한 번 쉽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의 일 말이다. 그래도 다들 저마다의 12사도를 찾고 있겠지? 신의 광고, 신의 캠페인을 손에 넣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수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마셔대고 있겠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젠 빈티지도 좀 보이고 원산지도 눈에 들어오고 포도 품종도 조금 구별하고, 디켄팅하면 맛과 향이 확실히 달라지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이런 와인이 좋겠구나, 이 음식에는 이 와인이면 좋겠다, 저 사람에게는 이 와인을 선물하면 좋아하겠다’ 하는 것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할 수 있게 됐다.
신의 물방울 30권과 수년에 걸친 게으른 공부 덕에 그 복잡하고 오묘하고, 마시는 사람에게 엄격한 와인과 조금은 친해진 기분이다. 나름 나만의 제1사도도 생겼다.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은 내 페이스북에 와보면 알 수 있다. 기대해도 좋다. 대단한 와인이니까!



조성은
ACD | chocopy@hsad.co.kr
매력적인 오답에서 예기치 못한 정답으로
Posted by HSAD